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

구본창의 눈과 마음이 닿은 곳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구본창: 사물의 초상〉 전
사진가는 찍는 사람이기에 앞서 보는 사람. 구본창이라는 사진작가가 어떻게 보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구본창 작가가 사물을 보는 시선을 가늠할 기회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11월 22일부터 내년 3월 30일까지 ACC 포커스 〈구본창: 사물의 초상〉 전시를 개최하는 것. 이번 전시는 구본창 작가의 주요 사물 연작에 집중해 그가 선택한 사물이 가지고 있는 거대서사와 미시서사를 동시에 살펴보고 그 안에 존재하는 한국성과 아시아적 정서에 주목한다.

매달린 백자와 누운 금관

전시는 ACC 복합전시 3관과 4관에서 열린다. 넓은 면적과 약 10m에 이르는 높은 층고를 활용한 전시 구성과 작품 배치가 인상적이다. 전시의 도입부, ‘1부: 역사를 품은 사물에 숨결을 입히다’ 섹션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한국전쟁유물, 조선백자, 신라금관 등 역사적 배경을 품은 유물 연작을 영상 작품과 설치 작품으로 변주해 전시하는데, 공간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일례로 조선백자 작품의 경우, 족자(簇子)로 만들어 천장에 매달았다. 이는 구본창 작가의 조선백자 연작에 얽힌 이야기에서 비롯한 연출이다. 해외 박물관 등지에서 조선백자를 본 작가는 고국을 떠난 백자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백자를 고스란히 고국에 돌려놓을 수 없기에 사진을 찍어 그 영혼이라도 한국에 다시 데려다주고 싶었던 데서 이 연작이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백자의 영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작품을 천장에 매달았다고.

족자 형태로 매달아 전시한 작품.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천장에 매달린 백자의 영혼을 지나면, 찬란하게 빛나는 신라금관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독특한 점은 이 작품들이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 누운 작품들 사이를 찬찬히 거닐며 작가가 찍은 금관의 세공 방식이나 유려함을 살피는 한편,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의 보물이 땅에 묻혔을 모습 또한 상상해 볼 수 있다.

금관 작품을 눕혀 전시했다.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작가의 애호가 시작되는 곳

‘2부: 일상 속 사소한 사물을 발견하다’ 섹션에서는 작가의 일상과 가까운 사물 작품이 전시된다. 2부 섹션으로 들어서면 구본창 작가의 미공개 영상 작품 「코리아 판타지」(2017)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한국 전통문화의 모티프 중 하나인 ‘단청’을 변주한 영상으로,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가장 왼쪽 영상 작품이 이번 전시로 처음 공개되는 「코리아 판타지」다.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영상 작품 뒤로는 대형 ‘탈’과 ‘꼭두’ 연작이 서 있고, 벽 한 면에는 ‘콘크리트 광화문’ 연작이 배치됐다. 보다 사적인 영역을 다루는 2부 섹션에서 광화문, 탈, 꼭두 등 역사와 전통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 있는 사물의 연작이 먼저 전시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은 ACC 학예연구사는 이에 대해 “이 사물들은 단순히 문화재로서의 가치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구본창이라는 작가가 가진 한국 문화에 대한 애호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적 사물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고 봤다”라고 설명했다.

탈 연작.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꼭두 연작. 입구 기준 정면에서 봤을 때는 흑백의 탈 연작이, 후면에서 봤을 때는 컬러의 꼭두 연작이 보이도록 하여 극적인 감상을 유도한다.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일상 사물의 초상

공간 깊숙이 발을 옮기면 더욱 사적인 물건을 촬영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작가의 소장품을 촬영한 ‘컬렉션’, 프랑스 고건축물의 문 앞에 설치하는 장치 샤스루(chasse-roue)를 담은 ‘샤스루’, 빈 상자와 비어 있는 공간에 주목한 ‘인테리어’와 ‘오브제’, 일상 사물 ‘비누’ 연작 등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샤스루 연작.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특히 우리에게 낯선 사물인 샤스루를 담은 샤스루 연작에 오래 시선이 머문다. 샤스루는 마차의 바퀴가 벽을 손상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로, 대문이나 다리 난간 등에 설치한다. 프랑스에서는 너무도 일상적인 이 사물이 작가의 눈에는 마치 동네 앞을 지키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처럼 보였다고. 그 후 작가는 이 사물의 초상을 담기 시작한다. 실제로 모양도 소재도 다양한 샤스루의 초상들을 보고 있자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샤스루 54」 2003,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79×63 cm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방대한 아카이브

‘3부: 구본창의 시선과 마주하다’는 전시의 마지막 섹션이다. 이 섹션에서는 피사체가 된 작가의 수집품, 대중매체와의 협업 작품 등 전시 주제와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흥미를 더해 줄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가 전시된다. 이 외에도 작가가 그간 촬영해 온 소설가 한강, 배우 안성기, 뮤지션 김완선 등 예술인의 인물 초상을 선별해 소개한다.

작가의 수집품.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물 초상 작품.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한 구본창 작가를 비롯해 그래픽 디자이너 야마구치 노부히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 미술사학자 이필, 사진작가 김수강의 인터뷰를 담은 미니 다큐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를 더 쉽게 이해하고 깊게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영상이니 참고하자.

 

1부부터 3부까지 한 호흡으로 진행되는 전시에서는 백자와 금관, 단청과 탈, 샤스루와 비누, 배우와 가수, 작가의 얼굴에 이르는 피사체를 만날 수 있다. 그 다양한 피사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창작 언어가 있다는 것, 그것이 ACC가 현대미술 거장전의 첫 주인공으로 구본창을 초대한 이유다.

구본창 작업의 기본 태도

다음은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질의응답.

사물을 찍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린 시절 외톨이로 지내다 보니 누군가와 뛰어놀기보다는 땅에 떨어진 것, 말을 못 하는 것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시도했던 혼자만의 말 걸기가 현재 내 작업의 기본 태도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화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애착이 있고, 사진을 통해 대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인물 사진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하는가?

인물을 찍을 때도 큰 소리로 떠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닌, 이야기를 할 듯 말 듯 무언가 숨겨둔 모습을 담으려 한다. 그런 느낌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한다.

 

— 어떤 사물에 시선이 가나?

‘인간과 사물이 얽혀서 역사를 만든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프랑스의 어떤 철학가가 한 말이다. 그 말에 동감한다. 사물은 조그만 물건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만지고 사용한 사람들의 손길이 사물에 담긴다. 사물이 스스로 제 모양을 갖추는 게 아니다. 비누도 우리가 수없이 만지고 씻기고 거품을 내면서 모양이 달라지지 않나. 백자에도 수백 년간 백자를 만진 사람들의 손때, 흠집이 담겨 있다. 그 사이에 전란이나 큰 사건들이 지나갔을 것이다. 저마다 역사를 가진 사물에 애착을 느낀다.

 

— 작품을 보는 이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는지 듣고 싶다.

메시지는 내가 강요할 것이 아니다. 저마다 본인이 가진 경험을 토대로 느끼리라 생각한다. 다만 많은 경우 굉장히 외롭거나 쓸쓸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위로를 받는 듯하다.

김유영 기자

취재 협조 및 사진 제공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장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소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38
일자
2024.11.22 - 2025.03.30
시간
화 - 일 10:00 - 18:00 수, 토 10:00 - 20:00
* 월요일 휴관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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