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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8

커피 한 잔으로 떠나는 봄날의 여행

카페를 채운 여행의 기억들! 로미르 사진전
남산 위쪽 어느 평온한 신당동 골목 사이에 숨어 있는 스페셜티 카페, 펄시커피(P3R:C COFFEE). 우연히 지나가다 마주치긴 어려운 이곳에 봄날의 햇살을 뚫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다. 3월 한 달간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들을 위한 포털로 변신한 지하를 슬쩍 엿보니 제주와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정겨운 풍경들이 벽면을 뒤덮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바다, 들꽃이 피어난 오름, 무성한 숲으로 뒤덮인 여름날의 호수까지… 보다 보니 계절을 넘나들며 자연을 만끽했던 여행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깨어난다. 커피잔을 잠시 내려놓은 채 한동안 한 폭의 사진을 가만히 응시하는 중년 남성의 손님, 그는 이미 그 안의 계절로 훌쩍 건너가 버린 걸까.
펄시커피 전경. 사진 출처 : 펄시커피 인스타그램
로미르 사진전 전경. © Romirr

 

위의 장면은 펄시커피 공간을 빌려 열린 로미르 작가의 사진전 <떠나고 싶은 계절>의 소소한 정경이다. 화이트큐브의 벽면도 아닌,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사이사이에 작품들이 걸려 있다. 벽에 걸린 포스터처럼 자연스럽게 걸린 작품들은 로미르 작가가 취미로 틈틈이 찍어 온 자연의 풍경들이다. 혹,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면 당신은 샤로수길 카페 ‘북덕방’을 다녀온 적 있지 않은가. 펄시커피에서 사진전을 열고 리빙 제품들을 소개하는 로미르 작가는 숲속 작은 오두막을 연상시키는 아늑한 카페, 북덕방의 어엿한 사장님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의 공간이 아닌, 사진을 한데 품은 펄시커피에서 카페 사장으로서의 본캐와 사진작가로서의 부캐를 동시에 만나 보았다.

 

Interview with 로미르

 

북덕방. 사진 출처 : 북덕방 인스타그램

 

북덕방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진을 찍고 계세요.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커피 회사에서 정말 오래 일했어요. 커피 쪽에서 10년 정도 일했고 회사에는 6년 정도 있었는데, 취미 활동을 찾다가 사진을 찍게 되었어요. 이태원으로 혼자 출사를 나가거나, 주변의 음악하는 친구들의 자켓 앨범을 찍어 주면서 시작하게 되었죠. 20대 중반부터니까 한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왼) 바람의 언덕 (오) 오름에서 © Romirr

 

SNS에서 항상 노래의 가사를 곁들여 사진을 소개하더군요.

인디 쪽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잔잔하고 차분한 멜로디와 그 안에 자연이 깃든 가사가 좋아요.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제 사진을) 노래와 같이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아 함께 인용하고 있어요. 저는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와 분위기에 집중해요. 예를 들어 에피톤프로젝트나 루시드폴 노래를 들으면 제주도가 떠오르는 것 같지 않나요? (웃음)

 

 

  1. 간혹 앨범 소개글 주목하기도 하는데, 장르의 창작가의 소개글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원래 앨범 소개글 같은 상세 정보를 잘 보지 않는 편이었어요. 보통 작곡을 누가 했는지 잘 살펴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주변에 음악하는 친구가 늘 SNS에 소개글을 업로드하는데 거기에 노래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정리되어 있더라고요. 그 이후로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항상 앨범 소개글을 같이 보게 되었어요. 창작한 의도를 알 수 있어서 노래가 좀 더 와닿아요. 저도 그런 짧은 문장을 곁들여 사람들이 제 사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름 날 © Romirr
해 지는 중 © Romirr

 

분위기, 소리, 공기의 잔결까지 사진에 담아내고 싶다고 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들을 시각물을 통해 전달하기 쉽지 않은데,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무엇보다 빛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주황빛이면 노을이 떠오르고, 초록과 파란빛이면 쨍한 날씨의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해요. 또 바람이 흔들린다면 그 방향을 신경 써서 포착하는데 예를 들면, 바람이 불면 일부러 갈대를 같이 찍는다든지요.

