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2

전시 세 개로 ‘톰 삭스’의 우주 상상하기

드넓고 다채로운 그의 예술 세계로
톰 삭스(Tom Sachs). 지난 며칠간 그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오르내렸다. 톰 삭스의 디너 파티에 지드래곤, 제이홉, 박서준, 정유미, 최우식, 페기 구 등 셀러브리티가 대거 참석한 것이 한몫했다. 미국의 조각가이자 공상가인 그는 패션 애호가가 사랑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톰 삭스와 나이키가 협업해 만든 스니커즈 ‘나이키 크래프트 마스 야드’ 시리즈는 국내 재판매가가 1000만 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톰 삭스 © Artist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graphy by Mario Sorrenti

톰 삭스의 재료는 주변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이다. 그는 합판과 합성수지부터 철판, 도자기 등 일상적인 재료를 붙이고 엮어 새로운 맥락을 부여한다. 브리콜라주(bricolage) 기법을 깊이 체화하고 자유롭게 다루는 것. 브리콜라주는 다양한 재료를 낯설게 바라보고 수선하면서 신선하게 사용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위스키병, 술잔, 지폐, 건전지처럼 익숙한 사물은 그의 작품 속에서 완전히 새롭게 자리 잡는다. 그 낯섦에서 묘한 감상이 피어난다. 사회와 문화, 정치와 경제를 비트는 톰 삭스의 방식인 셈이다.

Training, 2011-2016 Plywood, latex paint, steel, Vertibird, Yamazaki, mixed media, S/N: 2011.015, Photography by Joshua White

톰 삭스의 세계를 특정한 단어 한두 개로 설명하는 것은 난처합니다. 그는 근대성의 유산에 대해서 비판적이지만 그것을 통해 유머를 만들어 냅니다. 한편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찬미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새로운 희극으로 각색합니다. 그는 산업화가 양산한 기계주의를 경외하면서도 한편 그것을 조롱합니다. 그는 매우 냉소적인 듯하지만, 한편 매우 긍정적이고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는 동시대 물질문화와 소비문화를 가로질러 우주의 조화를 상상합니다. 그는 이 세계를 외면하거나 이 세계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현재의 다른 차원을 탐구하기 위해서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갑니다.

 

–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 ‘안녕, 톰! 헬로, 서울!’ 중에서

붐박스를 설명하는 톰 삭스. 사진 제공: 하이브 인사이트

올 6월 톰 삭스는 전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인상적인 건 그의 전시가 무려 세 곳의 전시장에서 동시에 열린다는 사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 용산구 타데우스 로팍과 하이브 인사이트가 그 세 곳이다. 지향과 개성이 각기 다른 공간들이 아티스트 한 사람의 전시를 연다는 데서, 그의 예술 세계가 드넓고 다채로움을 가늠할 수 있다. 세 공간이 톰 삭스의 어떤 면을 포커싱했는지 짚었다.

아트선재센터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독트리네이션>

Tom Sachs Space Program: Indoctrination

Indoctrination Center 2021 Photography by Joshua White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독트리네이션(이하 인독트리네이션)>이 열리는 동안 아트선재센터는 가상 공간의 기지가 된다.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은 톰 삭스가 2007년부터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독일 함부르크,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열렸던 지난 <스페이스 프로그램> 전시들은 새로운 자원을 찾아 낯선 환경을 탐사하고 식민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경험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Mary's Suit, 2019 ConEd barrier, plywood, steel hardware, mixed media, S/N: 2019.282,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Vaguum, 2012 mixed media, S/N: 2012.153.001,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Launch, 2010 plywood, latex paint, steel hardware, mixed media, S/N: 2010.019,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인독트리네이션>은 그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결을 살짝 달리한다. 우주 탐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려는 이들을 위한 ‘교육센터’라는 성격을 띠기 때문. 배우려는 사람들이 왔으므로, 톰 삭스는 확실히 가르친다. 관람객은 톰 삭스 스튜디오에 관한 테스트 문제를 풀고 통과하면 임무를 부여받는다.

