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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6

올가을 광주를 여행하는 법

광주비엔날레를 따라 걷는 산책 코스 5

책이나 영화를 고를 때 제목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종종 있다. 이번에는 한 전시의 제목이 그랬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제목이자 주제인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온 이 문장은 얼핏 단호한 명령처럼 들리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삶은 달라져야 한다는 단호함과 그 방법은 각자가 찾아야 한다는 자유로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는 시대라서일까. 그 문장이 품은 가능성에 이끌려 광주행을 결정했다.

 

광주비엔날레를 찾는 일은 곧 도시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곳곳에 흩어진 파빌리온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오래된 골목과 문화 공간, 책방, 카페에도 자연스레 닿게 된다. 작품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걷다 보면 어느새 광주라는 도시의 다채로운 매력에 눈을 뜨게 될 것. 올가을 광주비엔날레를 찾는 이들을 위해, 전시 전후로 함께 들르기 좋은 다섯 곳을 골랐다.

광주비엔날레

©길보경
©길보경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 광주행을 결심하게 만든 문장을 이제 전시장 안에서 마주할 차례다. 호추니엔(Ho Tzu Nyen) 예술감독이 이끄는 제16회 광주비엔날레에는 22개국 43인이 참여해 3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가 바라보는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극적인 사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몸과 기억, 관계에 조금씩 쌓이는 움직임까지 변화의 과정으로 바라본다. 전시도 그 생각을 따라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천천히 몸집을 키운다. 분자에서 신체와 관계, 풍경, 우주, 공기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걷다 보면 변화의 서로 다른 속도를 몸으로 감각하게 된다.

광주와 맞닿은 작업도 눈에 띈다. 권병준과 박찬경의 〈불림〉은 광주 시민들이 내놓은 낡은 쇠붙이를 모아 새로운 소리를 만든 작품이다. 개인의 물건과 기억이 하나의 울림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본전시를 나선 뒤에도 비엔날레는 계속된다. 26개 국가 및 기관이 참여한 파빌리온이 광주 곳곳 27개 장소로 산재해 있기 때문. 미술관뿐 아니라 이장우 가옥,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광주극장처럼 광주의 시간과 기억이 쌓인 장소를 누비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를 충분히 둘러봤다면 1층 출구 옆 아트숍에도 들러보자. 올해는 29CM가 국내 브랜드와 함께 머그컵, 탁상시계, 북밴드, 티셔츠 등 비엔날레 한정 굿즈를 선보인다. 한쪽에는 커피리브레 카페도 자리해 잠시 쉬어가기 좋다. 전시를 좀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무료 도슨트를 활용해도 좋다. 정기 해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간 진행하며, 현장에서 선착순 20명까지 참여할 수 있다. 입장권 한 장으로 당일 최대 5회 재입장도 가능하니, 전시 중간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다시 돌아와도 부담 없다.

주소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111
운영시간 화~일 10:00 – 18:00
홈페이지 광주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 2026년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린다. 10월 5일과 추석 연휴에는 정상 운영한다.

무화과 로스터스

©길보경

비엔날레에서 쉴 새 없이 작품을 봤다면 이제는 잠시 머리를 비울 차례. 광주비엔날레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운암동의 무화과 로스터스에 닿을 수 있다. 이곳은 직접 원두를 볶고 필터 커피를 내리는 로스터리 카페다. 두꺼운 철제문을 열고 2층으로 올라서면, 넓고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진다. 벽을 따라 길게 놓인 의자와 제각각 놓인 테이블, 군데군데 낮게 밝힌 조명, 큼직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반듯하게 정돈하기보다 느슨하게 흩어놓은 듯한 풍경이 이곳만의 분위기를 만든다.

 

가능하다면 창가 자리를 노려보자. 커다란 창 너머로 초록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멍때리기에 제격이다. 필터 커피는 원두 선택지가 제법 다양하다. 최근에는 과테말라 아구아 티비아 게이샤, 에티오피아 시다마 벤사 두완초 내추럴, 브라질 세하도 내추럴 등이 메뉴에 올랐고, 커스터드 푸딩과 비스코티, 테린느, 브라우니처럼 커피 곁에 둘 디저트도 충실하다. 하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라즈베리 소르베를 추천하고 싶다. 입안이 번쩍 깨어날 만큼 새콤하고 차가운 한입이 진한 커피 사이 좋은 쉼표가 된다. 전시를 잔뜩 보고 난 오후라면 더없이 반가운 맛이다.

주소 광주 북구 금호로 79, 2층

운영시간 10:00 – 24:00 (매일)

인스타그램 @muhwagua.roasters

맷돌콩물국수

©길보경

이번에는 배를 채워 볼까. 무화과 로스터스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이름 그대로 매장 한편에서 콩을 직접 맷돌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맷돌콩물국수. 주문한 콩물국수는 면이 좀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걸쭉한 콩물에 푹 잠겨 나온다.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만큼 녹진하고 고소해 첫입부터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이 든다.

