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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22-11-15

예술 입은 한글, 한글 입은 예술

국립한글박물관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한글연구소>

기간 2022.10.07 - 2023.01.29
장소국립한국박물관(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한국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의 언어인 한글 역시 조명을 받게 됐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작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과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한글의 ‘용도’ 측면에서 잠시 벗어나, 한글의 형태적인 힘과 전달의 과정에 초점을 맞출 때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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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됴찬쇼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여기, 한글을 떼어보고 붙여보고 멀리서 보고 흩트려보는 등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한 다양한 실천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장이 있다. 지난 10월 7일부터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근대한글연구소> 전시다. 한글실험프로젝트는 한글을 디자인 관점에서 재해석해 한글이 지닌 예술, 산업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조명하자는 취지를 지녔다. 올해 4회차를 맞이한 프로젝트의 주제는 ‘근대 한글의 변화상’이다.

유남권, 지태칠기(한글 시리즈)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이예주, 평안이 가시오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왜 ‘근대’ 시기에 초점을 맞췄나?

1876년 개항 이후에 한국 사회는 전통과 새로운 문화가 만나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때 한글 역시 변화와 발전을 모색하게 된다. 한글은 1894년에 고종이 공문서에 한글을 사용하도록 선포하면서 공식 문자가 됐다. ‘한자 중심의 생활’이 ‘한글’로 옮겨가며 한글 사용 영역은 넓어지게 됐다. 한글 사용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고 우리말과 글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글쓰기를 위한 공통 기준도 마련됐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말부터 들어온 서구의 기계식 인쇄 기술은 한글 인쇄물이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신문과 잡지, 문학서 등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이 발행됐고, 제목과 표지를 한글로 디자인하는 등의 다층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근대는 한글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던 시기였다. 

스튜디오 페시, 자모타일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한글 변화상 재해석하기

근대는 한글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이지만, 우리는 그 변화 과정을 제대로 헤아리기 어렵다. 급격한 변화들이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는 한글의 시도와 모색의 몇 가지 지형도를 구분해 제시하고 있다. 한글의 변화상 지형도를 제시하는 방식 역시 굉장히 실험적이다. 아티스트에게 한글의 쓰임, 확산과 관련된 소장 사료를 보여주고 이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과 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형원, 활자를 입력하세요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전시는 한글의 변화상 지형도를 크게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눴다. 동서말글연구실(Eastern and Western Languages Lab), 한글맵시연구소(Hangeul Style Lab), 우리소리실험실(Korean Folk Music Lab), 한글출판연구실(Hangeul Publishing Lab), 근대 한글 연구자 주시경을 기억하며(Remembering Ju Si-gyeong, Korean Linguist of the Modern Era)로 구성된다. 

 

전시 작품들의 바탕이 된 소장 자료는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와 국어 문법서에 해당하는 『말의 소리』, 지석영 선생이 편찬한 외국어 교재 『아학편』, 프랑스인 선교사가 편찬한 한국어 문법서 『한어문전』, 한글 띄어쓰기를 선구적으로 적용한 「독립신문」 등이다. 

Ι 동서말글연구실

동서말글연구실은 말, 글과 관련된 구획이다. 여기에는 개항 이후에 우리나라로 들어온 외국인들이 한글을 알아가기 위해 한 노력과 우리가 외국어를 이해하기 위해 한 노력과 방법이 제시된다. 해당 공간에는 당시의 소장 자료를 보고 영감을 얻은 6팀의 디자이너, 이화영, 유정민, 이슬기, 이청청, 유현선, 이예주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화영, 한HAN글文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유현선, ME뉴板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한글이 외부 세계를 보는 창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 이화영 디자이너의 ‘한HAN글文’은 펼친 화면의 형태가 특징이다. 이 작업은 창이기도 하면서 펼쳐진 책을 은유한다. 그는 한글의 제작 원리인 천지인을 뽑아 한자와 영어를 그래픽으로 형상화했으며, 문화가 중첩되는 과정을 구현하고자 그래픽을 중첩해서 표현했다. 

전시장 벽에 부착된 유현선 디자이너의 작업도 눈길을 끈다. 유현선 디자이너는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어를 이해하고 싶어 편찬한 사전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외국인에게 메뉴판을 보여줄 때 음식의 ‘발음’을 알려줘야 할지, 그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했던 과정을 떠올렸다. 이에 그는 12개의 음식 단어를 뽑아 다국어 메뉴판 ‘ME뉴板’을 디자인했다.

