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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9

가능성으로 채워지는 복합문화공간 ‘이함캠퍼스’

이함 미술관 문현희 디렉터 인터뷰
경기도 양평 강하면 남한강의 강줄기를 따라 쭉 내려가면 녹색의 자연에 스며든 콘크리트 건물들이 나온다. 복합문화공간, 이함캠퍼스다. 이함캠퍼스는 두양문화재단이 세웠다. 재단은 40여 년간 단추 회사를 경영한 오황택 이사장이 악착같이 모은 돈, 약 600억 원을 인문학과 예술 지원에 바쳐 세운 비영리재단 법인이다.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올해 7월에 개관한 이함캠퍼스는 약 20여 년 전부터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이상이 구체적인 형태와 형상을 부여받고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함캠퍼스는 재단의 뿌리를 공유하지만 특히 문화 예술 분야의 지원 사업을 더욱 확대하기 위한 포부를 지녔다. 건물 8개의 동 가운데 무려 6개의 동을 미술에 자리를 내어 줬다. 

이함캠퍼스와 더불어 이함미술관의 포문을 여는 전시는 사일로 랩(SILO Lab)의 라이트 아트 전시 <앰비언스(AMBIENCE)>다. 전시를 기획한 이함미술관의 문현희 디렉터는 개관전이 이함캠퍼스의 방향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함캠퍼스의 목적과 방향성, 포부와 더불어 이함미술관 개관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with

이함미술관 문현희 디렉터

이함캠퍼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써 이(以), 상자 함(函). 빈 상자라는 의미를 가진 이함캠퍼스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비어있는 상자처럼 시대 변화와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적 시도들을 담기 위해 준비된 공간입니다. 이함캠퍼스는 재단법인 두양문화재단 산하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김개천 교수님이 건축설계를 맡았습니다. 만평 가량의 부지에는 앞으로 다양한 예술을 다루게 될 이함 미술관과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로 채워진 콤마 카페, 작가 지원 프로젝트를 위한 아티스트 레지던시와 아카데미와 연회가 가능한 별관 등 8개의 건물과 둘레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함캠퍼스의 주요 문화전시 공간인 이함미술관은 크게 2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전시관은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집니다. 총 6개의 전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이함캠퍼스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해요. 공간 및 장소가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은 없었는지. 

캠퍼스의 건축들은 대부분 1998년에 이미 완공이 되었습니다. 전시 콘텐츠에 대한 고민과 외부 공간, 조경을 조성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었어요. 20여 년에 걸쳐 캠퍼스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지속했어요. 이때의 비어 있던 시간과 함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축적 요소들이 전체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외부의 조경은 역사적 스토리를 담은 건축 자재들을 곳곳에 비치해 전체적인 공간을 조성하고 있는데요. 중앙 정원에 사용된 장대석은 중국 청나라 시대의 관공서 건물 골조로서 돌의 잘린 단면과 조임을 위한 홈의 모양으로 시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카페로 이어지는 길에 놓인 주춧돌은 신라시대와 고려 시대의 절과 한옥의 주춧돌입니다. 또한 미술관 두 개의 건물 사이에 놓인 중정의 바닥은 네덜란드에서 방파제로 쓰이던 아조베 나무를 사용했어요. 바닷속에서 오랜 시간 틀어짐과 물의 압력을 이겨내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온 만큼 나무 자체에 세월의 흐름이 묻어납니다.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이함미술관은 어떤 작가 혹은 작업에 주목하나요? 

저희는 어떤 작업이 이 시대 사람들을 변화로 이끌고, 예술로서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는지 고민을 해 왔어요. 그 고민이 이함미술관의 콘텐츠를 결정합니다. 변화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시대를 넘는 도전을 지지하고 그것을 이 시대에 알리는 것이 이함미술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오랜 기간 전시에 대해 고민을 하시면서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수집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가구와 생활의 멋을 외국에 소개하기 위해 수집했던 조선시대 목가구부터 당시의 신소재와 기술 그리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갖춘 사용자를 위한 산업용 가구, 20세기 디자인의 혁신을 이끈 유명 디자이너들의 가구도 소장하고 있어요. 또한 은유적인 그래픽 언어로 포스터의 수준을 끌어올린 폴란드 포스터 등 소장품의 분야와 영역은 다양합니다. 앞으로 다양한 소장품을 전시를 통해 선보일 계획이에요. 소장품들로 준비되는 전시는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데 작품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변화는 이 시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확장된 시각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기획될 예정입니다.

