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3

혼자여도 좋은 제주 여행 코스 5

사유하고 기록하며 머무는 제주 서부 여행

제주는 함께 떠나도 좋지만, 혼자일 때 비로소 결이 또렷해지는 여행지다. 마케터라는 직업 탓인지 나는 늘 ‘잘 쉬는 여행’보다는 전시와 공간을 따라 걸으며 영감을 쌓는 쪽을 선택해 왔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제주에 머무는 시간은 나만의 속도로 보고 느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형태의 휴식이다. 미술관에서 사유하고, 단정한 식사로 하루의 속도를 낮추고, 문구와 책으로 여행의 흔적을 기록하다 보면 ‘혼자’라는 상태는 어느새 가장 편안한 선택이 된다. 붐비지 않는 공간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주 서부 여행을 추천한다. 

도토리키친 본점

(좌) 도토리키친 외관 출처: 도토리키친 (우) 청귤소바와 톳유부초밥 ⓒ이규리

여행지에서 식당을 고를 때는 맛만큼이나 메뉴의 결이 중요하다. 도토리키친은 제주 청귤을 활용한 청귤소바와 톳유부초밥을 중심으로, 지역의 풍토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식당이다. 청귤의 산미가 더해진 소바는 가볍고 깔끔한 인상을 남기고, 바다의 향을 머금은 톳유부초밥은 담백하면서도 은근한 깊이를 전한다. 두 가지 메뉴를 함께 주문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라, 산뜻한 식사를 찾는 일인 여행자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비건을 고려한 선택지가 마련돼 있다는 점도 반갑다. 전시와 산책으로 하루를 채우기 전, 만족스러운 출발점이 되어주는 곳이다.

 

주소: 제주시 북성로 59

클래식문구사 & 이후북스

클래식문구사 ⓒ이규리

본격적인 여정에 앞서, 여행의 결을 한층 섬세하게 만들어주는 코스로 ‘클래식문구사’와 ‘이후북스’를 추천한다. 클래식문구사는 세월이 담긴 문구류와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소개하는 잡화점으로 규모는 아담하지만,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금세 시간이 흐른다. 특히 연말과 연초에는 감성적인 다이어리 제품이 많아, 여행을 기록으로 이어가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 흔히 볼 수 없는 엽서와 문구류도 많아 제주에서만 고를 수 있는 기념품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좌) 이후북스 내부 전경 출처: 이후북스 (우) 이후북스 책 선반 ⓒ이규리

바로 옆에 위치한 이후북스는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큐레이션이 단단한 독립서점이다. 혼자 여행하는 이들의 취향을 정확히 짚어낸 책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나는 여행 첫날 이곳에서 책 한 권을 골라 이후 일정 동안 카페나 숙소에서 틈틈이 읽는 편이다. 문구를 고르고, 책을 고르는 이 짧은 동선은 혼자 제주에 머무는 시간을 한층 더 밀도 있게 만든다. 이후북스는 매달 일인 여행자를 위한 ‘일일 책방지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제주에 머물며 책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짧은 체험으로, 일정에 따라 인근 숙소가 함께 제공된다. 여행하며 잠시 책방지기가 되는 낭만을 누려보는 건 어떨까.

 

주소: 제주시 관덕로4길 1-2 (클래식문구사)
제주시 관덕로4길 3 (이후북스)

유동룡미술관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

제주 성산읍의 한적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검은 바람이 고요히 누운 듯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의 건축가’로 불리는 유동룡(이타미 준)의 세계관이 가장 농밀하게 응축된 장소, 유동룡미술관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시의 제목은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이타미 준〉. 그의 작업 철학을 설명하는 문장인 “닫힌 어둠이 아니라, 미묘하게 열린 검은 상자”라는 표현에서 출발했다.

유동룡미술관 출처: 유동룡미술관 홈페이지

유동룡미술관은 불필요한 정보와 소음을 과감히 덜어낸, 고요함 자체가 경험이 되는 공간이다. 혼자일 때 오히려 사유의 깊이가 또렷해지는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일인 여행자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관람 이후 머물기 좋은 장소는 두 곳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1층 라이브러리 라운지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넓은 통창을 통해 자연광이 잔잔하게 스며든다. 라운지에는 이타미 준의 건축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서적들이 놓여 있어 조용히 사색하기 좋다.

바람의 노래 티 라운지 ⓒ이규리

두 번째는 ‘바람의 노래’ 티 라운지로 전시 관람을 모두 마친 뒤에만 이용할 수 있다. 차에 대한 취향이 까다로웠던 이타미 준이 귀한 손님에게 녹차와 호지차를 내어주던 태도를 바탕으로 차린 공간이다. 그의 건축 세계에서 영감받아 개발한 제주 티 브랜드 우연못의 시그니처 티를 비롯해, 거문오름 앞 유기농 다원 올티스의 호지차·홍차·말차를 맛볼 수 있다.

 

주소: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우연에서 영원으로: 김창열과 제주〉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 ⓒ이규리

유동룡미술관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있다. 예술에 관심 있는 이라면 자연스럽게 여운을 이어가기 좋은 동선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회고전〉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은 ‘물방울 작가’ 김창열의 예술 세계를, 그의 삶과 깊게 맞닿아 있는 제주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번 전시 〈우연에서 영원으로: 김창열과 제주〉는 김창열 예술의 출발점으로서의 ‘제주’를 조명한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제주에 체류하던 시기,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발표한 시와 표지화를 통해 형성된 전쟁의 상흔과 치유의 정서는 훗날 물방울 회화로 정제된다. 「물방울(제주도)」, 「밤에 일어난 일」 등 주요 작품을 비롯해 아카이브와 영상 자료를 통해 개인의 체험이 어떻게 ‘장소의 경험’을 거쳐 ‘이미지의 언어’로 변모했는지 보여준다.

 

주소: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3-5

카페이면

카페이면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이규리

제주 서쪽 금능해변 인근 한적한 곳에 자리한 카페이면.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규모의 카페로 창 너머로는 제주의 풍경이 차분하게 펼쳐진다. 공간 전체에 흐르는 정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생각의 속도를 늦춘다. 이곳을 찾는다면 핸드드립 커피를 권하고 싶다. 깊이 있는 맛과 정돈된 향이 전시 관람의 여운을 잇고, 혼자만의 시간을 조용히 마무리하기에도 더없이 적합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에 집중하는 순간이,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또렷하게 남긴다.

 

주소: 제주시 한림읍 금능5길 13

·사진 헤이팝 서포터즈 이규리

프로젝트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
장소
유동룡미술관
주소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
일자
2025.04.15 - 2026.03.29
시간
화요일 - 일요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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