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3

안국동 골목 걷다 흘러드는 박물관

드디어 개관하는 서울공예박물관.
서울 도심 한복판, 안국동에 새로운 문화 거점으로 탄생할 서울공예박물관이 7월 개관한다. (16일부터 예약 관람) 옛 풍문여고가 2017년 이사를 가면서 생긴 부지에 공예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이다. 누구나 골목길을 거닐다가 흘러들 수 있는 공간, 살면서 도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없듯 온몸으로 공예를 경험하는 공간, 역사의 켜가 쌓인 곳을 거닐며 스며드는 공간. 서울공예박물관은 ‘과거를 품은 미래’다. 2만여 점의 수집품과 아카이브를 소장한 연구기관인 동시에 공예의 내일을 이야기하는 플랫폼, 동네 사랑방 같은 커뮤니티를 꿈꾼다.
서울공예박물관 직물관 외벽 정면과 옆면에 설치한 강석영 작가의 . 한국 도자사를 한눈에 보듯 백자, 청자, 분청사기 도자타일을 직조하듯 배치했다.

 

출입구만 4곳, 발길 닿아 흘러드는 골목 디자인

 

지난 6월 16일, 서울공예박물관은 9명의 공예가의 작품을 설치한 ‘오브젝트9’을 선공개했다. 로비부터 마당까지 곳곳에 설치된 공예 작가들의 작품과 작업 이야기를 통해 박물관의 공간을 미리 둘러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안국역에서 윤보선길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보이는 전시동의 벽면에는 강석영 작가의 <무제>가 설치되었다. 주입 성형으로 만든 백자, 청자, 분청사기의 고유한 색과 질감을 살린 도자 타일 약 2,800여 개를 직조하듯 배치해 튀지 않으면서도 멋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안내데스크 역시 공예 작가의 작품으로 설치했다. 관객들이 공간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작품을 통해 환영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안내데스크가 무려 4개다. 왜냐하면 박물관의 출입구가 4개이기 때문이다. 각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 로비에 각각 작가들의 안내데스크와 쉼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헌정(안내동), 최병훈(전시1동), 유진경(전시3동), 박원민(교육동) 우리가 골목길을 걷다 재미있는 곳을 따라 이곳저곳 흘러들듯 박물관 역시 그런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겼다.

 

서울공예박물관 조감도

 

Interview 김정화

서울공예박물관 관장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여간 개관 준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박물관의 미션은 어떻게 설정했나?

공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공예는 이것이다’라는 정립을 일부러 피했다. 대신 공예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집중했다. 흙을 주물러서 불에 굽고 빗살을 넣던 인류의 생존 본능이 공예의 시작이 아닐까 한 것이다. 이 가치가 미래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출한 것이 ‘공용예지’, 기술과 실용 그리고 예술과 문화 4개의 큰 가치를 추구하는 공예를 펼쳐보고자 한다.

 

안국역에서 북촌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에 진입하면 서울공예박물관 입구로 자연스럽게 흘러든다. 크래프트 윈도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전시한다.

 

서울공예박물관은 한옥을 포함한 일곱 개의 건물과 공예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공간의 동선, 체험에 있어 플렉서블한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원래 풍문여고 건물의 배면인데 그걸 터서 박물관 입구로 만들었다. 담이 있던 곳이 환하게 트여 개방감이 느껴질 것이다. 건물 외벽에는 ‘크래프트 윈도우’를 만들어 길을 걷다가도 전시의 일부를 볼 수 있게 했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어두운 거리였던 보부르 지역에 들어서면서 큰 광장을 일부러 만들었다. 골목길의 폐쇄성을 낮추고 시야를 확보해 사람들이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도시재생에도 이바지하고자 한 것이다.

서울공예박물관 역시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건물이나 공예마당으로 불리는 광장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했다. 보통 박물관은 한 곳으로 들어가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동선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운영하는 입장에서 통제는 쉬워진다. 우리는 관객들의 움직임을 통제하지 말자고 했다. 길을 걷다 예쁜 책방이 있으면 들어가서 보고, 카페가 있으면 차도 마시고 이런 느낌으로 즐겁게 발걸음이 닿는 것이 골목길이다. 운영 측면에서는 분명 도전이지만 문화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400년 전부터 있었다는 은행나무를 품에 안듯 둘러싸는 느낌으로 조성했다.
이재순 석장의 석문과 의자 작업인 는 오가는 이의 휴식 공간이 되어준다.

