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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5

이우환이 초대한 세 번째 친구

세계가 주목하는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展
"부산시립미술관은 어디인가?" 최근 해외 아트 페어나 미술 행사에서는 도대체 부산시립미술관이 어디냐는 질문을 자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지난 7월 프랑스 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가 갑자기 타계함으로써 모든 전시가 취소되었지만 부산시립미술관만이 이번 전시를 주도한 이우환 작가 덕분에 예정대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작에서부터 대표작까지 두루 만날 수 있는 전시로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으니 놓쳐서는 안 될 것.
전시 전경
전시 전경

 

전시 제목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는 작가가 평생 집중한 ‘죽음’을 소재로 한다. 44라는 숫자는 작가가 태어난 1944년에서 유래되었는데, 볼탕스키는 ‘4’가 우리나라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숫자라는 것에 대해 흥미로워했다고 한다. 숫자 중간의 마침표는 인생의 마지막을 상징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공간과 연계해 <이우환과 그 친구들> 전시를 하고 있는데, 이번이 그 세 번째이다. 이우환 작가가 직접 추천한 작가들의 전시가 매년 진행되고 있으며, 그간 안토니 곰리, 빌 비올라의 작품이 이우환 작가의 작품과 같이 선보였다.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 본관 3층과 이우환공간 1층에서 이루어진다.

 

전시 전경

 

지난여름 작품 선정과 공간 디자인은 마무리된 상태에서, 이우환 작가가 직접 볼탕스키를 만나려고 파리에 갔다. 볼탕스키는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며 약속을 며칠 미루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되어 버린 것. 이우환 작가는 볼탕스키의 작품이 앞이 보이지 않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고찰의 계기를 줄 것이라는 기대로 전시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전시 전경

 

그는 홀로코스트 작가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모든 작품이 유대인의 죽음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프랑스가 나치 점령에서 해방되던 해에 태어났으니 실질적으로 홀로코스트를 겪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유대인이었기에 어머니는 위장 이혼까지 했으며, 그는 학교에서 유대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11살에 자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홀로코스트는 그의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한국 위안부를 작품 소재로 사용한 적도 있다.

 

출발(Départ), 2021, 전구, 130 x 220 cm, 작가 소장

 

3층 전시장은 볼탕스키가 직접 설계한 ‘출발’이라는 글자에서 시작된다. 원래 프랑스어 ‘DEPART’였으나 한국 전시이기 때문에 한글로 새로 만든 것. 전시는 ‘출발’, ‘도착’, ‘그 이후’라는 세 개의 전구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의도다.

 

기념비(Monument, M002TER), 1986, 금속 프레임, 전구, 300 x 127 cm, 작가 소장

 

그의 대표작 <모뉴먼트(Monument)> 시리즈는 마치 제단과 같이 금속 상자를 쌓아 올린 위에 어린아이의 사진을 전구로 불 밝힌 형식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어린이를 연상시켜 섬뜩한 마음이 들지만, 사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죽음’을 뜻한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을 은유한 것. 볼탕스키는 여러 작품에서 흑백 인물 사진을 사용했는데, 알려진 것처럼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사람들의 사진만은 아니다. 가족 나들이 사진, 범죄 잡지와 신문에 실린 살인의 희생자 사진, 스위스 지역 신문 부고란의 사진, 고등학교 졸업 사진 등 다채로운 사진을 일부러 흐릿하게 확대해 사용했다. 관람객의 상상력을 북돋우기 위함이다. 7세에서 65세 사이의 볼탕스키의 얼굴 변화 사진도 작품 ‘그 동안’에서 만날 수 있다.

 

저장소 카나다(Réserve Canada), 1988(2021년 재제작), 의류,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볼탕스키는 처음 독립영화로 데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존재를 예술계에 알린 독립 영화도 상영된다. ‘기침하는 남자’(1969년)는 기침하며 피를 토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담은 작품인데, 그의 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로테스크하다. 이렇듯 초기에는 영상을 촬영하다, 중기에 이르러 사진과 옷을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옷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실물은 남아 있지만, 실물이 담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번 전시에서도 옷을 소재로 한 대형 작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장소: 카나다(Reverve Canada)는 억류된 유대인의 소지품 창고에 옷을 소재로 1988년 처음 만들어졌다. 이번 전시 작품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새롭게 만들었는데, 반드시 세탁된 헌 옷 상의여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탄광(Terril)은 검은 옷 700kg이 쌓여 있는 거대한 작품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석탄 같기도 하다.

 

아니미타스(Animitas Chill), 2014, 영상, 건초, 말린 꽃, 가변크기, 작가 소장
잠재의식(Subliminal), 2020, 영상, 가변크기, 작가 소장

 

서정적인 영상 작품도 눈에 띈다. ‘아니미타스(Animitas)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수백 개의 방울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살해된 정치범의 넋을 위로하는 러닝타임 13시간짜리 작품이다. 영상 앞에는 말린 꽃으로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아타카마 사막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잠재의식’은 4개의 스크린에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이 펼쳐지지만 이따금 베트남 전쟁과 홀로코스트 같은 잔혹한 장면이 삽입되어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황혼(Crépuscule), 2015(2021년 재제작), 전구, 가변크기, 작가 소장

 

정수경 차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학과 교수의 평론 ‘트라우마 기억의 예술적 유희와 양가성의 윤리’에 의하면 볼탕스키는 죽을 만큼 힘들어서 작품을 통해 삶을 유희했다. 볼탕스키는 어린 시절 유태인 집단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학교에서 도망쳐 친구도 없었다. 그에게 미술을 한다는 것은 트라우마를 현실적 실행이 아닌 유희의 차원에서 다루는 해법이었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트라우마이며,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정의와 부조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

 

전시 전경

 

이처럼 죽음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작품성은 진작에 인정받았으나 컬렉터에게는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집에 그의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언제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고 하니, 볼탕스키가 하늘나라에서 대단히 재미있게 생각할 듯하다. ‘황혼’은 전시 기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165일의 전시 기간 동안 매일 하나의 전구가 꺼진다. 이 전구가 모두 꺼지기 전에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소영 기자

자료 제공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공간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주소
부산 해운대구 APEC로 58
일자
2021.10.15 - 202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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