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떤 편견과 싸운다. 그게 꼭 나쁜 이미지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홍대 마녀와 홍대 여신이라는 호칭이 그랬다. 지난 주말 영희 페스티벌이 열렸다. 기획자는 싱어송라이터 오지은. 뮤지션 외에도 작가, 코미디언, 감독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아티스트로 페스티벌은 채워졌다. 그중 ‘홍대 마녀와 홍대 여신’으로 불렸던 오지은과 요조의 토크 세션에서 두 아티스트는 호칭에 대해 느꼈던 불편함을 이야기했다. 언뜻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닮아 있던 경험에 대해. 그리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않았던 시간에 대해.
무명의 아티스트에게 무언가 호명될 수 있는 ‘호칭’을 갖는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그렇기에 불편하다고 말하면, 고마운 줄 모른다는 답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음악이 있어도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거나, 스스로 그 이미지에 복무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는 ‘여신’이라는 호칭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녀’라 불렸던 오지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넌 좀 다르잖아”라고 말하면서도, 무언가를 깎아내리고 싶을 때 그 호칭을 이용했다. 어느 쪽이든 호칭은 사람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무대는 단지 두 아티스트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를 어떤 이미지나 프레임으로 보는 것 때문에 괴로운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이야기기도 했다. 두 아티스트는 오랜 기간, 자신을 탓했던 시간에 대해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음악성을 인정받는 뮤지션도 있는데, 그러지 못한 건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두 사람 모두 오랜 기간 새 앨범을 내지 않았고, 홍대를 떠나 삶의 터전을 옮겼다. 물론 그때의 상처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세션은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두 사람이 이제는 당시의 힘듦을 껄껄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증거로 보였다. 오지은은 다시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올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편견과 자주 부딪혀온 여성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혔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의 세션을 보면서다. 그의 세션을 보기 전 같이 긴장했다. 뮤지션도 스탠드업 코미디언도 아닌 작가가 홀로 무대를 채워야 하다니. 심지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토크 세션도 아니고, PPT조차 활용할 수 없었다. 내향인 작가의 떨림이 전해졌다. 하지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랜 기간 독서 교실을 운영해 온 내공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어느새 작가의 안내에 따라 상상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김소영 작가의 말이다. “어른들은 삶을 좋은 것, 행복한 것, 축복받은 것이라고 믿게 하려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어린이들도 아픈 것, 슬픈 것, 버려지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면을 다 겪고 거치면서 여기까지 오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는 의젓하고 환한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슬픔을 겪어요. 많은 어린이가 ‘내가 잘못된 것 같아, 나만 틀린 것 같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고립감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죠.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 슬픔 가운데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으로 여러분이 자란 거예요. 지금의 영희로요.”
음악과 동화, 아니 이 페스티벌과 김소영 작가의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될까. 그는 음악이 동화와 닮았다고 했다. 동화책에 약간의 슬픔이 있듯,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음악을 할 리는 없을 것 같다고. 앞서 편견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그 기억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두 아티스트의 이야기처럼, 그날 모인 관객들도 저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어른으로 자랐다는 이야기와 겹쳐 보였다. 각자의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페스티벌에서 응원과 연대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걸 느꼈다. 왜였을까. 출발부터 여성 아티스트를 위한 장을 만들겠다는 도전으로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30여 팀의 아티스트가 덥석 출연에 응했고, 오픈 하루 만에 매진된 페스티벌이었다. 또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사월은 “무대가 없을 때는 보여줄 무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탓을 하다가, 막상 판이 깔렸는데 제대로 못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을 이야기했고, 관객들은 뜨거운 호응으로 답했다. 기획자인 오지은은 언젠가 이 페스티벌이 없어질 날을 꿈꾼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넓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년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