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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2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알'이라는 주제로 만난 래리 피트먼과 리만머핀 서울
2017년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둥지를 튼 리만머핀 서울이 알을 깨고 나와 제2의 도약을 꿈꾼다. 그 무대는 용산구 한남동. 한남동에는 한국 최대 사립미술관인 리움 미술관이 있고, 뉴욕의 3대 화랑인 페이스 갤러리 서울 등이 있다.

한남동으로 이전한 리만머핀 서울.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리만머핀은 1996년 뉴욕에서 처음 출발했다. 2013년에는 홍콩, 2017년에 서울지점이 문을 열었다. 한남동으로 이관을 마친 리만머핀 서울은 약 70평 규모의 전시장을 갖추게 됐고, 조각 작업을 소개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까지 갖췄다.

 

리만머핀 서울의 내부 공간.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외관은 도시적이면서도 미래적이고, 내부는 화이트 큐브와 우드의 조화로 진중함과 차분함을 더한 모습이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 Society of Architecture)가 리노베이션을 담당했다.

 

전시 전경.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알을 막 깨고 나온 리만머핀 서울이 처음으로 소개하는 작가는 래리 피트먼(Lari Pittman). 피트먼의 작업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물은 알(egg)이다. 새하얀 화이트 큐브 벽과 하얗게 빛나는 피트먼의 알들이 만나 새로움이라는 빛을 발산한다.

 

 

Ι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작업의 골조이자 전체적인 틀을 구성하는 테마는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이다. 그 중심에 놓인 상징물이 ‘알’이다. 알은 우주의 원초상태이자, 생명의 탄생과 재생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작가는 관람자들이 이러한 상징적 의미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한다. 그가 제시하는 알은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이라는 세 가지 범주 내에서 변형되고, 그 기능을 달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LARI PITTMAN, Opaque: Outside of the Egg 1, 2021, Acrylic and spray enamel on gessoed archival museum board mounted on panel, ©Lari Pittman.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LARI PITTMAN, Opaque: Outside of the Egg 2, 2021, Acrylic and spray enamel on gessoed archival museum board mounted on panel, ©Lari Pittman.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가장 먼저, 세상에 내던져진 알은 시선의 대상이 된다. 알 안에 있는 존재는 사적이고, 배타적인 불투명함에서 반투명함으로 옮겨가면서 이내 중간 경계에 있게 된다. 이후 이국적인 도시 풍경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알은 빛나는 공공의 기념비가 된다. 피트먼은 이러한 알의 과정이 인류의 문명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LARI PITTMAN, Luminous: Cities with Egg Monuments 2, 2022, Cel-vinyl and lacquer spray over gessoed canvas on titanium and wood panel, ©Lari Pittman.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LARI PITTMAN, Luminous: Cities with Egg Monuments 1, 2022, Cel-vinyl and lacquer spray over gessoed canvas on titanium and wood panel, ©Lari Pittman.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작품 속에서 알은 제 스스로 빛을 내는 광원이 되어 가로등 불빛으로 표현되거나 공공의 건축물을 이루기도 한다. 알들은 광활한 도시들 사이에서 어떤 것도 될 수 있는 순수한 가능성으로 기능하며, 잠재력으로 가득 찬 존재들인 것이다.

 

 

Ι 귀감의 원천은 건축적 환상과 시적인 건축

 

‘밀집’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대상들이 매우 빈틈없이 빽빽하게 모여 있다. 그 대상들은 작지 않은 캔버스를 꽉 채운다. 여기서 건축물의 밀집도가 가장 높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건축양식의 스펙트럼은 중세 시대부터 빅토리아시대, 산업혁명 시기부터 후기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LARI PITTMAN, Luminous: Cities with Egg Monuments 2, 2022, Cel-vinyl and lacquer spray over gessoed canvas on titanium and wood panel, ©Lari Pittman.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피트먼은 클로드 니콜라 르두(Claude-Nicolas Ledoux)와 에티엔 루이 불레(Etienne-Louis Boullée) 같은 프랑스의 선지자적 건축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두 선지자들은 주로 상상의 도시들을 그렸고, 그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적인 환상’이 피트먼에게 귀감이 됐다. 여기서 건축적 환상이란, 예술가들이 실현하는 이념적이고 철학적인 반향에 해당하는 폴리(folly)와 같은 것들이다. 폴리는 건축의 본래적인 기능을 잃고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지칭한다. 피트먼은 이러한 폴리가 “일종에 죽음의 북소리 같은, 불멸의 반짝임”에 해당한다고 표현한다.

 

LARI PITTMAN, Luminous: Cities with Egg Monuments 3, 2022 (detail), Cel-vinyl and lacquer spray over gessoed canvas on titanium and wood panel, ©Lari Pittman.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건축이라는 대상은 시간의 압축적 존재라는 점에서 작품의 또 다른 상징물로 작용한다. 알과 건축물, 그리고 비둘기나 제비 등 조류와 인간 형상들의 어우러짐. 언뜻 보면 피트먼의 작업은 상징적 대상들이 어우러져 넘실거리는 바다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본 이들은 공통적으로 피트먼의 상징과 기호들을 독해하는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상징과 기호를 아무리 도상학적으로 독해하려고 해도 명확한 답을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일 작품임에도 그 내부에는 단일한 서사와 관점이 아닌, 다층적이고 복잡한 서사와 관점이 배치돼 있다. 하나의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중복 서사, 그것이 곧 작품의 전반적인 구성이기 때문이다.

 

레리 피트먼.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그는 인간의 결정론적 사고를 꼬집는다. 우리는 어떤 문제든 결론을 내리고자 하고, 하나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욕구는 우리로 하여금 정보를 더욱 빨리 파악하게 하고, 세상을 보다 명쾌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결정론적 사고는 다채로운 가능성을 등한시하게 하고, 심층적인 문제를 격하하고,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래리 피트먼의 작업은 도상학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작업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다. 작품 속에서 명확한 답은 도출될 수 없다. 다차원적 서사와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건축물을 형성하듯, 피트먼의 작업 역시 하나의 시선과 관점으로는 작품 전체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숨기는 것이 아닌 드러냄으로써 꼬집는 미학인 것이다.

피트먼의 작업에는 건축과 장식, 사회 문화의 기호와 상징이 밀도 있게 배치돼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또 다른 도시와 세계가 펼쳐진다. 단일한 캔버스 내에 구현된 무궁무진한 소우주들을 경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전시는 오는 5월 7일까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리만머핀 서울

장소
리만머핀 서울
주소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13
일자
2022.03.15 -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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