Indoctrination Center, Screw Sorting 2021 Photography by Joshua White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독트리네이션 전시 전경, 2022, 아트선재센터, 사진 제공 톰 삭스 스튜디오

그 임무란 ‘나사 정리’인데, 작가가 마련해둔 알고리즘을 따라 나사를 정리하면 톰 삭스가 발급하는 나사(NASA)의 ID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를 밟아나가다 보면, 톰 삭스가 왜 새로운 시공간을 상상했는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어디인지, 그리고 예술이 얼마나 아득하게 가지를 뻗어가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Rescue, 2010 ConEd barrier, plywood, Vertibird, mixed media, S/N: 2010.051,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The Hero's Journey, 2017 Plywood, ConEd Barrier, Steel Hardware, S/N: 2017.180,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건축을 공부한 톰 삭스는 근대 건축에서 중요한 건축가의 건물이나 가구,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의 작업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던 디자인과 소비문화의 아이콘들을 재창조하고 재조립하며, 근대 기능주의와 현대 자본주의의 실패한 유토피아를 재치 있게 드러낸다. 우주여행을 주제로 한 그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시리즈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경쟁에서 시작한 우주여행, 인류의 새로운 목표가 된 우주개발에 얽힌 여러 가지 뉘앙스를 다룬다.

 

그는 브리콜라주 기법을 고수하며 단순하고 일상적인 재료로 작품을 만든다. 덕트 테이프, 합판, 글루건, 폼보드 같은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여 섬세하게 오브제를 만들지만, 의도적으로 이음새와 거친 표면 등은 노출된 상태로 남겨둔다. 매끈한 마무리보다는 ‘과정’의 흔적들이 남도록 하는 것이다. 거친 겉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가 만드는 오브제들은 주로 기능이 있고 사용자에 의해 가동된다는 매력을 갖는다.

 

–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임무 완수: 톰 삭스의 규칙들 그리고 <TV 요다>’ 중에서

Saturn V Moon Rocket, 2011, Photography by Joshua White (좌) / Ignition, 2007-2010,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우)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독트리네이션>

 

전시 기간 2022. 06. 22 – 08. 07

전시 장소 아트선재센터 1, 2전시실 및 아트홀

관람 시간 화~일 12:00 – 19:00 (수요일 21:00까지 연장, 월요일 휴관)

출품작 회화, 설치, 영상 등 총 50여 점

하이브 인사이트 <톰 삭스: 붐박스 회고전>

TOM SACHS: Boombox Retrospective 1999-2022

Model Eighty Four

귀를 위한 조각. 하이브 인사이트에서 만날 수 있는 톰 삭스의 작품을 설명하기에 꼭 알맞은 말이다. 이 공간에는 톰 삭스의 ‘붐박스’ 시리즈 작품 13점이 전시된다. 작가가 브리콜라주 기법으로 만든 붐 박스는 ‘붐박스’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확실히 다른 모양새다. 그의 붐박스엔 콜라병과 우산, 크고 작은 공이 달려 있다.

Big Pink
빅 핑크의 뒷면 ⓒ heyPOP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붐박스 ‘빅 핑크(Big Pink)’가 관제탑 역할을 하면서, 이곳에 놓인 모든 붐박스의 음악이나 볼륨 등을 제어한다. 작가의 친구이자 뉴욕에서 활동하는 DJ는 이번 전시를 위해 24시간 길이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덕분에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레게, 아프로 쿠반 재즈, BTS의 음악 등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다.

