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2025년 한 해에만 6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며, 루브르와 바티칸 박물관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사람이 찾았다. 전시실 바깥의 열기도 뜨겁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상품 브랜드 ‘뮷즈(MU:DS)’는 지난해 연 매출이 처음으로 400억 원을 넘어섰다. 이제 국중박은 문화유산을 보러 가는 장소를 넘어, 전시를 보고 물건을 사는 등 우리 문화를 경험하는 가장 뜨거운 문화 공간 중 하나가 됐다.
요즘 국중박은 전시만 보고 나오기엔 아쉽다. 전시실에서 본 유물과 이야기가 뮤지엄숍에서 흥미로운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기 때문. 지금 그 재미를 가장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과 이를 연계한 뮷즈 컬렉션이다.
K-푸드의 기원을 찾아서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0월 25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은 K-푸드의 뿌리인 한국의 식문화를 다각도로 살핀다. 음악과 드라마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쌓아 올린 문화의 결과물이듯, K-푸드 역시 우리가 매일 마주해 온 평범한 밥상에서 시작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국 51개 기관에서 모인 488건 684점의 유물과 작품을 통해 그 흔적을 따라간다. 고고학 유물부터 조선 왕실의 의궤, 문인의 미식 기록, 풍속화와 근현대 미술까지. ‘무엇을 먹어왔는가’를 살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닿는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1부 ‘삶과 함께 한 우리 밥상’에서는 우리가 언제부터,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밥을 먹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약 3천 년 전 볍씨에서 출발해 밥과 국, 반찬으로 이어지는 한 상 구성, 숟가락과 젓가락, 그릇과 소반을 들여다보면, 평범한 밥상에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 먹는 한 끼부터 들판과 강가에 둘러앉아 나누는 밥까지, 먹는 풍경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도 보여준다.
2부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에서 시선은 밥상 밖으로 움직인다. 계절에 따라 산과 들, 바다에서 먹거리를 구해온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 밥상이 자연의 흐름과 얼마나 긴밀하게 맞닿아 있었는지 짚는다. 팔도의 특산물과 제철 음식처럼 계절마다 되풀이되는 맛의 기억을 통해 한식이란 결국 이 땅의 자연에 맞춰 살아온 삶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1부에서 눈여겨볼 것은 밥상에 결코 빠질 수 없는 물건들이다. 6세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숟가락과 젓가락, 수저받침은 당시 왕과 왕비의 식사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쌀을 익히는 데 쓰인 시루와 솥도 빠질 수 없다. 어떤 도구로 밥을 짓고, 무엇에 담아 먹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오늘의 밥상이 만들어진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허균이 남긴 400년 전 ‘전국 맛 지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2부로 넘어가면 시선은 ‘먹거리’로 향한다. 그중 반가운 이름이 하나 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이다. 그는 1611년 유배지에서 과거 전국을 다니며 맛보았던 음식과 식재료를 떠올리며 〈도문대작〉을 남겼다. 제목은 ‘푸줏간 앞을 지나며 크게 입맛을 다신다’는 뜻. 어느 지역에서 무엇이 맛있었는지 하나하나 기록한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약 400년 전 조선 미식가가 그린 ‘전국 맛 지도’를 펼쳐보는 듯하다.
〈도문대작〉이 글로 남긴 조선의 맛이라면, 옛 그림에서는 오늘날의 식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변상벽의 〈닭과 병아리〉에는 ‘인삼·백출과 함께해야 더 큰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다. 닭과 약재를 함께 먹는 음식이 자연스레 오늘날의 삼계탕을 연상시킨다. 성협의 〈고기 굽기〉는 더욱 친숙하다.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번철 위에 고기를 굽는 모습이 오늘날의 고깃집 풍경과 제법 닮아 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좌)국립중앙박물관 우)길보경
전시 끝자락에는 슬슬 허기가 돈다. 밥상을 차리는 소리와 음식에 관한 의성어·의태어가 곳곳에서 들리기 때문. 온지음 맛공방과 함께 만든 조리 영상과 음식 이미지도 눈길을 붙든다. 덕분에 눈앞에 없는 맛과 냄새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취향은 물론 살아온 환경과 습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까지 밥상 위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래서 밥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나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스스로를 이해하는 작은 실마리 하나쯤 발견해보길 바란다.
전시의 여운은 뮤지엄숍에서 계속된다
전시실을 나왔다고 전시의 여운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시실 초입에 자리한 뮤지엄숍 혹은 뮷즈 웹사이트에 함께 선보인 〈우리들의 밥상〉컬렉션을 둘러보면, 전시가 생활 속 물건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 수저, 소반처럼 실제로 오늘날 식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중심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 전시실에서 살펴본 우리 밥상의 오랜 시간은 뮤지엄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형태와 쓰임을 오늘의 생활에 맞게 풀어낸 뮷즈 가운데, 탐났던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ㅣ 수가 쓰인 팔각 전통주잔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번 뮷즈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을 하나 고른다면 이 잔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壽)가 쓰인 백자 청화 각진 잔〉의 팔각 형태와 장수와 복을 뜻하는 ‘수(壽)’ 문양을 현대적인 유리잔으로 재해석했다. 유리공예가 박선민이 재생 유리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제작했으며, 단 200세트만 선보인다.
ㅣ 호족반 & 호족 트레이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이번 전시에서 유독 자주 눈에 들어온 물건이 바로 ‘소반’이다. 한 사람이 한 상을 받아 식사했던 우리 고유의 식문화뿐 아니라 음식을 나르고 함께 나누던 풍경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호랑이 다리를 닮은 형태에서 이름을 얻은 호족반은 전시 연계 뮷즈에서 하나의 생활 오브제로 다시 등장한다. 호족반의 조형을 간결하게 옮긴 트레이도 눈길을 끈다. 전통 가구의 형태와 쓰임을 오늘의 생활 방식에 맞게 다시 풀어낸 제품이다.
ㅣ 호족반 테이블 매트
전통 소반의 조형을 한층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테이블 매트. 십이각 호족반의 단정한 상판 형태를 모티프 삼았다. 호랑이 다리를 닮은 호족반의 모습을 자수로 새겨 섬세하고도 은은한 세련미를 자아낸다.
ㅣ 왕과 왕비 다과용 식기 세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수저 전문 브랜드 코스틱과 함께 만든 ‘왕과 왕비 다과용 식기 세트’는 전시에 등장하는 6세기 무령왕릉 출토 청동 숟가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다. 길이 163mm의 숟가락과 포크 한 점씩으로 구성했으며,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했다.
ㅣ 밥그릇과 국그릇 세트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한식의 기본을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물건은 역시 밥그릇과 국그릇이다. 이번에는 1943년 설립 이후 국내 생산을 이어온 한국도자기와 협업해 밥그릇·국그릇 세트를 만들었다. 전시가 밥과 국, 반찬이 한 상을 이루는 우리의 식사 문화에 주목했다면, 뮷즈는 그 이야기를 가장 일상적인 두 개의 그릇으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