 

 

  1. 전시 제목이 <떠나고 싶은 계절>이에요. 개인적으로 떠나고 싶은 계절은 언제이고, 어떤 여행을 떠나보고 싶으신가요?

초여름과 초가을을 선호해요. 카메라를 편하게 들고 다니기 좋은 시기잖아요. 저는 사진을 찍으러 일부러 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여행을 갔을 때 좋은 풍경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찍거든요. 그래서 날씨가 좋을 때를 좋아하는데, 언젠가는 겨울에 눈 덮인 바다를 찍어보고 싶기도 해요. 스위스에서 겨울의 풍경을 본 적이 있는데, 바다는 또 다른 모습일 테니까요. 아이슬란드에서 빙하를 보고 싶기도 하고요!

 

로미르 작가가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는 카페, 북덕방. 사진 출처 : 북덕방 인스타그램

 

본인의 카페에서도 작품을 소개하고 있어요. ‘북덕방 어떤 연유로 운영하게 되셨나요?

처음엔 북덕방을 열 생각이 없었어요. 퇴사하고 나서 커피와 관련한 뭔가를 할 생각이 없었죠. 카페를 열기 전부터 친구들과 작업실로 그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DM으로 혹시 이 공간을 공개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계속 받았어요. 어차피 퇴사하고 사진으로도 재미를 쏠쏠히 보고 있으니, 함께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카페를 열게 되었어요. 1년 정도 되었죠.

 

 

어느새봄이라는 다른 카페와도 교류하고 있던데요. 이번 사진전은 펄시커피 원두서점 함께 콜라보했고요. 어떤 인연으로 닿은 곳들인가요?

위에서 말한 음악하는 친구가 ‘새봄’이라는 아티스트예요. 그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가 ‘어느새봄’이고요. 그곳에서 작품을 소개한 지는 6개월 정도 되었어요. 그 친구의 앨범 자켓을 제가 찍어주었는데, 그 포스터와 엽서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북덕방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죠. 실은 원두서점도 저와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가 운영하는 카페예요. 그 친구가 펄시커피에서 저의 사진을 전시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같이 하게 되었어요. 제 사진과 잘 어울리는 곳이라면 다른 카페와도 연을 맺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요.

 

로미르 작가가 작업한 앨범 자켓. (왼) 새봄, 윤한솔 - 곁 1/2 (오) 새봄 - 사랑으로부터

 

자연을 품고 있는 사람의 일상이 궁금해요. 자연과 관련한 습관이나 루틴이 있나요?

책 읽을 때 새소리와 물소리가 나는 숲 ASMR을 듣거나, 나무 향이 나는 스머지스틱을 피워요. 룸 스프레이를 뿌리기도 하고요. 향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와 스위스의 풍경을 있어요. 어떤 사진들을 찍게 같나요?

저는 제주도를 정말 좋아해요. 제주에 북덕방 2호점을 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국내에도 충분히 예쁜 곳들이 많아서, 계속해서 국내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곳을 소개하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스러운 것이 좋은 이유는 질리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숲과 바다는 질리지 않으니 계속 찍을 수 있어요!

 

숲 ASMR을 듣거나 향을 피우며 책을 읽는 로미르 작가의 일상 © Romirr
직접 찍은 사진으로 꾸민 집 인테리어 © Romirr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방’ 컨셉의 전시를 열어 제가 만든 리빙 제품을 연출하는 팝업을 진행하면 무척 재밌을 것 같아요. 제 방 같은 느낌으로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향도 피워놓고요. 기회가 되면 다른 카페와 또 콜라보도 하고 싶어요.