 

이 부지가 풍문여고가 있던 곳이고 그전에는 안궁별궁터로 역사가 깊은 부지다. 그래서인지 건물의 원형을 거의 손대지 않고 리뉴얼을 했다.

교육관과 본관 사이, 감고당길을 내려다보며 완만한 경사를 이룬 언덕에 40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어느 동네를 가도 그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나무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 나무가 그런 존재다. 나무 주변으로 국가무형문화재이신 이재순 석장이 불로문(석문)과 의자 9점을 제작해 사람들이 쉬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지만 광장이 아닌, 마당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골목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역사 깊은 터라 개관 작업 중 두 번의 유구가 발굴되었는데 연구 후 문화재청의 소견을 참고해 다시 덮어 두었고 옛터는 돌로 표식을 해 놓았다. 건물을 그대로 쓰다 보니 전시공간으로 부적합한 부분들도 있는데 조명 디자인을 통해 보완해 나가고 있다.

 

공사 중인 서울공예박물관 전경과 유적 발굴 모습, 출처 : 서울공예박물관
공예마당에서는 레이저 스캐닝과 포토그래메트리 기술을 통해 안동별궁의 디지털기록 자료와 박물관 터의 역사를 보여주는 체감형 콘텐츠를 선보인다.

 

안동별궁터이자 풍문여고로 기억되는 장소

서울공예박물관의 터는 조선 왕실 가족의 제택(第宅)이자 가례를 치르던 안동별궁이 있던 곳이다. 훨씬 이전에는 세종대왕이 아들인 영응대군을 위해 이 자리에 집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종은 아들 순종의 혼례 절차에 필요한 별궁을 짓고, 이곳을 ‘안국동 별궁(안동별궁)’이라 불렀다. 별궁은 주로 간택 절차를 마친 왕비와 세자빈이 혼례 전 머물며 궁궐 생활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이후 개인 명의로 몇 번 주인이 바뀌다가, 1944년 문을 연 풍문학원이 풍문여자고등학교로 설립인가를 받게 되고 70여 년간 학생들의 배움터로 기능했다. 2017년 풍문여고는 풍문고등학교로 바뀌면서 강남구 자곡동으로 이사했고, 이 자리를 서울시가 매입하면서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역사적인 공간인 만큼 공사 기간 유구가 두 번 발굴되어 이를 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진입로의 위치를 수정하기도 했다. 박물관 터에 대한 역사는 안동별궁의 디지털 기록자료를 바탕으로 한 체감형 콘텐츠(AR/VR)로 제작해 공예마당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최병훈 작가의 , 육중한 자연석과 정갈한 원목을 활용해 석공예와 목공예의 기술적 가치를 극대화 했다.

 

박물관 자체가 공예품 같은 느낌이다. 공예 작가와 협업한 안내데스크는 ‘쓰임’에 보다 접근했는데, 특히 어린이나 장애인의 시선이나 동선에 대해 연구한 점이 눈에 띄었다.

장애인 공간들이 처음엔 만들었다가 관리가 안되거나 구석 쪽으로 밀려난 경우를 종종 봤다. 전시 관람이든 워크숍이든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일반인보다 불편함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건물과 시설이 받아줘야 되고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받아줘야 하는 일이다. 장애인 시설을 가능한 중앙에 배치한 이유다. 안내데스크도 마찬가지다. 신장이 낮은 어린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의 시선에서 막힘이 없도록 낮췄는데, 공간을 사전 투어한 분께서 ‘모든 것이 자기 손으로 직접 닿는 곳은 처음’이라고 했다.

 

 

기능적인 부분을 보면 공예 아카이브실, 도서실은 물론 수장고, 어린이 박물관까지 갖추고 있다. 연구적 측면에서도 공예박물관이 수행하고 있는 업무가 꽤 방대하다고 느꼈다.

