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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미술가가 되찾은 연필의 낭만

변선영의 긋다 잇다 짓다.
변선영 작가는 화려한 색채의 패턴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컬러를 싹 빼고 물감이 아니라 연필로 그린 작품을 선보였다. 연필은 미술가뿐 아니라 우리가 가장 처음 접하는 문구다. 연필은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수만 년의 세월을 함축한 자연에서 채취한 흑연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녀의 작품은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가치'를 탐닉해왔으며, 연필로 그린 그림에서도 휴지, 마스크 고리, 단추와 같은 가치 없는 것들을 가치 있게 탈바꿈시키고 있다. <긋다 잇다 짓다>는 서울 종로구 이화익갤러리에서 6월 9일까지 만날 수 있다.
소중한 roll paper 85x120cm, pencils on canvas, 2020

 

Interview 변선영

 

 

연필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연필화는 2018년 시작했다. 2019년 씨알컬렉티브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때 캔버스 작업이 아닌 연필화 한 점을 선보였다. 1년 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10가지 종류의 연필을 가지고 그린 작업이었다. 모든 작품이 컬러인데, 그 작품만 연필화이다 보니 더욱 돋보였고 호평을 받았다. 그 이후 연필 작업을 병행하다가,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내 작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특히 ‘연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술가에게 가장 본질적이며 원초적 소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미술대학 입시 준비에서부터 연필을 사용했고, 몇 십 년간 연필을 써왔다. 미술가로서 본질적인 시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연필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첫 연필화가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연필 작업을 하면서 작가로서의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2019년의 첫 작업은 종이 위의 연필화였는데,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캔버스 위에 그렸다. 그동안 컬러를 즐겨 다뤘는데 내가 잘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기본으로 돌아가 쉽지 않은 것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붓으로 그리는 것과 물리적 시간과 에너지가 크게 달라서 후회하기도 했다. 붓과 물감은 권력자이고, 연필은 너무나 힘없는 연약한 재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작가로서 나를 더 단련시킬 수 있어서 고맙고 보람 있었다.

 

숨고르기 120x120cm, pencils on canvas, 2020
가치 1 85cmx120cm, pencils on canvas, 2020 ​

 

연필로 작업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는지?

연필은 너무 예민하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핏줄이 캔버스로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종이와 달리 캔버스 위는 수정이 어렵다. 젯소를 칠한 캔버스에서 연필이 대단히 감정적인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압력에 따라 같은 연필이라도 전혀 다른 명도를 나타낸다. 그러면서 연필이 감정적 재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받아들이게 됐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균등하게 화면에 패턴을 표현하는 것이 나를 수련시키는 듯했다.

 

 

이전 컬러 패턴 작업과 신작 연필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원래 ‘가치value’를 지속적으로 작품에 표현해왔다. 보이지 않고 셀 수 없는 존재의 가치에 집중해왔다. 이번 연필화에도 그런 메시지는 공통적이다. 단춧구멍, 휴지심, 마스크 고리와 같은 작은 구멍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단춧구멍은 크기와 상관없이 모든 구멍 크기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마스크 고리는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인데 쉽게 버려진다. 레이스는 여성의 의상에 주로 쓰이는데, 생계를 위한 어망 같기도 하다. 레이스를 구성하는 실은 포지티브이지만, 구멍은 네거티브다. 네거티브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내가 생각하는 가치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산넘어 산 45x90cm, pencils on canvas, 2021

 

연필의 매력은 무엇인가?

연필은 붓보다 가깝게 느껴지고 친근하다. 이전 컬러 패턴은 컴퓨터 프린팅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반면에 연필은 감정적 재료이기 때문에 손맛이 민낯처럼 드러난다. 연필의 흔적은 브랜드마다 종류마다 다 다르다. 이를 이용해 명암을 줄 수 있으며, 어떤 연필은 더 브라운에 가깝고 회색빛이 도는 것도 있다. 이러한 특성이 긴장을 유발한다. 거장 박서보, 싸이 톰블리도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연필이라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긴장감으로 피로도가 증가한 상태다. 작업 환경은 빵점이지만 보람 있다.

 

 

이소영

장소
이화익갤러리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3길 67)
일자
2021.05.20 - 2021.06.09
링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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