 

먹는 방법도 재미있다. 곱게 간 빙수 얼음을 콩물 위에 원하는 만큼 얹고, 테이블에 놓인 설탕과 소금으로 직접 간을 맞춘다. 광주에서는 콩국수에 설탕을 곁들이는 풍경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예 설탕과 소금을 함께 넣어보길 권하고 싶다. 달큰함 뒤로 짭짤한 맛이 살짝 따라오면서 콩의 고소함이 한층 또렷해진다. 처음에는 ‘콩국수에 설탕?’ 싶다가도 몇 숟갈 뒤에는 설탕과 소금을 번갈아 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녹진한 콩물과 전라도식 먹는 법까지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주소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24-1

운영시간 11:00 – 20:00

전화 062-251-7226

아시아문화전당(ACC)

© 길보경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일대에 세워졌다. 거대한 건물을 높이 올리는 대신 주요 시설을 지하에 낮추고, 지상은 광장과 정원으로 열어 옛 전남도청의 존재를 가리지 않았다. 천창과 대나무정원 사이로 지하 깊숙이 자연광이 스며드는 풍경도 인상적이다. 올해 5월에는 1980년 당시 모습으로 복원한 옛 전남도청이 다시 문을 열었다. ACC를 둘러보기 전후 함께 걸어보길 권한다.

 

광주비엔날레 기간이라면 복합전시 5관의 대만 파빌리온 〈인스턴스 던전: 회색지대(Instance Dungeons: Gray Zone)〉도 놓치지 말 것. 게임에서 같은 공간과 사건이 반복되는 ‘인스턴스 던전’을 오늘날 대만이 놓인 지정학적 상황에 빗댄 전시다. 8팀의 작가가 기록과 디지털 이미지, 영상을 통해 감시와 정보전, 집단 기억을 들여다본다.

©길보경

지금 문화창조원에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향하는 동시대 예술의 방향을 보여주는 전시가 이어진다. 복합전시 1관의 김영은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는 115.4채널 사운드를 통해 아시아의 이동과 이주를 ‘듣는’ 전시다. 식민지와 전쟁, 피난과 망명의 과정에서 남겨진 시와 낭송의 흔적을 오늘의 음향으로 재구성했다. 전시장 안을 움직일 때마다 목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겹치고 멀어져, 눈보다 귀가 먼저 공간을 감지하게 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9월 27일까지 열리는 〈아시아의 장치들〉도 추천한다. 차학경, 봉준호 등의 실험영화와 비디오아트를 영화관과 기차역, 기숙사, 편의점처럼 꾸민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세 전시 모두 무료.

주소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38

운영시간 10:00 – 18:00 (화–일 / 문화정보원·문화창조원 수·토 20:00까지, 매주 월요일·1월 1일 휴관)

홈페이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식 홈페이지

책과생활

©길보경

아시아문화전당에서 길을 건너 책과생활로 향해보자. 2016년 문을 연 독립서점으로, 처음에는 7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과 예술, 인문사회, 과학부터 독립출판물까지 폭넓게 다루며 카페와 출판까지 영역을 넓혔다. 책 기둥을 연상시키는 서가를 따라 직원이 직접 고른 책과 작은 출판사의 책이 빼곡히 섞여 있어, 제목과 표지를 따라 한 권씩 살피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책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책과생활은 북토크와 심야책방을 꾸준히 열고, 여행자에게 광주의 옛 장소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행자의 불빛서점’을 운영해왔다. 1970년대 광주에서 발간된 사진잡지 ‘전일그라프’를 함께 들여다보며 도시의 과거를 탐구하는 ‘광주 시각문화역사 연구 동아리’도 진행했다. 말 그대로 책을 매개로 광주를 읽고 기록해온 공간이다. 현재는 비건 베이커리와 카페도 함께 운영한다. 드립 커피와 비건 카페라테, 두유 짜이 같은 음료를 곁들여 방금 본 전시의 여운을 음미하거나, 다음 동선을 고르기 좋다. 

주소 광주 동구 제봉로 100-1, 1층

운영시간 12:00 – 20:00 

인스타그램 @chaekand

우일선 선교사 사택

©길보경

광주 곳곳에 자리한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중 양림동 일대는 꼭 방문해보길 권한다. 그중에서도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건물과 작품이 특히 인상적인 곳이다. 양림동의 완만한 언덕을 오르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1920년대 지어진 회색 벽돌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인 선교사이자 제중원 원장이었던 우일선(Robert M. Willson)이 지은 집으로, 광주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네덜란드식 벽돌 쌓기와 반원형 아치 창, 돌기단을 갖춘 서양식 건물이면서도 동쪽을 향해 자리한 점이 흥미롭다. 100여 년 전 광주에 들어온 새로운 건축과 생활방식이 한 건물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올가을에는 이곳에 제16회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 〈감지하기 어려운 것들의 정원(Garden of the Imperceptible)〉이 들어섰다. 마테오 마랑고니(Matteo Marangoni)와 디터 반도렌(Dieter Vandoren)은 햇빛과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를 감지해 소리로 바꾸고, 샘 쇼이어만(Sam Scheuermann)은 시시각각 이동하는 햇빛의 윤곽을 좇으며 붙잡을 수 없는 현재를 그린다. 

©길보경

여기까지 왔다면 바로 아래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의 몰타 파빌리온과 이이남스튜디오의 폴란드 파빌리온도 함께 둘러보자. 이장우 가옥과 이강하미술관까지 주변 곳곳에 파빌리온이 이어져 있어 반나절쯤 천천히 걷기 좋다. 9월 18일부터 11월 14일까지 금·토요일에는 파빌리온을 함께 둘러보는 도슨트 투어가 운영되고, 비엔날레 입장권 소지자는 본전시장과 ACC, 양림동을 잇는 무료 셔틀도 이용할 수 있다.

주소 광주 남구 제중로47번길 20

운영시간 09:00 – 17:00 

홈페이지 광주관광 공식 페이지

길보경 객원기자

프로젝트
광주비엔날레
장소
광주비엔날레
주소
광주 북구 비엔날레로 111
일자
2026.09.05 - 2026.11.15
길보경
언제나 자유로이 걷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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