Guru's Yardstyle

붐박스 작품은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뿐만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1940년대부터 트럭에 대형 사운드시스템을 싣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파티를 하기 시작한 자메이카의 독특한 DJ 문화에서도 기인한다. 그중에서 본격적인 붐박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Guru’s Yardstyle, 1999〉 작품은 그 요소들 – 턴테이블, 스피커, 엠프, 모래시계, 우산, 합판 등 – 뿐만 아니라 파티 도중 임시변통으로 손수레 위에 제작하여 끌고 다니게 된 탄생 비하인드 마저 그 즉흥성을 시각적으로 집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 이여운 하이브 인사이트 큐레이터

작가는 각 붐박스마다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붐박스는 곧 조각입니다. 성당이나 교회를 보세요. 자체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면서, 그 안에서 성스러운 무언가가 일어나잖아요? 붐박스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위한, 소리를 위한 조각이라는 거죠. 저처럼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위한 작품을 만듭니다.”

Phonkey

<톰 삭스: 붐박스 회고전>

 

전시 기간 2022. 06. 22 – 09. 11

전시 장소 하이브 인사이트

관람 시간 화~일 11:00 – 21:00 (월요일 휴관)

사전 예약 하이브 인사이트 홈페이지 (사전 예약으로만 관람 가능)

타데우스 로팍 서울 <로켓 팩토리 페인팅>

Rocket Factory Paintings

The Changeling, 2022 Synthetic polymer and Krink on canvas © Artist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는 톰 삭스의 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명에서 드러나듯, 여기 걸린 회화 14점은 톰 삭스의 NFT 프로젝트 ‘로켓 팩토리’와 연결된다. 로켓 팩토리는 톰 삭스가 2021년 선보인 온라인 NFT 플랫폼이다. 로켓 팩토리가 디지털 세계에서 로켓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팩토리는 조건과 규칙만을 제시한다. 작품을 구매하려는 이가 결과물을 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로켓을 만들 수 있는 부품에는 유명 브랜드 30여 개의 아이덴티티가 새겨져 있다. 같은 브랜드가 새겨진 부품만으로 조합하면 ‘퍼펙트 로켓(perfect rocket)’, 각기 다른 브랜드가 새겨진 부품을 조합하면 ‘프랑켄 로켓(franken rocket)’이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 부품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탄생하는 로켓 결과물은 15만여 개에 달한다.

전시 전경

30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샤넬, 버드와이저, 코카콜라, 애플 등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징적인 브랜드들을 포함하며, 이를 통해 작가는 팝 아트와 개념 미술을 잇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한다. 작가는 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들을 일종의 자화상으로 여기는데, 커뮤니티 또한 자신만의 NFT 부품을 선택하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새롭게 돌이켜 보게 된다. 삭스는 본인이 선택한 도상들에 대해 ‘브랜드는 우리로 하여금 조직의 소속감을 형성하게 한다.’고 말하며, ‘어린 시절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종종 아버지의 새 차나 어머니의 새 드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브랜드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종교라 일컫는 소비주의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인 바 있다.

 

– 타데우스 로팍 서울 <로켓 팩토리 페인팅> 소개글 중에서

Admiral Achbar, 2022 Synthetic polymer and Krink on canvas © Artist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7-Eleven Nose Cone, 2022 Synthetic polymer and Krink on canvas © Artist Courtesy Thaddaeus Ropac gallery | London • Paris • Salzburg • Seoul Photography by Genevieve Hanson

NFT와 회화를 연결할 때, 물리적 작품을 디지털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톰 삭스의 작업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순서를 뒤바꾸었기 때문. 그는 디지털 세계에 수천 개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판을 깔아두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 중에서 10점 남짓 선별해 물리적 회화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자신에게 더욱 각별한 브랜드가 새겨진 로켓을 고심해서 고른 후, 회화 작품으로 구현했다고. 이 전시를 통해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를 오가면서, 디지털 세상과 물리적 세상을 넘나들면서 넓어져 가는 톰 삭스의 예술 세계를 목격한다.

전시 전경

<로켓 팩토리 페인팅>

 

전시 기간 2022. 06. 25 – 08. 20

전시 장소 타데우스 로팍 서울

관람 시간 화~토 10:00 – 18:00 (일·월요일 휴관)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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