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관한 한미사진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국내에서는 처음 사진작가를 대상으로 창작과 전시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 기관이었다. 지금까지 20여 년간 사진 전시는 물론 소장품 수집, 작가 지원사업, 출판 및 교육 사업을 펼쳤다. 2009년부터는 학술연구기관인 한국사진문화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사진의 자료 수집과 연구, 증언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고 2012년에는 대중에게 열린 한미사진아카데미를 열었다.
물의 정원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공간
신축 미술관은 기오헌(寄傲軒) 건축사사무소의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민현식은 한국의 전통사상과 전통건축에서 도출한 ‘비움의 구축’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건축적 실천에 몰두하며 공간대상 건축상과 김수근 문화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미술관은 밖에서 보았을 땐 벽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 있던 중정처럼 가운데 ‘물의 정원’이 위치한다. 건축가는 건물 중심에 ‘물의 정원’을 두고 세 개의 동이 3차원으로 교직하는데 공간의 흐름에 따라 관람객이 순환하게 설계했다. 개방 공간은 지하 1층과 지상층, 2층으로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에는 복도형 전시실과 멀티홀 그리고 카페와 아트스토어가 있고, 지상층에는 전시실 3개와 317.4제곱미터에 달하는 수장고와 개방 수장고가 있다. 지상 2층은 라운지와 레스토랑이 들어선다.
변화하는 매체를 수용하는 전시관
사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특히 디지털 이미지가 등장하면서 사진은 거대한 대지를 재료로 삼는 랜드아트(land art)나 장소 특정적 미술(specific site art),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다. 뮤지엄한미는 이와 같이 다양한 분야의 작업은 물론 뉴미디어 영상 및 사운드를 수용하는 공간을 설계했다. 지하 1층 멀티홀에는 7미터 높이의 벽에 대형 화면을 띄울 수 있으며 콘서트홀과 비견할 수 있는 음향설비를 갖췄다.
5도와 15도, 듀얼로 구성된 국내 최초 사진 전문 수장고
뮤지엄한미의 심장은 바로 전문 수장고다. 미술관에서 지난 20 년간 수집한 2만 여 점에 달하는 사진 소장품의 보존을 위해 국내 최초로 세계 수준의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다. 수장고에 들어서면 먼지와 습기를 날리는 진공 통로를 지나 저온 수장고에 다다른다. 높은 층고에 스테인레스 스틸로 마감한 수장고의 모습은 흡사 미래의 연구실 같았다. “저온 수장고는 15°C에 상대습도 35%를 유지하고 냉장 수장고는 5°C에 상대습도 3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사진 전문 수장고가 최초입니다. 세계에서도 열 군데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수장고의 항온항습시스템으로 사진 작품의 보존연한을 500년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작품과 접촉하는 모든 재료는 중성 아카이벌 재료를 사용했고, 수장고 외장재도 보존성이 높은 스테인레스 스틸을 사용했다.
“미술관에서 지니고 있는 근대 사진은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자료들입니다. 보시다시피 예전 보관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미 곰팡이가 피거나 열화와 같은 손상이 일어난 것들도 있습니다. 이미 시작된 손상을 멈출 수는 없지만 최대한 늦추기 위해 사진 전문 수장고는 꼭 필요한 것이었지요.” 학예사의 설명이다. 뮤지엄한미는 한국 근대사 사진을 오랜 시간 수집해 왔고, 지금도 소장품의 주요한 비율을 차지한다. 소장품을 효율적으로 소장하기 위해 높은 층고를 활용해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전자동 시스템을 도입했다. 수직 저장 리프트인 ‘로기마트’를 도입해 분류번호를 입력하면 자동 시스템이 해당 슬롯을 개방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대형 작품 역시 높은 층고 덕분에 무난하게 보관할 수 있다.
그런데 수장고를 두 가지 온도로 구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을 보관하기에 5°C는 안전한 온도이지만 바로 상온으로 나오면 결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요. 반드시 15°C 수장고가 필요한 이유죠. 실온에서 전시했던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중간에 온도를 적응시키지 않으면 이슬점이 맺히는데 사진 보존에 있어선 최악의 상황이지요.” 최봉림 부관장은 수장고를 준비하기 위해 학예연구팀과 해외 여러 사진 전문 미술관과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이를 국내 사정에 맞게 조정했다. 지금도 최상의 보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수장고를 운영하며 끊임없이 연구 중이다.
일반인은 수장고에 출입할 수 없지만 수장고 입구 부분을 전시실로 꾸민 개방 수장고가 있다. 복도 형태의 개방 수장고에는 1880년대 전통 혼례 사진, 우리나라에 최초로 사진을 가지고 온 황철이 찍은 원각사지 10층 석탑, 흥선대원군의 초상 사진, 황실 사진가 김규진이 1907년 서울에 문 연 천연당 사진관에서 찍은 인물의 초상화 등 한국 사진 역사에서 귀중한 원본을 공개한다. 미술관에서 십 년 넘게 근무한 학예사도 처음 보았다는, 수장고 덕분으로 공개된 귀중한 사진들이다.
사진가의 음악이 흐르는 라운지
2층으로 올라가면 시야가 시원하게 뻗는다. 중정을 향해 난 큼지막한 유리창으로 물의 정원은 물론 건물의 옥상 전경이 보인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진가들 때문이다. 사진가 강홍구, 주명덕 선생이 평생을 수집한 LP 음반을 이곳에 기증했다. 사진가는 눈만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 귀도 날카롭다고 했던가. 사진 인생에 위안이 됐던 음악들이 라운지 벽에 빼곡히 꽂혔다. 여기서 함께 듣자는 것이다.
글 이소진 수석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뮤지엄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