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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2

2년 만에 문을 연 운경고택에서 만나는〈다시 도착한 집〉

사직단 인근에 자리한 1930년대 서울식 한옥의 모습은?

서울 사직단 옆 인왕산 자락에 ‘운경고택’이 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서울식 한옥으로, 제12대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 이재형이 1953년부터 39년간 살았다.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고 기획전이 열릴 때만 문을 연다. 이곳에서 9월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김동희 개인전 〈다시 도착한 집〉이 열린다. 

조선시대 궁터에서 전시장으로

운경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로 이뤄진 서울식 전통 한옥이다. 조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과 그의 후손들이 살았던 도정궁 터에 자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의 10대손인 이재형은 1953년 이곳을 거처로 삼았다.

 

이재형이 생전에 손님을 맞았던 사랑채 ‘긍구당’에는 정치·경제·문화계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안채는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다. 이재형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93년 운경재단이 설립됐고, 이후 집의 복원과 보존을 이어오고 있다.〈다시 도착한 집〉은 2024년 이완 개인전 이후 2년 만에 열리는 네 번째 기획전이다.

집 자체를 들여다보는 전시

©이종근, 운경재단

과거 전시들이 운경 이재형이라는 인물과 이곳에 남은 삶의 흔적을 다뤘다면, 이번에는 집 자체에 주목한다. 경사진 땅 위에 집이 놓인 방식과 안채·사랑채의 관계, 운경고택이 주변 환경과 함께 변화해온 시간을 살핀다. 

 

김동희는 공간의 구조를 바꾸거나 새로운 동선을 만들어 익숙한 장소를 다르게 보게 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계단처럼 사용되지 않는 공간을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바꾸고, 계단과 난간, 복도 등의 구조를 변형해 관람객의 움직임을 유도했다.

©이종근, 운경재단

작가는 약 2년 동안 계절마다 운경고택을 찾았다. 집의 지형과 구조를 살피고, 가족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이야기도 들었다. 완성된 작품을 옮겨오기보다 운경고택에서 발견한 특징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전시는 독립 큐레이터 우혜수가 기획했다. 리움미술관 학예실장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서도호: 집 속의 집〉, 〈안드레아스 거스키〉 등을 기획했다. 운경고택에서는 2022년 〈최정화: 당신은 나의 집〉과 2024년 이완 개인전 〈랜덤 액세스 메모리 3: 기록과 기억〉을 선보였다.

낮은 곳에서 바라본 운경고택

©이종근, 운경재단

전시는 앞마당의 〈육분원을 위한 굴토〉에서 시작한다. 마당의 땅을 60도 부채꼴 모양으로 파낸 작품이다. 밖으로 옮긴 흙만 약 6톤에 이른다. 파낸 흙은 별도로 보관했다가 전시가 끝나면 다시 마당으로 돌아간다. 관람객은 땅 아래 마련된 자리에 앉아 안채를 올려다보게 된다. 대문채에서 안채로 갈수록 높아지는 운경고택의 지형을 보여주는 장치다.

©헤이팝

중문에서 담을 넘어 이어지는 〈검은 선〉도 집의 높이 차이를 드러낸다. 앞마당에서는 머리 위에 있던 선이 안채로 올라가면 관람객의 눈높이와 가까워진다. 곡선으로 이어진 한옥 지붕과 곧은 검은 선이 대비를 이룬다.

작품은 과거의 공간을 재현하거나 장소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공간 안에 잠재해 있던 구조와 관계를 드러낸다. 김동희 작가에게 장소는 끊임없이 다시 읽고, 경험하는 과정이다.

신발을 벗은 채 마당으로

〈흰 계단 1, 2〉는 사람들이 오가던 동선을 입체적인 구조물로 옮긴 작품이다. 대청마루와 마당 사이에 계단을 놓아, 관람객이 신발을 벗은 채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한옥에서 자연스럽게 나뉘던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잠시 흔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계단의 형태보다 그 위를 걷는 경험이다. 관람객이 평소와 다른 높이와 방향으로 이동할 때 작품이 완성되고, 익숙했던 고택의 구조도 새롭게 드러난다.

사랑채의 다락을 밖으로 꺼내다

©이종근, 운경재단

큰마당에는 〈뒤집힌 다락〉을 선보인다. 사랑채 내부에 숨겨진 다락을 실제 크기로 만들고 좌우를 반전해 집 밖에 세웠다.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던 폐쇄적인 공간을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 주변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로 바꿨다.

내부에서는 레코딩 아티스트 김영선의 사운드 작업을 들을 수 있다. 2024년 이완 개인전 당시 운경고택에서 선보인 소리를 다시 구성했다. 과거 전시의 소리와 현재의 풍경을 한 공간에 겹쳐 놓는다.

©이종근, 운경재단

안채의 〈지도 병합〉과 창 작업에는 운경고택 주변의 시대별 지도와 지형을 여러 겹으로 배치했다. 고택은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지도에 기록된 위치와 주변 풍경은 조금씩 달라졌다. 창밖의 현재 풍경 위로 과거의 지도와 지형이 겹쳐 보이도록 구성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자 관람객의 움직임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작품에 앉거나 올라가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운경고택의 높낮이와 안팎의 관계가 드러난다. 작품을 다 보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면, 마주하는 장소는 처음과 같은 장소가 아닐지 모른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층위 속에 현재를 마주하는 건 어떤 일인지 떠올리며 관람해보자.

헤이팝 편집부
자료제공 및 취재협조 운경재단

프로젝트
〈다시 도착한 집〉
장소
운경고택
주소
서울 종로구 인왕산로 7
일자
2026.09.02 - 2026.10.31
주최
운경재단
기획자/디렉터
우혜수
참여작가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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