 

 

커피 회사로부터 나와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지만, 그 길 위엔 여전히 커피가 함께하는 삶이 펼쳐졌다. 자신의 취향을 듬뿍 덧씌운 공간과 여행의 추억을 봉한 사진과 엽서, 그리고 여전히 커피를 애정하는 동료와 친구들. 커피로부터 시작된 소중한 인연은 사진작가로서의 로미르를 든든히 응원해 주고 있다. 그의 친구이자 동시에 이번 전시를 기획한 ‘원두서점’은 익히 들어본 문학 작품을 모티프로 원두를 만들고 다양한 카페와 작가와 협업해 소통하고 있는 로스터리로, 이번 전시에서는 로미르 작가의 ‘숲’ 작품에 영감을 받은 특별한 ‘숲 블렌드’를 선사한다. 숲 블렌드 원두로 만든 라떼를 한 모금 마시니, 솔잎을 머금은 듯한 청량한 감각이 입 안에 퍼진다.

 

 

Interview with 원두서점 노정선 대표

 

전시장 한쪽에 세워진 . © Romirr

 

블렌드는 로미르 작가님의 <> 작품을 모티프로 만들었어요.

<숲>은 사진전 분위기를 아우르는 데 적절했어요. 사진을 고른 건 한겨울이었는데요. 심한 추위 때문인지, 따뜻한 날에 숲속에서 맡는 자연의 향이 떠올랐어요. 숲의 시원한 향기와 촉촉한 땅의 흙내음을 커피로 표현해 보면 재미있고 공감 가는 맛을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른쪽이 숲 블렌드 스페셜 커피. 전시기간 내 한정으로 맛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펄시커피 인스타그램

 

블렌드는 어떻게 만들어진 원두인가요? 원두서점이 영감을 원두로 풀어내는 신비로운 프로세스가 궁금해요!

숲 블렌드를 만들 때 중요한 건 색감이었어요. 흙, 나무, 잎, 햇살의 색감을 보고 스모키, 카카오, 미트 잎, 청량함이 떠올랐어요. 스모키와 카카오의 쌉쌀함을 연출하기 위해 강한 로스팅 포인트가 필요했고, 그중에서도 민트처럼 상쾌하고 청량감을 유지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사용했어요. 이런 과정을 신비한 프로세스라고 표현해 주셔서 감사한데요. 저는 주로 소설의 분위기를 빌려 원두를 만들어요. 예를 들면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존엄한 정신과 끈기를 커피의 무거운 바디감으로 표현하는 식이죠.

 

 

원두서점은 여러 카페를 빌려콜라보하는 형식으로 다양한 원두와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어요. 앞으로 기대할 있는 원두서점의 방향은 어떤가요?

노들역 부근에서 작게 운영하고 있던 카페가 재개발 때문에 밀려났어요. 원치 않게 단골손님들과 헤어지게 되어 손님들과 만날 수 있는 이벤트를 열고 싶었어요. 지금은 사정상 로스팅만 하고 있지만 다시 카페를 열고 싶어요. 인터넷으로는 좋은 커피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힘들어요. 직접 만나서 손으로 전하는 게 커피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 주죠. 다행인 것은 단골손님들이 카페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예요. 조만간 원두서점만의 공간을 다시 만드는 게 목표예요. 보통 서점에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지적인 모습을 떠올리잖아요. 그렇듯 원두서점에 오는 분들이 문학을 입은 커피를 가치 있게 바라봐 주기를 꿈꿉니다.

 

로미르 사진전 전경 © Romirr

전시에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그저 평소 좋아하던 맛의 커피 한 잔이면 OK. 볕 좋은 날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사람과 찾아와 한가로이 수다를 떨며 사진을 감상해 보자. 특별히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다면 엽서나 포스터 등의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으니, 계절의 감각에 빠져들고 싶은 만큼 공간을 즐겨보시길!

소원 기자

자료 제공 로미르, 북덕방, 펄시커피

장소
펄시커피
주소
서울 중구 동호로20길 34-57 1F
일자
2022.03.01 - 2022.03.31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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