박물관 건립과 운영 철학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로 우리는 공예품만 모으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또 공예를 물건으로만 시선을 타파하고자 한다. 박물관 직원들끼리 늘 “공예는 동사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마지막 완결된 모습만 봐서는 공예를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나오기까지 과정을 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전부 수집하고 연구하고 아카이브로 남겨야 한다. 그리고 그 연구 자료를 우리만 볼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 공예는 생활과 맞닿은 분야다. 모든 사람에게 이곳의 정보와 자료를 공개하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적어도 초대관장으로서의 철학이다.

 

공예작품프로젝트 '오브젝트9'의 아카이빙 결과물, 작가별 작업 과정과 도구들을 전시 중이다.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을 담은 뉴스레터 'OBJECT 9'

 

소장품을 수집할 때도 거기에 연관된 기록들과 영상, 녹취 등을 함께 수집했고 ‘ 오브젝트9’ 프로젝트의 경우 다큐멘터리 팀을 하나 붙여서 1년 동안 그 과정을 기록해 두었다. 도서 자료는 1만 점 이상이고, 영상 자료들도 순차적으로 작업해 공개할 예정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공예컬렉션 아카이브, 문헌 자료, 딕셔너리 활동 결과물들을 열람할 수 있는 정보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이 공간을 멀리 갈 필요 없도록 1층에 전면 배치했는데, 역시 ‘공개와 공유’라는 박물관의 철학을 공간 구성을 통해 드러내려 했다.

 

전시 3동 전경

 

공예박물관의 전시관은 상설전시관 / 지역공예관 / 공예역사관 / 근현대 공예관/ 기획전시 로 나누어져 있다. 각 전시 준비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전체 전시는 12개의 꼭지로 준비하고 있다. 상설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공예사를 중심으로 기원을 다루는 전시와 故허동화(한국자수박물관장) 컬렉션으로 나뉜다. 공예의 기원은 나전칠기, 금속공예 등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근대기까지 소개되는데, 특히 ‘장인,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조선 시대 파트는 만든이에 집중해 의궤에 기록된 장인들을 다 찾아냈다. 어떤 왕이 있던 시대에 만든 것이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지에 접근한 것이다. 조선 시대 말기 궁궐과 관청에 도기를 납품하던 공인이 쓴 ‘하재일기’는 왕실 중심의 공예 제도가 무너지고 민영화로 바뀌는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이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공예가 하나의 예술화 되는 과정, 이후 상업화로 변해가는 상황까지 공예의 변화를 소개한다.

 

전시2동과 교육동 전경, 공예별당 (한옥, 아래)

 

기획전시는 대한민국의 현대공예를 다룬다. 1부는 도자기, 나무, 유리 2부는 금속, 직물, 옻칠, 종이 두 파트로 나눠서 총 160명의 작가를 소개하는데 연도별이 아니라 공예를 이해하는 네 개의 관점을 중심으로 전시를 꾸려간다. 전통을 수용하고 재해석하는 관점, 조형성과 기능의 마찰 혹은 변화, 생활 속에서의 공예의 변화, 새로운 기법과 재료에 대한 연구. 이 네 가지의 관점은 각각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 동시에 흘러드는 것이고 결국 공예인들이 이 관점을 자기 작품 세계에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일견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기획전시실이 매우 아름다우니 기대해 달라. 이밖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스물다섯 명의 작업을 소개하는 전시, 귀걸이를 중심으로 하는 특별 전시를 준비 중이다. 또 한 달 반 정도 간격으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크래프트 윈도우를 운영할 예정이다.

 

 

서울공예박물관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는지?

모두의 공예, 모두의 박물관’ 우리의 슬로건이다. 어느 누구도 공예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 자기 안에 내재한 공예 DNA를 깨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공예가 세상을 이롭게 만들듯 서울공예박물관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곳이었으면 한다.

 

 

OBJECT 9 작품 따라 감상하는 박물관의 뷰 포인트!

서울공예박물관은 인왕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옥상부터 고즈넉한 한옥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아카이브실 창가까지 근사한 뷰 포인트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공예 작가 9명이 참여한 ‘오브젝트 9’의 작품 따라가볼 만한 뷰 포인트를 소개한다.

