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지 않는다. 성인 1명이 1년간 구매하는 종이책은 평균 0.8권.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 독서실태조사’ 결과다. 하지만 텍스트는 어느 때보다 ‘힙’하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간 인원은 약 16만 명. 그렇다면 동네 서점은 어떻게 사람들의 눈에 띄고 운영을 이어갈까.
올해로 5년 차를 맞이한 오케이어 맨션은 조금 독특하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인쇄해 책과 꽃을 선물하는 ‘책다발’ 서비스가 있다. 서점에는 선물용 책을 고르는 손님들이 눈에 띈다. 간단해 보이는 서비스에도 숨은 디테일이 있었다. 띠지에 칼선을 내 꽃을 고정하고, 물이 흐르지 않도록 수분젤을 사용한 것. 그 모든 건 손님을 관찰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했다. 서점을 열기 전 20년간 마케터로 일했다는 김은경 대표를 만났다.
좋아하는 것들의 합으로 만든 서점, 책×커피×꽃
― 서점을 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막연한 생각은 중학생 때부터 있었어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서점이 있었는데, 직접 책을 고르고 사는 경험이 좋았거든요. 서점을 열기 전에는 마케터로 일했어요. 처음 10년은 여러 브랜드와 제휴 마케팅을 했고, 이후 10년은 한 브랜드의 마케팅을 맡았죠.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 꿈을 품고 있었어요. 첫 회사를 퇴사했을 때는 자금도 경험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회사는 한 브랜드에서 다양한 걸 실행해볼 수 있는 곳으로 갔죠. 여기를 퇴사하고는 이제 해보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서점을 차리기 위해 뭔가를 배우거나 자격증을 딴 건 아니에요. 매주 등산을 하면서 제가 식물에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돼 플랜트 과정을 공부했고, 커피도 좋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요. 공간을 준비하면서는 책으로만 빼곡하게 채우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두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에 식물도 들이고, 카페도 함께 운영하게 됐죠.
― ‘오케이어 맨션’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요?
제가 평소에 ‘오케이’라는 말을 잘 써요. 이름을 고민하던 때 예전 직장 후배가 “부장님이 오케이 사인을 해주면 제일 좋았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저도 좋아하고 자주 쓰는 말이었어요. 긍정의 의미도 있고요. 거기에 ‘-er’을 붙여 ‘오케이어’로 만들었어요. 검색해 보니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 원고를 인쇄 직전까지 검토하는 교열자를 ‘오케이어’라고 부르더라고요. 서점과도 잘 맞는 의미라 좋았어요.
‘맨션’은 이곳이 손님들에게 서재이자 제2의 집 같은 공간이었으면 해서 붙였어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늦은 밤이 외로웠거든요. 친구처럼 친밀하지 않아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생활이 조금 덜 외롭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동네와 공간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역삼동에서 16년 정도 살았어요. 직장인들이 많은 동네였죠. 책을 좋아했지만 직장에 다니면서 충분히 읽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책을 보러 올 만한 동네를 찾았어요. 평소 다니던 곳 중에서는 망원과 성수가 떠올랐죠.
그러다 부동산에서 이곳을 소개받았어요. 상수는 그때 처음 와봤는데, 공간이 마음에 들었어요. 큰 창으로 자연광이 들어오고 앞 골목이 트여 있다는 점이 좋았죠. 상수역에서도 걸어서 3분이 채 안 걸리더라고요. 서점은 목적을 갖고 찾아오는 곳이니,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도 접근성이 괜찮으면 찾아오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케터가 만드는 서점은 다를까? ‘책다발’ 탄생기
― 책을 사면 꽃 한 송이를 주시더라고요. ‘책다발’이란 서비스도 있고요.
갖고있던 습관에서 자연스럽게 힌트를 얻었어요. 책을 읽을 때,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카페 영수증이나 영화 티켓 같은 걸 책에 끼워 두거든요. 꽃을 말려서 넣기도 하고요. 나중에 책을 펼치면 그때 기억도 함께 떠오르잖아요.
거기서 착안해 처음에는 꽃을 잘라서 드리면서 압화를 권했어요. 그런데 책 사이에 무언가 끼우는 걸 원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꽃 한 송이를 따로 드리기 시작했어요. 꽃을 꽂아두고 책을 읽으면 그 시간이 조금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책다발’도 손님들을 보면서 떠올렸어요. 선물용 책을 고르며 정말 많이 고민하시거든요. 그런데 받는 사람은 그 과정을 다 알기 어렵잖아요. 선물을 받는 순간부터 그 마음이 전해졌으면 했어요. 그래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인쇄해 책을 포장하고, 꽃을 함께 드리는 서비스를 만들었죠.
