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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

500평에 품어낸 이야기 속의 이야기

성수동 뉴 핫플레이스, LCDC 서울
오래되었지만 새롭고, 입구는 평범하지만 내부는 산뜻하다. 건물에 들어서자 파란 하늘을 네모나게 담은 중정 안에서 대왕참나무가 얼마 남지 않은 잎을 흔들며 서 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형을 뽑아내는 공업사, 서울 전역에서 쓸어온 듯한 온갖 고철이 쌓여 있는 고물상 사이 골목을 방금 지나쳐 왔다는 사실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낡고 오래된 공장이 즐비한 성수동 풍경과 반전되는 이곳은 'LCDC 서울'이다.
중정은 기존 건물을 개·보수한 A와 B동, 신축 건물 C동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각 건물, 각 브랜드의 이야기를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서 묶어주는 배경이자 틀이기도 하다.

LCDC 서울은 브랜드 ‘캉골’, ‘헬렌 카민스키’ 등을 전개하는 패션 회사 에스제이그룹이 지난 12월 3일 성동구 연무장길에 연 공간플랫폼이다. 영업면적만 500평. 1층에 자동차 수리점, 2·3층에 신발 제조 공장이 있던 대형 부지가 카페, 패션숍, 리빙숍, 전시장 등이 들어선 복합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복합문화공간, 리모델링 공간이 비 온 뒤 대나무처럼 생겨나는 서울에서 LCDC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강렬한 콘셉트를 내세워 선명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LCDC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Le Conte des Contes’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머릿글자를 따온 것으로, 이탈리아 문학가 잠 바티스타 바실레Giambattista Basile가 낸 동명의 이야기 모음집에서 유래했다. 여러 단편 소설들이 모여 하나의 단편집을 이루듯 LCDC 서울은 단편과 단편, 액자식 구성, 옴니버스 구성, 직렬과 병렬 등 ‘이야기’를 풀어내는 몇 가지 구조를 공간에 대입했다.

사진 제공: LCDC SEOUL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될 배경을 제공하는 건 건축물이다. LCDC 서울은 크게 A, B, C 동으로 나뉜다. 기존 건물을 개·보수한 A와 B동 그리고 신축 건물 C동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가운데 위치한 사각 마당. 이 중정은 각 건물에 자리잡은 테넌트가 가진 별별 이야기를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서 묶어주는, 즉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개념의 틀을 세운다.

 
1층의 카페 이페메라. 티켓, 전단 등 쓰임이 다한 후 수집품이 되는 종이 아이템을 모아 그림을 그리듯 벽면에 전시했다. 전시품 상당수가 전체 공간 기획을 총괄한 김재원 아틀리에 에크리튜 대표이 실제로 소장했던 것들이다.
사진 제공: LCDC SEOUL

 

1층 카페 이페메라는 가장 많은 방문객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이페메라’라는 장치를 통해 이야기 속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페메라(Ephemera)는 하루살이, 대수롭지 않은 물건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다. 우편물, 티켓, 전단지 등 김재원 대표가 오랜 기간 수집해온 자질구레한 유럽발 이페메라가 카페 벽면, 집기장에 은하수의 별처럼 배열돼 눈을 즐겁게 한다. 이페메라는 수집가의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뿐 아니라 방문객의 상념을 자극하는 도구로서 수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3층에는 패션 브랜드 르콩트 드콩트가 있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뜻을 공간에 녹여내기 위해 '병치'라는 단어를 공간의 언어로 선택했다. 조형적인 형태, 물성을 병렬 구조로 보여준다.
사진 제공: LCDC SEOUL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에는 패션 편집숍 ‘르콩트 드콩트’가 있다. LCDC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이 곳에서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뜻을 공간에서 녹여내기 위해 ‘병치’를 공간의 언어로 가져갔다. 넓은 도화지 위에 물건을 펼쳐 놓듯 진열해 다양한 물건이 가진 물성이 분출되듯 느껴지도록 했다. 인테리어 요소에서도 질감이 다른 재료들을 일부러 붙여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층에는 긴 복도에 7개의 문이 마주하고 있다. 문을 열면 브랜드가 만들어 내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3층 도어스의 첫번째 문인 팝업 공간 '도어스'. 12월 3일부터 2022년 1월 2일까지 아트 커머스 플랫폼 카바라이프의 전시 이 진행된다.
각 브랜드의 쇼룸 모습

 

3층 도어스는 크고 작은 브랜드들이 함께 한다는 ‘브랜드 속 브랜드’ 이야기를 전달한다. 정돈된 긴 복도에 7개의 공간이 마주하고 있다.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수많은 문마다 통하는 세계(아이의 방)가 있다는 설정에 착안했다. “복도를 거닐다가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방마다 존재하는 각 브랜드의 깊이 있는 세계관이 필요했죠.” 그렇게 총 6곳의 브랜드가 함께 하고 있으며 공간 한 곳은 팝업 전시장으로서, 현재 아트 커머스 브랜드 카바라이프가 국내 수집가 열 한 명의 애장품을 소개하는 전시 <수집가의 말>을 열고 있다.