 

1. 김익영 – 오각의 합주, 인왕산 루프탑 뷰

 

김익영 작가의

 

원형의 교육동 옥상에 올라가면 탁 트인 인왕산 자락과 마주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송현동 부지의 모습을 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이곳에 대한민국 1세대 도예가인 김익영 작가의 오방색 오각 스툴이 놓여있다. <오각의 합주>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각 면 모서리의 섬세한 선이 멋스러운 작업으로 물레 성형으로 만든 백자에 유약을 입혀 제작되었다. 옥상뿐 아니라 본관과 아트리움이 연결되는 야외공간에도 15점의 의자와 나무 작업이 놓였다. 필로티 아래에 앉아 공예별당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무더위도 금세 가시는 듯하다.

 

 

2. 이재순 – 화합1, 2, 은행나무 동산

 

무형문화재 120호 석장 보유자 이재순 작가의 . 은행나무 아래 앉아 단단한 암석의 시간을 느껴볼 수 있다.

 

교육관과 본관 사이에는 400년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킨 은행나무가 있다. 이재순 작가는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 석제 의자를 9점 설치했다. “의자 표면을 보면 약간 기울여져 있습니다. 비가 오더라도 빗물이 고이지 않고 빠져나가게 한 것이죠” 작업의 이름이 <화합>이 된 이유는 전국 각지에서 온 돌들(고흥석, 영주석, 원주석, 보령석, 문경석, 경주석, 마천석, 황등석, 제주석)을 한 군데 모았기 때문이다. 불로문은 길상을 뜻한다. 완만한 동산 위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안마당의 풍경은 아늑하고 풍요롭다.

 

3. 이강효 – 휴식, 사유, 소통의 분청의자 세트, 공예마당

 

전통적인 옹기 기법에 분청기법을 접목한 방식으로 독창적인 기법을 구축한 이강효 작가의 분청의자들

 

안국동의 빌딩들이 사방으로 보이는 너른 공예마당에 들어서면 길을 따라 올망졸망 30여 개의 원형 스툴들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평생 분청 작업에 매진해 온 이강효 작가의 도자로 만든 “휴식, 사유, 소통의 분청의자 세트”다. 야외에 놓이는 의자가 도자라니, 혹시 깨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의자는 특별히 조합된 흙으로 구워 아주 튼튼하고 꽤 무거워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도자도 실용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작품을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편하게 앉아 쉬기도 하고 쓰다듬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고 싶었지요.” 분청사기 기법인 상감, 덤벙, 귀얄로 장식한 이 의자는 감상하는 즐거움도 가득 선사한다.

 

 

4. 한창균 – Remains & Hive, 전시3동의 창가 뷰

 

대나무를 가공하여 10가지 이상의 패턴으로 엮어 만든 한창균 작가의 에 앉으면 매화나무 가득한 공예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예마당을 실내에서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전시3동이다. 이곳에 너른 창으로 푸른 마당과 매화나무가 한눈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로비에는 죽공예가인 한창균 작가의 작품 “Remains & Hive”가 놓여 있다. 원형 벤치 3점, 벌집스툴1점, 독립스툴 20점으로 구성된 세트다. 작가는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편히 앉으라’고 자리를 권한다. 전통적인 죽공예 기법은 그릇이나 기물 등 작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지만 작가는 대나무를 가공하고 뼈대를 촘촘히 구축해 큰 규모의 스툴을 만들어 냈다. 원형 벤치의 지름은 약 180cm로 댓살 1,500여 개가 들어간다. 무던히도 많은 손길과 시간이 들어가는 작업이 것이다. 자연과 수공예의 합작인 벤치에 앉아 너른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시간일 것이다.

 

 

Project Info

주관 서울특별시 서울공예박물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안국역1번 출구), 안동별궁 터
규모 연면적 10,590㎡ (건물 6개동)
구성 전시1동, 전시2동, 전시3동, 교육동, 관리동, 공예별당(한옥)
(구)풍문여고 건물을 환경 및 도시재생을 위한 리모델링으로 진행
주요 시설 전시, 조사․연구, 교육 및 체험활동을 위한 전시관, 수장고, 사무실, 도서실, 아카이브실, 교육실, 뮤지엄샵, 카페 등
박물관 MI 캘리타앤컴퍼니 (최성희)
사이니지 디자인 시그램 (류원상)
조경 디자인 오피스박김 (박윤진, 김정윤)
건축 설계 행림종합건축사사무소, 송하엽, 천장환
시공사 아이엠유건설

 

 

이소진

자료 협조 서울공예박물관

사진 서울공예박물관, 디자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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