중학생 때 다니던 서점에서 받은 책갈피를 아직 갖고 있어요. 그걸 보면 당시 기억이 떠오르거든요. 오케이어 맨션에서도 그런 기억을 담아둘 수 있는 무언가를 드리고 싶었어요. 올해는 책갈피에 넣은 문장에서 단어 하나를 빈칸으로 뒀어요. 손님이 자기만의 단어를 채워보는 거죠. 책을 읽던 때의 생각과 마음도 함께 담아두는 책갈피였으면 해요.
― 고객 관찰에서 나온 결과군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지켜봐요.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바꿀 부분이 보이거든요. 꽃을 드릴 때 쓰는 띠지도 그랬어요. 처음에는 책과 꽃을 띠지로 감싸서 드렸는데, 손님이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꽃이 흔들리더라고요. 그래서 띠지에 칼선을 내 꽃을 꽂아 고정할 수 있게 바꿨어요. 좀 더 편하게 들고 가실 수 있도록요.
공간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지금과 구성이 달랐는데, 앉아서 뭔가 기록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집중해서 쓰실 수 있도록 1인석을 만들었어요. 손님들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시는지 보면서 조금씩 바꿔 가는 거죠.
독자로 서점에 다닐 때는 무관심한 응대가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저는 책을 매개로 손님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이곳에 온 분들을 그냥 왔다 가는 사람이 아니라 제가 챙겨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귀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고 돌아가셨으면 해요.
겨울이 되면 창가 자리에 바람이 조금 들어요. 손님이 추워 보이면 담요를 따뜻하게 데워서 건네거든요. 받는 순간 나를 위해 이렇게 해줬다는 데서 감동을 받으세요. 꽃시장도 일주일에 두세 번 가요. 다녀오는 데 2~3시간씩 걸려도, 손님들이 집에서 오래 보실 수 있게 싱싱한 꽃을 드리고 싶거든요. 할인하지 않는 대신 손님 한 분 한 분을 세심하게 챙기는 데 더 마음을 쓰고 있어요. 이곳에서 환대를 경험하고 돌아가셨으면 해요.
동네 서점의 매력과 생존기
― 처음 오픈했을 때, 어떻게 알렸나요?
1년은 고전했어요. 코로나 끝무렵에 시작했는데, 당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사장님들이 주위에 있었어요. 함께 모여서 같이 회의를 했죠(웃음). 이런 걸 해봤는데, 괜찮은 것 같다고 의견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덕분에 덜 지치고 함께 방법을 찾아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이곳을 좋아해 주시는 손님들이 생겼고, 없어지면 안 된다며 소문을 내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죠.
또 하루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50명 안팎이지만, 밖에는 훨씬 많은 사람이 있잖아요. 그분들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이 SNS예요. 눈에 띄어야 찾아오실 수 있고, 좋은 경험을 드릴 수 있으니까요.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올리는 편인데요. 공간을 보여주기보단 ‘가서 이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콘텐츠를 만들어요. 광고비를 쓰기보다는 고객들의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해요.
― 다른 서점도 참고하나요?
마케터로 일할 때부터 같은 업종을 비교하며 아이디어를 찾지는 않았어요. 다른 업종에서 힌트를 얻고, 서점에 전혀 다른 것을 결합하는 게 재미있거든요. 핼러윈에는 마녀 옷을 입고 뱅쇼를 내기도 했어요. 그런 시도가 자연스럽게 입소문으로 이어졌고요. 결국 마케팅에서 중요한 건 사람 마음에 물결을 만드는 일 같아요.
― 올해 서점을 양도하려고 했다가, 다시 운영하기로 했다고요.
문을 열고 매년 매출이 성장했거든요. 그런데 올해 초 처음으로 꺾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4년간 서점을 운영하는 게 직장 생활 10년 치에 맞먹더라고요. 카페도 운영해야지, 꽃시장도 가야지, 서점이니 책을 고르고 추천하는 건 당연하고요. 지치더라고요. 마침, 다른 곳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도 받았고요.
4년 동안 재밌게 운영했으니 이제 정리할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 공간이 다른 업종으로 바뀌는 게 아까워서, 서점을 이어갈 분을 찾는 글을 올렸었어요. 제가 운영하지 않아도, 서점으로 남으면 손님들이 다른 추억을 쌓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글을 올린 뒤에 단골손님들한테 편지가 오기 시작했어요. 글을 읽는데 이 공간을 못 놓겠더라고요.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더 버는 게 내 인생의 다음 미션일까?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싶었어요. 제가 설득이 된 거죠. 결국 제가 계속 운영하기로 했어요. 그 사이 인사를 하러 오시는 단골분들도 있고, 새로 방문하는 분도 있어서 매출도 전보다 회복됐어요.
― 계속 할 수 있는 힘은 뭘까요.
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여기를 매주 방문하는 분도 있거든요. 저희가 친구는 아니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면접을 앞두고 고민하는 분들 상담도 많이 해드리고요. 그렇게 손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다 보니 그분들이 다시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매출로도 이어지는 거죠.
글·사진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오케이어 맨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