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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7

이상한 나라에 사는 앨리스가 초대합니다

로버트 테리엔 한국 첫 개인전 <그때 At That Time>
미술가의 작품 세계에서 작품 크기는 왜 중요할까? 현대미술에서 작품 크기는 왜 중요할까? 아주 크거나 혹은 아주 작거나. 2019년 작고한 미국 미술가 로버트 테리엔(Robert Therrien)의 한국 첫 전시 <그때 At That Time>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5월 5일까지 열린다.

꼭 들러 보세요!

관람객의 느낌 그대로, 모든 작품의 <무제>

 

이번 전시는 작고 이후 열린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로버트 테리엔은 3미터가 넘는 거대한 테이블과 의자 세트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전시는 초기작에서부터 후기작까지, 손바닥만 한 아주 작은 작품에서 대작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이번 전시는 가나아트센터 3개의 전시장을 사용하며 총 52개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형 회고전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초대형 테이블과 의자 세트 작품 ‘무제(폴딩 테이블 앤 체어스)No title(folding table and chairs, green)’부터 소개한다. 테이블과 가구를 실제보다 더 크게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서 제작 과정에서부터 큰 난관을 겪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스틸과 알루미늄 소재인데, 실제 의자와 테이블처럼 접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의자와 테이블이 그렇듯이, 약간 부식한듯한 낡은 효과는 컬러로 만들었다. 실제 의자와 테이블과는 약간의 구성 비율이 다른데, 인체공학적 비율로 의자를 확대하면, 오히려 시각적으로 가짜 의자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형태를 중요시하는 작가로서는 실제와는 다르지만 진짜처럼 보이게 비율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No title (folding table and chairs, green), 2008, Paint, steel, aluminum and fabric, Overall dimensions variable

작품이 워낙 크기 때문에 설치와 운송도 쉽지 않았다. 가나아트센터 2층 입구를 다시 공사해서 작품이 들어올 수 있었으며, 미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과연 실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쏙 들어갔다고 한다. 사실 이 작품은 한국 첫 개인전의 출발이 되기도 했다. 로버트 테리엔 재단 입장에서는 가장 유명한 그의 대형 테이블 세트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작품을 하나 둘 추가하다 보니 지금의 다채로운 전시에 이르렀다. 초기에서부터 작고 직전까지, 평면에서부터 설치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반갑다.

전 전경 (이미지 제공 _ 가나아트센터)
전 전경 / No title (snowman), 2018, Solid brass with silver plating, 17.8 x 7.9 x 7.9 cm, Courtesy of Robert Therrien Estate
어린 시절의 재밌는 상상

작품 세계의 중요한 키워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는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했으며,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상상력과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 개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 전반에서 이러한 영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눈사람, 걷는 발, 가짜 수염, 빨간 악마, 밸트, 눈물과 같은 소재는 여러 소재와 크기로 계속해서 새롭게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전시장에서 이를 직접 확인해 보자.

 

특히 눈사람 조각은 특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는 생전에 눈사람 조각이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말했으며, 초기에서부터 눈사람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눈사람을 드로잉과 조각으로 만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자란 시카고에서는 눈사람을 볼 수 있었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날씨가 덥기 때문에 이를 볼 수 없어 아쉬워했던 것 같다. 키가 훌쩍 큰 그가 창밖에 외롭게 서있는 눈사람을 보고 아마도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으로 추측해 본다.

 

그의 모든 작품 제목은 ‘무제’이며, 우리가 눈사람 모양의 작품을 ‘눈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작품과 구분하기 위한 닉네임을 사용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않기를. 그는 관람객이 제목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자유롭게 하기를 원했다. 추상성이나 다원화의 한계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작품 제목을 만들지 않은 것. 작품을 규정하지 않고, 그 추상적이고 풍부한 형태를 관람객이 스스로 느끼게 하기 위한 의도다.

전 전경 (이미지 제공 _ 가나아트센터)
현실 밖으로, 입체적으로 그려진 추상화

 

2층 전시장에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작품은 더치 도어이다. 그는 여러 점의 다채로운 더치 도어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그중에서도 마스터 피스로 불린다. 더치 도어는 위아래 두 개로 각각 나누어 열리는 문인데, 그의 작품에서 이는 아름답고 추상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는 관람객이 더치 도어가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며 작품을 보기를 바랐다. 이 작품은 아마도 어린 시절 농촌에서 할아버지에게 목공을 배웠던 기억에서 유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설치와 제작이 까다로운 조각의 진수인 작품이다. 초현실주의적 차가운 인상을 풍기지만 작가의 추상 정신을 엿볼 있다. 그는 블랙, 레드, 옐로를 즐겨 사용했는데, 이 작품은 옐로 나무 문이다.

전 전경 (이미지 제공 _ 가나아트센터)

스테인리스 스틸 카트와 플라스틱 원판 10점으로 구성한 작품도 매혹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재료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한 로스앤젤레스의 앰버서더 호텔의 가라지 세일에서 구입했다. 한때 로스앤젤레스 부의 상징이었던 이 호텔은 로버트 케네디 암살 이후 쇠락해 사용하던 물건들이 세일에 나오게 된 것이다. 마침 친구가 스리랑카에서 보내준 엽서에서 불교의 카시나 명상에 사용하는 원판을 발견하고, 이에 착안해 원판에 실크스크린을 더해 작품으로 만든 것.

 

10개의 원판 페인팅을 카트에 담아 밀고 다닐 수도 있는 조각 작품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벽에 거는 원판을 달리할 수도 있다. 한 원판에는 할머니의 무화과 잼 레시피가 쓰여있고, 도널드 덕의 엉덩이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코가 붉은 여성 그림의 원판에는 그녀가 소설가 조이스 캐롤 오츠를 닮았다고 해서 ‘아픈 조이스’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로버트 테리엔은 문학 작품을 즐겨 읽고 영감을 받았으며,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을 좋아했다.

전 전경 (이미지 제공 _ 가나아트센터)
세상에 하나뿐인 흑백의 기록

 

마지막 2층 전시장은 특히 인기가 있는데, 그의 가장 큰 작품 언더 더 테이블과 가장 작은 작품 폴라로이드 사진 연작이 함께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1990년대 큰 스튜디오로 옮기면서 대형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언더 더 테이블 연작도 이 스튜디오에서 시작된 것이다.

폴라로이드 사진 연작은 1990년대 이후 새로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해 다시 촬영한 것이다. 인화의 어려움이 없고, 이 세상에 단 한 장뿐인 사진이기 때문에 즐겨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가짜 수염, 구름, 침대와 같은 폴라로이드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그는 스튜디오에 실제 크기의 세트를 만들었다. 사진은 작지만 작품 속의 원근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은 그 자체도 작품이지만 새로운 작품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작은 흑백 사진에도 큰 열정을 쏟은 그의 실험 정신이 놀랍다. 그렇기에 이 폴라로이드 사진 작품은 작지만 큰 의미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크기는 중요하다. 작품 크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기도 하고, 스펙터클한 대형 작품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용이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크기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이소영 기자

자료 제공  가나아트센터

프로젝트
<그때 At That Time>
장소
가나아트센터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일자
2022.04.12 - 2022.05.05
참여작가
로버트 테리엔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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