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4

앤디 워홀의 얼굴 그림만 모았다

에스파스 루이 비통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 展.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자화상을 통해 앤디 워홀의 세계를 살피는 전시 <앤디 워홀: 앤디를 찾아서>가 열린다. 루이 비통 재단이 미술관 소장품의 접근성을 높여 더 많은 대중에게 작품 관람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한 ‘미술관 벽 너머'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번 전시는 삶과 죽음, 표상과 이면 사이에서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은 채 언제까지고 회자될 슈퍼스타, 앤디 워홀의 자취를 초상화 중심으로 쫓는다.
SELF-PORTRAIT, 1986,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74.3 x 274.3 cm 작가의 상징이 된 은색 가발과 어둠 속에 두상만이 떠 있는 불안한 구도는 후기 자화상의 경향을 대표한다. © Kwa Yong Lee / Louis Vuitton ​

 

마치 SNS처럼…

화면 채운 화려한 얼굴들, 시대의 도상

 

시대의 아이콘으로 사랑받은 앤디 워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자화상과 초상화는 중요한 단면 중 하나다. 은색 가발을 쓴 채 극적인 콘트라스트로 현실감 없이 표현한 자화상은 셀러브리티로서의 면모를 단단히 했다. 수백 장의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인물화는 단순한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색을 더하거나 다중의 레이어를 얹는 등 주관적 해석을 더해 작가가 바라본 시대상을 은유했다. 그리고 이 도상들은 강렬한 컬러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늘날 SNS 속 프레임을 채운 얼굴들이 그렇듯.

워홀의 인물화는 1968년 벌어진 총격 사건 전후로 다른 경향을 보인다. 그는 피츠버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50년대 초 뉴욕에 입성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잉크의 자연스러운 번짐을 다른 종이에 찍어내는 판화적 방식으로 패션 일러스트를 그렸다. 업계의 저명한 상인 ‘뉴욕 아트 디렉터스 클럽 어워드’에서 수상했고 <보그>, <하퍼스 바자> 등 유명 매체가 그를 찾았다. 무한히 복제되며 순식간에 소비되는 산업화 시대 상업미술. 이는 곧 몇 년 뒤 그가 선보이는 팝아트의 주제다.

 

SELF-PORTRAIT, 1967,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182.9 x 182.9 cm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총격 사건 이전,

성공적인 홍보 수단이었던 전기 자화상

 

1962년에 <32개의 캠벨 수프 캔>을 내놓으며 뉴욕 미술계의 총아가 된 그는 이듬해 레오 카스텔리 화랑의 미술품 경매상 이반 카프Ivan Karp의 권유로 자화상 작업을 시작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레인 코트를 입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같은 자신의 모습을 즉석에서 사진으로 촬영해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냈다. 나르시시즘, 신비감이 부각된 이 시기의 자화상은 강력한 대중성을 지닌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부응하며 앤디 워홀의 입지를 공고히 한다.

 

SELF-PORTRAIT, 1978,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03 x 203 cm © Fondation Louis Vuitton / Martin Argyroglo

 

작품 세계 가로지르는 주제 ‘죽음’

작업실 ‘팩토리’ 직원 총격 이후 더 깊어져

 

1962년 마릴린 먼로가 사망한 후 앤디 워홀이 그녀의 사진을 구입해 후일 대표작이 되는 <마릴린(Marilyn)> 작업을 시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초기작인 <죽음과 재앙(Death and Disasters)> 역시 대규모 참사를 보도하는 매스미디어의 무신경한 보도사진을 주제로 한다.

