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6

카메라를 쥐고 밖으로, 포토그래퍼 표기식 ①

사진가의 눈에 비친 물결과 나뭇결
결, 무른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무늬. 사진가 표기식의 시선은 자주 그 무늬에 닿는다. 물이 흘러가다가 바람과 빛을 만나 만드는 무늬라든가, 연한 잎들이 가지에 끈질기게 매달려 출렁이는 모습처럼. 결이란 결국 시간이 쌓여야만 만들어지는 모양일 테니, 표기식이 찍은 사진으로 무언가의 생(生)을 그려보게 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 표기식

지난 가을, 표기식 사진집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출간됐다. 사진가는 정재은 감독의 동명 다큐멘터리 영화 포스터를 촬영하기 위해 철거를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단지를 찾는다. 2018년 봄부터 여름까지, 그는 거기 남은 것을 성실히 포착한다. 스러져가는 벽과 계단, 아랑곳 않고 청청한 나뭇잎과 그 사이를 유유히 거니는 고양이들. 이 장면이 담긴 사진들은 영화의 포스터가 되었고, 이후 플레인아카이브의 기획으로 사진집 한 권에 묶였다. 사람과 자동차가 사라진 낡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찍은 사진에는, 많은 사람이 생활을 일궜던 터전이자 고양이와 나무의 집이기도 했던 어느 아파트의 생이 들어 있다. 사진가를 만나 <고양이들의 아파트> 프로젝트부터 일하는 마음에 대해서까지 두루 물었다.

1.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

사진집 표지|이미지 출처: 표기식 인스타그램 @pyokisik 펴낸곳 플레인아카이브, 사진 표기식, 글 정재은, 디자인 스튜디오 고민, 2022

지난 가을 <고양이들의 아파트> 사진집이 나왔습니다. 정재은 감독의 동명 다큐멘터리 포스터 촬영을 위해 만났다가 시작된 프로젝트라고 들었어요. 이 작업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첫 미팅을 둔촌주공아파트에서 했는데, 그곳을 돌아보니 좀 멋있더라고요. 주차된 차도 없고 사람들도 다 빠진 상태였으니까. 되게 넓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포스터

포스터용 촬영을 하고 나서, ‘혼자 좀 더 찍어보겠다’라고 말했다고요.

처음 찍은 포스터 이미지에 매력이 없었어요. 원래는 사람을 등장시키는 포스터로 촬영했어요. ‘고양이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으니 등장해주면 고맙지만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정도로 생각했죠. 찍으면서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는 상태로 촬영이 마무리되었고요. 그날 찍은 사진을 보내드린 후 “좀 더 찍고 싶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곳은 말하자면 엄청나게 거대한 리얼한 세트장, 그리고 곧 없어질 세트장이잖아요. 저는 자연이나 날씨처럼 지금은 있지만 곧 사라지는 것에 눈이 가는 것 같아요.

 

 

혼자 작업한 기간은 얼마나 돼요?

2018년 4월부터 8월 중순까지였나, 열 번 갔어요. 고양이들과 약속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촬영 날짜를 정해두진 않았고요. 다만 좀 다양한 시간대와 날씨를 담아서 변주를 주려고 했어요.

ⓒ 표기식

그 넓은 공간에서 어떤 순간을 만나면 셔터를 눌렀나요.

고양이가 있으면 일단 찍었어요. 고양이를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은데다 고양이를 컨트롤할 수도 없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촬영해야 했어요. 고양이를 보면 구도니 뭐니 생각하지도 않고 일단 찍고, 걔가 나를 기다려준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구도를 바꿔보거나 가로로도 찍고 세로로도 찍고 했죠.

ⓒ 표기식
ⓒ 표기식
ⓒ 표기식

거기 움직이는 생명체는 거의 고양이뿐이었겠네요?

고양이, 까치 같은 새들…. 가끔 고양이 밥 주러 오는 사람들, 요구르트 카트를 타고 가는 판매원, 또 그 옆에 중학교가 있어서 중학생들이 보였어요. 단지 가운데를 통과하는 길이 지름길이었는지 통학하는 모습을 봤죠.

 

분위기가 묘했을 것 같아요. 그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할 땐 어떤 기분이었어요?

기분 생각할 겨를은 없었어요. 고양이 찾기 바빴지. 거기가 진짜 넓거든요? 진짜, 진짜 넓어요. 그냥 고양이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죠.

ⓒ 표기식
ⓒ 표기식
ⓒ 표기식

사진집을 보니 고양이뿐 아니라 멀리서 아파트를 찍은 컷이나 허물어져 가는 풍경을 찍은 컷도 들어 있더군요.

고양이를 찾으면서, 간 김에 틈틈이 찍었죠. ‘간 김에’ 찍는 건 내 습관 같은 거예요.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을 그렇게 부지런히 찍는 동안, 이 작업이 사진집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전혀요. 어떤 기획이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저한테는 포스터가 우선이었어요. 몇 년이 흐르고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개봉한 후에 사진집화가 된 거죠.

2. 행운을 만날 확률

ⓒ 표기식

사진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언제적 이야기야, 거의 2002년 월드컵 그쯤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웃음) 학교 수업 중에 사진 실기 수업이 있었어요. 근데 저는 그 실기 수업을 안 듣고 교양 사진 수업만 들었어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사진을 하려면 거의 니콘 FM2를 사는 분위기였는데, 너무 비싸잖아요. 계속 쓸지 안 쓸지도 모르겠어서 집에 있던 카메라를 수리했어요. 그 카메라로 교양 수업용 사진이며 취미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찍다 보니 재미가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되게 산만하거든요. 근데 사진을 찍을 땐 프레임 안에만 집중하잖아요. 딱 몰입하는 순간이 좋더라고요.

Dream girl, SHINee 2013.S.M ent.

2013년에 촬영한 샤이니 정규 3집 〈Dream Girl-The Misconceptions Of You〉 자켓 사진이 크게 주목받았죠.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 사진들이 <보그 걸> 등의 잡지에 조금씩 소개되던 때였어요. 잡지 <오보이!>는 예전부터 가끔 필름 사진 특집을 하거든요. 당시 필름 사진 특집에 실린 제 사진을 보고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을 줬어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굉장히 어설프죠. 정확한 목표가 있는 작업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샤이니와의 작업엔 ‘앨범’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클라이언트, 스태프, 아티스트까지 함께해야 했죠.

그 후로 수많은 얼굴을 찍어 왔습니다. <셔틀콕>, <족구왕>, <초행> 등 영화 포스터부터 여러 가수의 앨범 자켓이나 콘서트 포스터 등을 촬영했어요. 사진가님의 인물 사진에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마냥 밝지는 않은 분위기가 흘러요.

제가 찍은 걸 알고 봐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닌데, 뭔가 관통하는 느낌이 있다고요! (웃음)

진짜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제가 그걸 몰라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데 난 그게 어떤 포인트인지 모르겠어요. 어떤 촬영장에 가면 “실장님 원래 찍으시던 대로 찍어주세요” 하거든요. 그러면 속으로 그게 뭐지? 해요. 다만 사람을 찍을 때는 그들을 풀어놓고 찍기를 좋아해요. 약간의 상황만 주고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거죠.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주문은 잘 안 해요.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어디서 봤던 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만 자꾸 찍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대로 두고 내가 이리저리 다니면서 뭔가를 발견하려고 하는 편이죠.

카메라를 쥐고 밖으로, 포토그래퍼 표기식 ②
▼ 2편에서 계속됩니다.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표기식

Art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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