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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6

‘프로-스펙스’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 장소는?

45년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완성한 새로운 거점
프로-스펙스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 외관 출처: 프로-스펙스 인스타그램

프로-스펙스가 서울 서촌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1990년대 실제 매장이 자리했던 건물에 터를 잡았다. 같은 장소에 30여 년 만에 다시 브랜드의 이름을 내건 것이다. 올해 론칭 45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리브랜딩에 나선 프로-스펙스는 이번 플래그십을 통해 그 방향을 공간으로 확장했다. 45년의 헤리티지를 지닌 브랜드는 다시 마주한 과거의 자리에서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프로-스펙스의 변화와 함께 서촌에 문을 연 새로운 공간을 살펴봤다.

프로-스펙스 45년 역사를 돌아보다

스포츠가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빠르게 자리 잡던 1980년대, 프로-스펙스는 전문 스포츠화를 만드는 브랜드인 동시에 젊은 세대가 선망하는 상징이었다. 해외 스포츠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속속 진입하던 상황에서도 자체 기술과 디자인을 앞세워 입지를 넓혔고, 1986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서울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참여한 경험은 프로-스펙스를 한국 스포츠 산업의 성장과 함께해온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프로-스펙스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거와 같은 존재감을 이어가기는 어려웠다. 2000년대 후반 워킹화 시장을 개척하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하던 브랜드의 위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프로-스펙스는 쌓아온 시간을 다시 들여다보며 변화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2021년 외부 아키비스트와 함께 ‘헤리티지 기초조사’​를 진행해 과거 제품과 사진, 광고는 물론 1990년대 쇼핑백과 철수한 매장의 간판까지 브랜드의 흔적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에는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 작업은 과거를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이어갈 헤리티지와 브랜드의 방향을 세우는 과정이 됐다.

경복궁역에서 발견한 프로-스펙스 캠페인 이미지

올해 45주년을 맞은 프로-스펙스는 본격적인 리브랜딩에 나섰다. 새롭게 내건 핵심 가치는 ‘SPORTS FOR ALL’. 기록과 경쟁만을 앞세우기보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스포츠를 즐기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동시에 유통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브랜드 중심 전략으로 전환해 제품과 디자인, 공간 전반에서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구축하고 있다. 새롭게 문을 연 서촌 플래그십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

30여 년 전 매장이 있던 자리로

프로-스펙스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 1층에서 이전 매장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장소의 이력이다. 지금 ‘프로-스펙스 서촌’이 들어선 건물에는 1990년대 실제 프로-스펙스 매장이 있었다. 30여 년 전 머물렀던 자리에 새로운 거점을 세운 것이다. 오랜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며 앞으로 이어갈 가치를 찾고 있는 최근의 행보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공간 디자인은 스튜디오 COM이 맡았다. COM은 상업 공간과 오피스를 중심으로 공간과 가구를 함께 설계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HYBE 사옥을 비롯해 아모레 성수, 맹그로브 동대문 등을 작업했으며, 올해에는 무신사 메가스토어 성수와 독립서점 유어마인드 등을 새로 선보였다. 

프로-스펙스 서촌에서는 건물에 남아 있던 구조를 지우기보다 이를 새로운 매장의 바탕으로 삼았다. 노출 콘크리트 골조와 테라조 바닥은 그대로 살리고 흰색 프레임을 최소한으로 더해 오래된 흔적과 새 요소가 함께 드러나게 했다. 특히 1층은 안팎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열어두고 외벽 일부를 유리로 구성해, 서촌 거리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실내까지 이어진다. 프로-스펙스는 앞으로 이곳에서 제품뿐 아니라 스포츠를 매개로 한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달리는 장면’

새로운 공간에서 가장 먼저 꺼낸 이야기는 ‘달리기’다.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기념해 오는 10월 5일까지 춘천마라톤 80주년 전시 〈Wish You Were Here〉를 선보인다. 프로-스펙스는 2023년부터 춘천마라톤 공식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승 기록이나 순위보다 달리는 동안 마주한 풍경과 사람, 러너 개개인의 경험에 시선을 둔다.

전시는 1층 ‘Prologue: 향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사진가 장수인이 유럽과 미국, 인도, 호주, 한국 등 세계 곳곳을 오가며 기록한 장면을 슬라이드 필름 형식으로 선보인다. 사진은 날씨와 빛, 소리와 향처럼 문득 지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감각을 포착한다. 전시 제목 〈Wish You Were Here〉처럼 좋은 풍경 앞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함께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곳곳에 배어 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엽서로 골라 가족이나 친구,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작성한 편지는 전시가 끝난 뒤 적어둔 주소로 발송된다.

2층으로 올라가면 ‘12 Scenes from the Road: 풍경의 기억’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춘천마라톤과 인연을 맺어온 12명의 러너가 저마다의 달리기를 이야기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와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권은주를 비롯해 춘천마라톤 페이스메이커와 아마추어 러너 등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실제로 사용하거나 오랫동안 간직해온 물건을 함께 전시해, 춘천마라톤을 매개로 쌓인 서로 다른 경험과 시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전시는 유명 선수의 성취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1995년 권은주가 남긴 훈련일지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출근길을 달렸던 러너 심진식의 안전화까지, 전시장에는 각자가 달려온 시간을 보여주는 물건들이 놓여 있다. 전문 선수와 아마추어 러너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은 구성은 기록과 경쟁을 넘어 각자의 방식으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프로-스펙스의 ‘SPORTS FOR ALL’과도 맞닿아 있다.

에코백, 키링, 핀 뱃지 등 춘천마라톤 80주년 굿즈도 판매하고 있다

전시를 둘러본 뒤에는 건물 위쪽까지 올라가 보자. 3층에는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이 자리하고 있으며, 4층에는 향후 러닝과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돼 있다. 옥상에 오르면 인왕산과 서촌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목과 오래된 건물이 이어지는 동네의 모습까지 보고 나면, 프로-스펙스가 왜 다시 이곳을 새로운 거점으로 택했는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45년의 시간을 돌아보고 다시 출발선에 선 프로-스펙스가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이어갈지 궁금해진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프로-스펙스

프로젝트
〈Wish You Were Here〉
장소
프로스펙스 서촌 플래그십 스토어
주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42
일자
2026.09.05 - 2026.10.05
시간
매일 12:00 - 20:00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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