 

4층의 포스트스크립트. 편지 끝에 추신을 남기듯, 일상 끝에 술 한잔과 함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루프탑 바다.

 

마지막 층에 이르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루프탑 바 포스트스크립트를 만난다. 추신을 뜻하는 영단어 포스트스크립트(Post script)에서 이름을 따온 이곳은, 편지 끝에 진심이 담긴 추신을 남기듯 일상 끝에 술 한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콘셉트로 구성했다.

 

 

 

Interview with 사무소효자동 서승모 건축가

 

LCDC 파사드 일부. 리노베이션을 거치며 기존 창을 벽처럼 막았지만 그 흔적은 '박제'되어 있다. ⓒChin hyosook
삼각형으로 도려내 내부가 슬쩍 들여다 보이는 1층 출입구. 서승모 건축가의 표현에 따르면 이러한 '틈'이 건물 곳곳에 있다.

 

LCDC 서울(이하 LCDC)를 설계하면서 핵심으로 삼은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세 가지였어요. 박제를 하는 것, 틈을 만드는 것, 메가베이터. 우선 박제는 과거의 것을 유지하는 거예요. 유럽에서 간혹 기존 건물을 새로운 용도로 사용할 때 불필요한 창문이 있으면 창문의 위치는 유지하되 안쪽에서 막는 경우가 있어요. 밖에서 보면 창문이 있었던 흔적이 보이죠. LCDC에서도 공업사로 사용된 기존 건물이 가진 창문의 위치를 대부분 유지하고 실내에서 벽과 같은 색으로 막았어요. 그리고 기존 것을 박제한 상태에서 을 곳곳에 냈어요. 1층 출입구를 삼각형으로 잘라내고 투명한 유리를 설치해서 건물 안쪽이 슬쩍 보이도록 했고, 기존 건물과 중정을 이루는 사각 벽면 사이에도 틈을 냈지요. 건물과 건물 사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넣고요.

 

기존 엘리베이터에 비해 길이가 길어 마치 방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진다. 거울을 부착해 착시 효과를 배가했다.

 

메가베이터(Megavator)는 말 그대로 거대한 엘리베이터에요. 일반적인 엘리베이터와 다르게 마치 방처럼 크고 넓어요. LCDC는 각 층마다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있으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듯 환각을 주는 엘리베이터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아쉽게도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지 않아서 인테리어 업체에서 거울을 만들어서 보다 넓게 보이도록 했어요.

 

사실 LCDC에 방문하기 전에 어느정도 예상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성수동에서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건물이라면 분명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일 거라고요.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은 성수동의 시그니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흔하니까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 않아서 좋았어요. 일종의 반전이었죠. 이 건물에 있던 자동차 공업소나 신발 제조공장의 흔적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나요?

콘텐츠나 인테리어의 수명은 짧으면 1년, 길면 10년이에요. 하지만 건축은 30년, 50년, 100년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공간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플레이’를 할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배경이 되는 공간이 필요해요. 건축을 할 때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 설명이 필요한 것보다 정확한 틀과 형식으로 읽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콘텐츠를 뽑아서 그걸로 뭔가를 만들려는 습성은 없는 편이죠.

 

마당을 둘러싼 벽면은 세 개의 건물을 연결해주는 중심 역할을 한다. ⓒChin hyosook
ⓒChin hyosook

 

배경이 되는 건물, 무엇이 오더라도 담을 수 있는 용기 같은 건물이 되려면 불필요한 시선을 끌지 않는 디자인이 필요했을 듯합니다.

디자인이 복잡한 건물에 복잡한 콘텐츠를 담으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LCDC에는 뭘 붙여 놔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콘텐츠가 바뀌어도 선이 잘 살아 있을 건물을 생각했어요.

LCDC에서 특별히 공을 들인 건축적 디테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중정의 윤곽이 된 벽면이요. 한쪽 변이 13m 정도 되는데, 자세히 보면 기둥이 없이 땅에서 떠 있어요. C동이 중심이 돼서 이 무거운 벽을 잡고 있는 거예요. C동이 팔을 뻗어서 마당을 감싸 안은 형상이죠. 이 벽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Chin hyosook

 

앞으로 이 공간에서 기대하는 풍경이 있나요?

중정 벽이 하늘을 잘라내서 보여주는데, 따뜻한 날에는 이 야외 풍경을 오롯하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저희가 담당하진 않았는데 마당에 음향 시설과 조명도 잘 갖춰져 있어요. 음악회를 비롯해서 외부 행사가 열리는 계절이 되면 더 탄력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유제이

자료 협조 LCDC 서울

장소
LCDC 서울 (서울 성동구 연무장17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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