사일로 랩, |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사일로 랩*의 전시로 포문을 열었어요. 공간 몰입형 전시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무리 좋은 작품과 전시일지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관람객에게 닿지 않는다면 의미가 퇴색합니다. 특히나 다양한 콘텐츠, 빠른 변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정적인 전시 방식보다는 압도하는 감정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공간을 아우르는 분위기’라는 의미를 지닌 사일로 랩의 <AMBIENCE> 전시는 일상적으로 경험하기 힘들지만, 한 번쯤 상상해 본 특별한 순간들을 빛을 통해 공간에 구현하고 있습니다. 

* 사일로 랩은 공학과 디자인, 영상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이 모여 설립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 스튜디오다. 이들은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관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 몰입형 작업을 선보여 왔다.
사일로 랩, |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잔별>은 우주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공간에서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빛의 물결을 31,500개의 LED로 구현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물안개가 자욱한 망망대해에서 이정표가 되는 등대의 모습을 표현한 <해무>, 수면의 파동을 통해 일렁이는 마음의 모양을 표현한 <파동> 등 총 7개의 작품이 각각의 스토리와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의 역할 중 하나가 인간의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고 사유하도록 이끌어냄으로써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분위기에 들어섰을 때 관람객들이 느끼는 환호와 놀라움, 쓸쓸함과 외로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적 경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일로 랩, |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전시를 기획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개관전은 이함캠퍼스의 방향성에 대해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시로 기획하고자 했습니다. 이함캠퍼스의 소장품과 개관 전시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술과 디자인, 예술과 기술 사이의 경계에서 장르 확장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결을 함께 합니다. 전위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고, 다양한 기술을 통해 감수성을 자극하는 사일로 랩의 작업이 기획 의도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일로 랩, |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전시를 통한 공감각적 경험을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것 같은데. 

관람자의 감각적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공간을 지우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전체 공간을 캔버스 삼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죠. 작가는 몇 달간의 대규모 공사를 거쳤어요. 그 결과 무색무취의 화이트 큐브 공간을 어둡고, 크기와 형태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바닷속 심해에서 해수면까지의 여정을 담은 <칠흑> 작품의 경우, 작은 규모의 전시 공간을 천장과 벽, 바닥까지 어둡게 연출해 모든 공간의 경계를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공간 연출은 관람자가 어두운 공간을 처음 마주했을 때 두려움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죠. 또한 해수면으로 상승하는 듯한 레이저 불빛 연출과 공간의 테마에 맞는 음악과 향을 제시함으로써 감정적 고취를 느끼게 합니다. 전시의 타이틀 그대로 공간을 아우르는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도록 전체 공간을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관람객들이 멀찍이 떨어져 공간의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연출한 것이죠. 이러한 연출이 결국 관람객의 몰입을 돕고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일로 랩, | 사진 제공: 이함 캠퍼스

예정된 전시가 있나요? 아직 없다면 어떤 형태의 전시를 선보이고 싶은지.

개관전이 긴 호흡으로 지속되기 때문에 그다음 전시는 미정이며, 아직 구상 중에 있습니다. 사회와 문화를 담고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아울러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는 기획이 될 예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포부와 비전은?

문화의 성장과 다양성은 결국 문화 소비자들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문화 소비자 즉, 대중의 문화적 소양이 높아질수록 문화는 다양하고 깊이를 지니며 질적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이에 이함캠퍼스는 문화 소비층을 확대하도록 하고 문화에 대한 질적 향상을 이루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함’의 의미처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으로서 내일의 변화를 담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이함캠퍼스에서 진행될 전시와 강연, 공연, 행사 등의 다양한 문화적 시도가 작지만 꾸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고, 그 행보들이 모여 시대를 앞서가는 움직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이함캠퍼스, 문현희 디렉터

장소
이함캠퍼스
주소
경기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 370-10
크리에이터
건축 설계 | 국민대학교 공간디자인학과 김개천 교수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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