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트리얼큐의 ‘큐(Q)’는 큐레이션(Quration)에서 따왔다. 좋은 소재를 제안하는 것을 넘어 소재가 지닌 이야기들과 가치까지 매개하고 싶어서다. 머트리얼큐를 운영하는 신세정, 전혜원 실장은 소재 코디네이터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다년간 노하우를 다져왔다. 이들의 경험은 차곡차곡 쌓여 머트리얼큐라는 통합체 구축을 이끌었다.
‘구별’하는 일에 앞서는 것은 ‘분별’하는 일일 테다. 소재 구별의 기준과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곧 이들의 큐레이션 전략이자 분별력이다. 머트리얼큐는 수요에 입각해 소재를 구별하는 것을 넘어 ‘심미성’과 ‘설득력’ 그리고 ‘타당성’에서 분별의 기준을 찾는다. 인테리어 디자인에 관심 있는 이들의 발길이 잦은 신사동, 한적한 골목에 있는 머트리얼큐를 찾았다.
신세정(이하 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색채디자인학을 전공했고, 소재가 중심인 스튜디오를 만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머트리얼큐를 론칭했다. ‘민설계(Min Associates)’에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클라이언트들을 많이 만났고, 주거, 사무공간 외에도 호텔, 오피스 빌딩, 종합병원, 아트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공간을 작업하기 위해 그는 소재를 폭넓게 찾아 적용해야 했고, 소재 공부를 놓지 않았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해 쌓아 올린 경험들은 켜켜이 포개져 머트리얼큐에서 발현되고 있다.
전혜원(이하 전) 대학에서 건축을, 대학원에서는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원에 입학한 뒤 지도 교수의 작업을 접하면서 공간을 구성하는 소재의 쓰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설계의 길이 아닌 코디네이터로서의 삶을 꿈꾸게 된 이유도 소재의 쓰임과 가능성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민설계’ 코디실을 시작으로 ‘CDS’, ‘대혜건축’ 코디실을 거쳤다. 고정관념을 깨면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재의 변용과 다양한 쓰임에 관심이 많다.
Interview with 머트리얼큐
신세정, 전혜원 실장
— 두 분이 일을 함께 도모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저희는 선후배 사이예요. 일을 하면서 생각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되게 어렵잖아요. 저를 진심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지만, 생각이 맞아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죠. 특히나 일 이야기인데, 서로의 흥미로운 공통사로 끈끈해지는 관계는 얼마 없어요. 저희는 운이 좋게도 서로의 미래와 비전이 통하는 사람이었어요.
—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소재나 자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 않나요?
신) 맞아요. 소재 중에서도 특히 새로운 소재를 찾기 위해 많은 분들이 고군분투하는 게 느껴져요. 머트리얼큐를 찾는 분들 중에는 전자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디자이너도 있고,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 팀도 있어요. 모두가 ‘새로운 소재를 적용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찾아다니세요. 무엇보다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디자이너나 소재 전문가가 아님에도 소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이분들은 사실 물어볼 데가 많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타일 가게 가면 타일에 대해서는 물어볼 수 있지만 취급하는 제품과 가격만 알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런데 저희는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도 가지고 있고, 특정 영역에 쓰일 수 있는 소재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안할 수 있어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 머트리얼큐는 소재를 선정할 때 ‘타당성’을 중시한다고요. 자재에 대한 다양한 리서치와 심도 있는 연구가 늘 뒷받침되어야 할 것 같은데.
전) 저는 자재가 가지고 있는 특성뿐만 아니라 국내외에 시공된 사례와 레퍼런스를 찾아봅니다. 무엇보다 좋은 레퍼런스는 제안을 수월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니까요. 직접 볼 수 있다면 찾아가서, 공간 안에 각 자재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보고 느껴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특성을 가진 자재라도 단독으로 쓰였을 때 혹은 다른 자재들과 만났을 때, 공간의 환경 등에 따라 나타나는 특징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신) 저는 데이터시트에 매우 집중하는 편인데요. 카페트 샘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에코닐(econyl)이라는 재활용 소재로 만든 샘플을 처음 받았다면 누구나 디자인, 재질감, 색상의 외형적인 요소를 볼 거예요.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히 유심히 보는 부분이 있어요. 저희는 에코닐이 어떤 재료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다른 재활용 소재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더 주의 깊게 들여다봐요. 무엇보다 사양을 상세하게 보는데요. 외형적인 디자인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인증이나 특수한 기능을 갖고 있는지를 찾기 위해서예요. 요즘은 친환경 인증 제도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답니다. 이를 위해 검색을 하거나 제품 공급처에 문의하는데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도 많아요. 그러면 공급처에 부탁해 제품 본사의 자료를 받거나, 제가 직접 본사에 메일을 보내기도 합니다. 디자인 소재, 인증 마크, 특수 기능 등 다양한 정보를 얻었다면 그다음에는 데이터를 만듭니다. 그리고 꼭 제품의 단점까지 생각해 봅니다. 이는 제가 인테리어 코디네이터로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소재가 지닌 이야기를 전하고, 매개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여기에서 ‘소재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신) 이전에는 천연재, 합성재처럼 자재 분류가 단순했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단순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나무라는 소재만 봐도 원자재를 가공한 것, 가공 시 버려지는 폐기물을 사용한 것,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처럼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사용한 것 등 다양하지요. 또한 해당 소재를 사용하게 된 이야기들이 있어요. 소재로 선택되어 제품으로 만들어진 과정과 가치는 스치듯 보면 알지 못하는 이야기이에요. 그런데 듣고 나면, 소재가 달리 보이게 되죠.
