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8

도시와 일상의 리듬을 관찰해 몸을 맡겨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리는 <두 비트 사이의 틈>
금천예술공장에서 오는 8월 10일까지 독립큐레이터 고윤정이 기획한 전시 <두 비트 사이의 틈>이 열린다.
노세환, 저울은 금과 납을 구분하지 않는다, 아크릴 판재, 무쇠봉, 와이어선, 가변설치, 2019
전시 전경

<두 비트 사이의 틈>을 이해하자면 예술가의 일상이나 예술가의 순간 같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이어 전시에 참여한 10여 명의 다수 작가가 내는 서로 다른 미시적 편린과 이들이 공통의 주제하에 묶여 향하는 대상을 좇자면, 예술가와 비예술가 사이의 간극을 뛰어넘는, 해체하는, 그리고 무력화시키는 일상을 새삼 환기해 보게 된다. 여기서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단편의 연결이자 형이하학의 실재이고, 예술을 사회와 뒤섞여 공존하게 하는 요소다.

전시 전경
윤주희, 긴 하루를 사는 이들을 위한 기념비, Wood, 복합설치, 가변크기, 2022

고윤정은 도시 개발과 산업화를 비판하는 사상과 개인의 윤곽을 드러내기 지향하는 예술의 실천에서 강조되어 온 일상성을 ‘비트’로 표현했다. 언어가 아닌 리듬으로서 선형적이거나 순환적일 수 있는,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이것은 점차 하나의 형식이 되고 공간과 몸에 체화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마르크스 사상가로 알려진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91)의 유작 『리듬분석』(1992)을 오마주한 전시 서문은 이러한 기획의 의도를 활자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획의 시작이 됐던 어느 일상 하루의 생각도 폰트를 바꿔 써가며 기록하고 있었다.

진달래, 박우혁, Stage Direction, Single Channel, 복합설치, 가변크기, 2022

4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에서 이주의 경험을 한지 몇 년이 되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이사를 하였는데, 지난 여름 이사를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이삿날에서야 집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전셋집 특성상 계약하기 전에 내 집처럼 둘러보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드디어 마주한 순간 예상과 다른 이런저런 흔적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계속 무엇인가를 추리하기 시작했다. 이 집에는 몇 명 살았을까? 이 집의 아이는 몇 살이었을까? 이 턱은 왜 만들었을까? 이 벽돌은 왜 여기다가 갖다 놓았을까?

– 고윤정(기획)

 

타인의 내밀한 일상과 그러한 일상의 리듬이 집 안 깊이 새겨진 흔적이 되고, 그것을 발견한 새로운 세입자가 연속적 리듬을 덧씌운다. 반복에 차이를 만들며 리드미컬한 각종의 활동과 그것의 풍경, 감각, 거기 내재해 있는 어떠한 위험과 억압, 욕구, 지루함과 비참함, 변화나 혁명의 전초 같은 것들을 본다. <두 비트 사이의 틈>은 ‘도시의 파편화된 장소, 은닉된 일상의 리듬을 예술가의 눈으로 읽어내는 과정은 우리가 처한 동시대의 삶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작은 틈들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더해 이러한 역할 시행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동참한 작가들의 작업은 이를테면 이에 대한 관찰 일지이자 독해한 풀이 내용에 대한 예술적 기표일 것이다.

서재정, 불확정성 유기적 공간, Acrylic, Oil on shaped canvas, 150 x 125cm, 2022

전시라는 일상, 예술가의 일상을 보는 렌티큘러도 필요

 

그런데 몇 개의 의문이 든다. 예술가의 일상에서 다시 예술로 번안된, 집안과 골목 및 도시공간에서 화이트큐브 전시장이라는 특수한 장소로 옮겨온 이들 작품의 설치, 진열, 상영의 리듬은 비예술가인 관람객에게는 일상성을 말하는 비일상의 예술로 여전한 패러독스로 작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물론 이번 전시의 대관 장소이자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창작공간인 금천예술공장의 경우 전형적인 ‘화이트큐브’의 성격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현우, barricade, 162 x 130cm, oil on canvas, 2022