작품 세계의 기저에 있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작가가 1968년 자신의 작업실 ‘팩토리’의 직원이었던 발레리 솔라나스(Valerie Solanas)에게 총격을 당한 이후 작가 자신의 도상에도 적용되기 시작한다. 앤디 워홀은 총격 이후 자화상 작업을 중단하고 10년이 지난 1978년에 재개하는데, 목이 졸리는 포즈나 해골 등 죽음과 결부된 이미지가 등장하게 된다. 얼굴의 각도를 달리 한 세 겹의 레이어를 겹치거나 배경이 반전된 상은 그를 더욱 감추고 실체를 모호하게 한다. 드러내기보다 감춤을 의도하는 모순의 자화상. 누구에게나 열린 ‘팩토리’ 안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마치 스타처럼 카메라 앞에 섰던 워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우측) THE SHADOW, 1981, 뮤지엄 보드에 실크스크린 / Silkscreen on museum board 102.5 x 102.5 cm © Kwa Yong Lee / Louis Vuitton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그림자(THE SHADOW)>는 이중 레이어로 화면 대부분은 작품의 이름처럼 그림자로 처리된다. 워홀은 이 작품을 20세기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재현한 <신화(MYTH)> 시리즈에서 1930년대 인기를 끈 ‘셰도우’란 캐릭터의 모습으로 쓰는데, 비교적 캐릭터 원안을 그대로 살린 시리즈 속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내세운 유일한 작품이다. 워홀이 자신의 얼굴을 대중문화의 산물이자 그림자와 같은 허상의 이미지로 대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

 

열두 개의 폴라컬러Twelve Polacolors 각 10.8 x 8.5 cm / 10.8 x 8.5 cm 앤디 워홀은 마치 일기처럼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는 그에게 펜과 같았다. © Kwa Yong Lee / Louis Vuitton

 

인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한 피상성…

정체성 질문 던지는 초상화들

 

같은 시기 한켠에서는 거액의 커미션 초상화를 제작했다. 워홀은 200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의뢰인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 안에서 적절한 이미지를 골라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만들었다. 가히 편집증적이라 할 만한 애착으로 이 중 단 한 장도 의뢰인에게 주지 않았다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쓴 건 일반 사진에 비해 디테일이 뭉개지고 이목구비의 큰 윤곽만이 부각되는, 특유의 미화를 선호했던 탓이다.

 

(LADIES AND GENTLEMEN, 1975,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 Acrylic paint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305 x 205 cm © Kwa Yong Lee / Louis Vuitton

 

전시장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레이디스 앤 젠틀맨(LADIES AND GENTLEMEN)>은 이탈리아의 아트 딜러 루치아노 안셀미노(Luciano Anselmino)의 의뢰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드랙 여러 명을 담은 연작이다. 드랙은 워홀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했던 주제로,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란 작품명은 쇼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이들이 매일같이 연호했을 인삿말이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놓인 정체성을 상징한다. 맨해튼 거리에서 드랙을 모집한 워홀은 14명의 모델을 500장이 넘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긴 후 이 중 268장을 실크스크린 작품으로 제작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한 바탕 위에 마치 화장하듯 높은 채도의 색상을 입힌 결과물은 이들의 명확한 생김새도, 성별도 쉽사리 알아볼 수 없게 한다. 워홀은 심지어 모델 중 누구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는데, 전체 연작 중 73점의 모델이 된 작품 속 인물 역시 1997년이 되어서야 함께 일했던 동료에 의해 퍼포머 빌헬미나 로스(Wilhelmina Ross)임이 밝혀졌다.

SELF-PORTRAITS IN DRAG, 1980 -1982, 여섯 개의 폴라컬러 / Six Polacolors 각 10.8 x 8.5 cm / 10.8 x 8.5 cm each © designpress

 

함께 전시된 <여섯 개의 폴라컬러(Six Polacolors)>는 여성의 헤어스타일과 짙은 메이크업에 남성의 신체로 넥타이를 맨 ‘드랙’ 워홀의 사진이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연작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쪽으로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함을 남긴다.

 

앤디 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저와 제 페인팅, 영화에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됩니다. 그 뒤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미진

장소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454,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F)
일자
2021.10.01 -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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