Ι 한글맵시연구실

한글맵시연구실에는 한글을 어떤 형태와 모양으로 조합, 배열할지에 대한 근대의 시도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물이 전시돼 있다. 근대 시기에는 띄어쓰기 없이 세로로 글을 쓰던 방식에서 가로쓰기로 변화하게 된다. 대표적인 한글 학자인 주시경 선생은 한글을 가로로 쓰면서 자음자와 모음자를 따로 적는 가로 풀어쓰기를 시도하게 된다. 또한 그는 띄어 읽어야 하는 곳에 둥근 점을 표시해 편의를 더하기도 했다. 한편 1896년에 독립신문은 창간호부터 빈칸 띄어쓰기를 선구적으로 적용했다. 인쇄를 위해 필요한 한글 연활자도 이때부터 다양한 서체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김무열, 권점: 띄어서 쓰기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시멘트, 쓰기의 층위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박춘무, 무제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한글맵시연구실에는 시멘트, 박춘무, 김무열, 권중모, 한동훈, 윤새롬, 하형원 총 7팀의 작업이 전시돼 있다. 시멘트(박용훈, 박지은, 양효정)는 디지털 한글박물관 사이트를 통해 한글의 배열 양상과 문장부호 등을 조사했다. 양상을 파악한 이들은 직접 만든 아이콘을 표기, 결합해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또한 1910년대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가 국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쓴 원고인 『말모이』를 본 박춘무 디자이너는 ‘가로 풀어쓰기’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패션에 접목했다.

김혜림, 효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Ι 우리소리실험실

조선 후기부터 소리꾼의 목소리로 전해지던 판소리는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이나 목판에 새겨 인쇄한 ‘방각본’ 형태의 소설로 유통됐다. 춘양전, 심청전, 별주부전 등은 제목이 바뀌거나 삽화가 들어가 희곡 형태로 편집되기도 했다. 우리소리실험실에는 김혜림, 김현진, 국악 아카펠라 그룹인 토리스의 작업이 전시돼 있다. 김혜림 디자이너는 춘양전에서, 토리스는 판소리 흥부가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물을 제작했다.

Ι 한글출판연구실

한글출판연구실은 인쇄 기술의 유입으로 한글이 확산되면서 생겨난 출판 현상에 주목했다. 한글과 한자를 함께 쓰거나, 한글만 사용해 인쇄물이 구성되면서 다양한 독자층이 생겨났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한글을 활용해 특색 있는 제목을 짓고 독특한 표지 그림을 제시하면서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게 된다. 무엇보다 구활자본*이라는 독서물은 큰 글씨, 쉬운 문장, 흥미를 끄는 내용, 저렴한 가격으로 형성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한글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표지가 아이들 장난감인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돼 있다는 특징을 지녀 딱지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SAA, 말MAL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한글출판연구실에는 총 6팀에 해당하는 이예승, 새로운 질서와 그후(남선미, 민구홍, 윤충근, 이소현, 이지수), SAA, 이성동, 유남권, 스튜디오 페시가 참여했다. 이예승 디자이너는 현시대의 기술을 접목해 증강현실 구활자본을 제작했다. 그는 당시에 구활자본이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였다면, 현시대에는 그 역할을 QR과 디지털 이미지가 담당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예승 디자이너는 작업에 QR 코드와 디지털 이미지들을 배치하고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관람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작업을 구현했다.

전시장의 연결 통로에는 새로운 질서와 그 후의 ‘호외요! 호외요! 호외요! 호외요! 호외요!’ 작업이 있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이 작업은 중요한 소식을 급히 전달할 때 효과적이었던 ‘호외’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들은 1907년 7월 19일에 고종의 강제 퇴위를 알리기 위해 경향신문이 발행한 호외를 참고했다.

권중모, 획을 주름 접다 시리즈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이청청, 낯섦과 새로움, 그리고 연결 | 사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우리의 눈에는 맹점이 있기 때문에 늘 보이지 않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일상에서 쉽게 쓰고 말하고 읽는 한글이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전시는 근대라는 특정 시기의 한글을 뿌리로 삼고 있지만, 거기에서 뻗어 나온 다양한 가지들은 풍성한 나무를 만들고 있다. 설치, 공예, 미디어, 가구, 패션, 타이포그래피, 음악 등에 이르기까지 특정 시기의 한글 변화상은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제4회 한글실험프로젝트는 국립한글박물관 전시를 마친 후 국내외를 순회하며 한글의 다양한 가치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 매일 마주하는 한글에서 살짝 벗어나 ‘보기’를 권한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하도경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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