또, 공모와 심의, 선정과 발표, 섭외와 대관, 홍보, 설치, 철수 등 일련의 형식적 리듬을 형성한 오늘날 미술계의 일상과 다수 대중의 일상 간에 벌어진 ‘두 비틈 사이의 틈’을 본 전시에서 어느 선까지 암묵적 묵인하거나 반대로 표명할 책무가 있을까 하는 정도의 물음이다. 주관적 답이겠지만, 나는 책무를 찾아야 한다는 쪽에 더 기울었는데, ‘도시의 파편화된 장소, 은닉된 일상의 리듬을 예술가의 눈으로 읽어내는 과정은 우리가 처한 동시대의 삶은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작은 틈들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내포한 것처럼 기획이 배양한 예술가의 자기 선언과 일상성의 강조는 ‘예술가 자신의 일상 및 그들이 느끼는 예술과 사회 간 유격’을 배제한 채로 추진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윤정X노경택, 이동불가능한 예술책상, 목공, 2021-2022

그런 의미에서 고윤정 기획자와 노경택 작가가 2021년 협업해 만들었다는, 당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사용된 오브제이자 ‘이동하는 예술책상’으로 작명한, 바퀴 달린 조립식 테이블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본 전시에서 이 오브제는 리플릿과 책자, 다과를 올려둔 실용적 책상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실제로 기획자는 전시장에 찾아온 손님들 맞이를 여기서 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여기서 기획자와 인터뷰를 하였는데, 전시공간의 대관료라든지, 최근 전시장 바닥을 새로 공사해 공간이 전보다 깔끔해졌든지 등 당시 나눈 일상적 대화가 전셋집 계약 후 이사하고 바닥 턱과 벽 같은 것을 살피면서 전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왔다는 기획자 삶의 일화와 포개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각각 예술성과 일상성에서 시작된 리듬이 어느 순간 서로 전치되어 관계 역전을 이루는 것이나 그를 매개하는 경험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권희수, 하강(Dive), 아크릴패널, 싱글채널, 2022
안광휘,렌티큘러, 2채널 영상, 사운드, 2022

은유적으로 이를 매개한 것은 안광휘의 <렌티큘러>(2022)인데, 작가는 관람자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시각과 청각 자극이 다르게 지각되도록 장치했다. 그는 예술가로서 냉소적이고 자기연민적인 내용을 다룬 올드스쿨 스타일 랩 두 가지를 2채널 영상과 사운드 프로젝션으로 교차했고, 관람자는 자신이 택하는 수행 여하에 따라 랩의 내용이 변하는, 즉 관점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재욱, 도로의 리듬(Rhythm of the Road), 바닥 설치 및 확장 현실(AR), 2022

<두 비트 사이의 틈>은 현재라는 시공간의 조합과 변주, 배열을 무대 지시서를 전유해 보여준 진달래&박우혁, 도시 공간의 기하학적 모티브와 심리적 공간을 회화로 표현한 서재정, 집과 작업실 사이의 길을 오가며 마주한 풍경과 축적된 시간대를 회화로 옮긴 이현우, 각 그룹의 관계, 존재의 특징을 공중의 추상적 저울 형상을 통해 표현한 노세환, 대안적 언어와 기하학 형태 조각으로 표상한 조재영, 클라이밍 홀드를 신체 리듬의 기념비로 개념화한 윤주희, 도시에서 나아가 디지털 등 미래 환경에서의 공간 경험을 매개하는 권희수, 확장현실로 도시의 리듬을 경험하게 한 이재욱, 실제의 장소를 가상공간의 감각으로 번안한 박윤주도 참여했다. 전시는 8월 10일 까지.

오정은 객원 필자

사진 스튜디오 마실

자료 제공 고윤정

프로젝트
<두 비트 사이의 틈>
장소
금천예술공장, 3층 P333
주소
서울 금천구 범안로15길 57
일자
2022.07.21 - 2022.08.10
기획자/디렉터
고윤정, 임현영(어시스트 기획)
참여작가
권희수, 노세환, 박윤주, 서재정, 안광휘, 윤주희, 이재욱, 이현우, 조재영, 진달래&박우혁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콘텐츠가 유용하셨나요?

0.0

Discover More
도시와 일상의 리듬을 관찰해 몸을 맡겨

SHARE

공유 창 닫기
주소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