전) 사람들도 키, 몸무게, 시력 등의 수치적 특징 외에 성장과정, 사회적 역할 등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소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소재를 만드는 회사의 이념부터 만들어지게 된 배경, 소재가 갖는 장단점과 쓰임 등 이 모든 것들이 자재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 머트리얼큐는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닌 트렌드에 앞장서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요?
전) 자재를 대할 때 선입견이 없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자재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선입견 없이 자재의 이야기를 받아들여야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제안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자재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늘 잊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꺼내 봅니다. 그리고 그 소재가 사용된 가상의 공간이나 제품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봅니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의 쓰임을 발견하게 되고, 톡톡 튀는 제안도 가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신) 제가 가지고 싶은 자질은 세계관을 꿰뚫어 보는 것인데요. 이뤄질까요?(웃음) 큰 흐름을 읽는다는 건 그 시대의 과학관, 세계관을 보는 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쉽지 않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늘 끊임없이 보고 찾고 자료를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요.
— 머트리얼큐가 배합해 제시하는 무드 보드는 일종의 작품처럼 느껴져요. 무드 보드를 구성하는 노하우나 방식은 무엇인가요?
전) 무드 보드를 구성하는 이유는 다양한 자재들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영감과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예요. 소재 하나만 보는 것과 여러 개를 동시에 보는 것은 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키거든요. 공간은 다양한 소재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니 저희에겐 무드 보드를 구성해 보는 작업이 중요하죠. 무드 보드를 구성하기 위해 저는 먼저 하나의 콘셉트를 구상합니다. 특정 시기의 사회적 이슈나 계절 혹은 컬러 톤 등이 콘셉트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후 콘셉트에 맞게 자재들을 모으는데, 이때 소재 샘플의 크기부터 그것의 색감과 질감 등에 따라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 구성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배합을 통해 돋보이게 하고 싶은 아이템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는 아이템을 중심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요소들을 모아 구성하기도 하죠.
— 지속 가능성이 화두인 시대에 다양한 친환경 소재들이 개발되고 있는데요. ‘정말 참신하다’고 생각한 소재가 있다면요?
신) 최근에 나무껍질로 만든 원단을 접하게 됐어요. 작은 샘플을 통해 접하게 됐는데 보자마자 당연히 가죽이라고 생각했어요. 해당 원단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전통 생산방식을 대중에게 선보인 것인데요. 상업적인 사용이 가능하게끔 세상 밖으로 꺼내 온 소재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야기하지 않는 생산방식이 친환경 기조와도 잘 맞았던 것이죠. 소가죽의 부드럽고 짧은 털을 만지는 듯한 감촉도 독특했어요. 다양한 샘플을 받아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구입했고, 곧 샘플실에서 볼 수 있으실 것 같아요.
전) 저희에게는 모든 자재 하나하나가 귀해요. 요즘은 친환경 소재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리사이클, 업사이클 하는 과정은 특히나 더 쉽지 않은 공정입니다. 이런 소재들이 나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거예요. 소재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지속되지 못해 세상 밖에 나오지 못한 사례도 있으며, 소재가 개발되어도 상품성을 갖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특히 국내에서 친환경 소재들이 제작을 멈추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저희가 만나보고 소개해 드릴 ‘참신하게 개발된 소재’들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 해외에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하고, 구입하고 계시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주 마주하는 한계나 애로사항이 있을까요?
신) 한국 시장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진 편이에요. 다양한 소재들이 수입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 시장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수요도 적고 복제품도 많은 곳이라 생각하죠. 수요가 적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복제품 많은 나라라는 인식은 견디기 힘들기도 해요. 또 다른 애로사항은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에요. 저희는 영어권이 아닌 나라와도 소통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다양한 국가의 지사와 효율적이면서도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한 방법도 현재 고민 중에 있습니다.
전) 저희는 국내외 막론하고 좋은 아이템들을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에게 소개하고, 그것이 적용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재를 찾아 나서고 있죠. 구입하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도 있긴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큰 한계는 좋은 아이템들이 국내의 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예요. 사실 이는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디자이너분들도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 머트리얼큐의 포부와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들려주세요.
전) 저희와 함께하는 혹은 함께할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분들 그리고 소재 개발자분들, 미래의 디자이너가 될 학생들까지 모든 이들에게 ‘머트리얼큐’라는 곳이 시너지를 얻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공간을 만들게 된 가장 큰 이유이니까요. 저희는 언젠가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쌓아왔던 아이디어나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재 개발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아울러 소재 코디네이터 혹은 소재 큐레이터라는 분야가 있는지 모르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앞으로 훌륭한 소재 관련 인재가 나올 수 있도록 전문가 양성에도 힘쓰는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신) 지금까지는 머트리얼큐의 체계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면, 앞으로는 영감의 라이브러리로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위한 곳을 넘어 새로운 소재를 접하는 곳으로요. 창작의 영감이 피어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소재는 디자인, 예술, 산업 등 어느 분야에도 쓰일 수 있으니까요. 모든 소재가 어떤 분야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가능성이라는 씨앗을 움 틔우게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신소재 개발을 시도하는 분들이 지금보다 많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아이템을 해외에 수출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 여정에 머트리얼큐가 함께 하고 싶어요.
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머트리얼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