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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2

모두가 사진을 찍는 시대, 우리가 ‘마틴 파’인 이유

〈We Are Martin Parr〉기획한 손현정 학예연구사가 말하는 마틴 파 관람법

마틴 파의 사진전을 보고 싶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사진을 보면 비슷한 마음이 들 것이다. 강렬한 색감, 괴이할 만큼 가까운 클로즈업, 이를 도드라지게 하는 플래시. 더운 여름에는 이처럼 과장되고 선명한 이미지가 보고 싶다.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사진전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가 열렸다. ‘우리 모두가 마틴 파’라니, 무슨 뜻일까.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찍고 여행지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는 시대. 그의 사진을 보며 ‘이런 사진은 나도 찍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일상을 찍는 일이 익숙하지만, 그가 활동을 시작한 당시에는 달랐다. 1952년 영국에서 태어난 마틴 파는 해변과 슈퍼마켓, 관광지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을 찍었다. 전쟁과 빈곤, 국제 분쟁 같은 묵직한 주제에 집중하던 당시의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무엇을 사고,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마틴 파는 그런 일상을 오랫동안 사진으로 기록했다.

Kleine Scheidegg, Switzerland, 1994 © Martin Parr/Magnum Photos
The Grecians´ Ball with Alice in Wonderland theme. Christ´s Hospital School, West Sussex, England, 2010 © Martin Parr/Magnum Photos

초기에는 흑백사진을 찍었고, 이후 강렬한 컬러와 클로즈업, 플래시는 그의 사진을 대표하는 방식이 됐다. 하지만 그가 평생 바라본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관광지를 구경하고, 물건을 사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그 장면에는 대중관광과 소비문화가 전 세계로 확장된 지난 반세기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틴 파가 넓힌 다큐멘터리 사진의 세계

New Brighton, England, 1983-85 © Martin Parr/Magnum Photos

마틴 파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도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휴머니즘 다큐멘터리의 전통이 강했던 매그넘 포토스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마틴 파는 자신의 사진에 피사체를 향한 애정이 담겨 있다고 말했지만, 일부 회원은 이를 냉소와 조롱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그는 1994년 정회원이 됐고 이후 회장직까지 맡았다.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계를 넓혔다. 

이번 전시는 마틴 파가 2025년 세상을 떠난 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970년대 초기 흑백사진부터 말년의 작업까지 사진 약 500점과 사진집 90여 권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를 준비하던 중 작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시의 방향을 다시 고민한 과정도 영상으로 남아 있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의 고민과 마틴 파에 대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그렇다면 마틴 파가 반세기 동안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두가 사진을 찍는 지금도 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를 어떻게 관람하면 좋을지, 전시를 기획한 손현정 학예연구사에게 물었다.

Interview with 손현정 학예연구사

― 이번 전시는 약 500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규모 회고전인데요.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와 작품을 선정하고 구성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마틴 파는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진가예요. 강렬한 색채와 플래시, 소비문화를 유머러스하게 포착한 이미지들이 워낙 유명하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는 사실 그의 전체 작업 중 일부에 가깝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시각언어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시는 1970년대 영국 북부의 초기 흑백 작업부터 컬러로 전환한 1980년대, 1990년대 이후의 작업과 말년의 작업까지 약 50년의 시간을 따라갑니다.

전시장 전경. 출처: 서울시립사진미술관

대표작을 연대순으로 나열하기보다 한 사진가가 오랜 시간 무엇을 반복해서 바라봤는지에 주목했어요. 해변, 음식, 관광객, 여가, 쇼핑과 소비 같은 대상이 계속 등장합니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지는데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은 놀랄 만큼 비슷해요. 한 사진가의 회고전이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어떻게 소비하고, 여행하고, 즐기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사회적 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어떤 점에 주목해서 보면, 좀 더 전시를 잘 감상할 수 있을까요?

마틴 파의 사진은 너무 심각하게 보지 않아도 돼요. 먼저 웃고,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보셨으면 해요. 그다음에 ‘내가 왜 웃었지?’라고 생각해 보는 거죠. 그 순간부터 사진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Mexico City, Mexico, 2003 © Martin Parr/Magnum Photos
Imperial War Museum, London, England, 2015 © Martin Parr/Magnum Photos

관광지 사진을 보면 처음에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구경하게 돼요. 가만히 보면 우리도 여행지에서 똑같이 사진을 찍고, 음식을 찍고, 비슷한 포즈를 취하죠. 남을 보고 웃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사진이 우리를 비추는 거예요.

 

작은 디테일도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표정뿐 아니라 음식, 옷의 무늬, 손짓, 간판, 포장지 같은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마틴 파는 거대한 사건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통해 한 시대와 사회를 읽어내는 사진가입니다.

― 해외에서는 마틴 파가 어떤 작가로 평가되는지 궁금합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마틴 파는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문법을 확장한 중요한 사진가예요. 다큐멘터리 사진이 전쟁이나 빈곤 같은 거대한 사회적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났습니다. 슈퍼마켓, 해변, 관광지, 파티, 음식처럼 너무 평범해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들을 집요하게 촬영했어요.

강렬한 컬러와 플래시, 클로즈업, 유머와 아이러니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요.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뿐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까지 바꾼 사진가라고 생각합니다. 매그넘에 합류할 당시 그의 사진을 두고 내부에서도 논쟁이 있었어요. 기존의 휴머니즘 사진과 비교하면 훨씬 냉정하고 풍자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Pyongyang, 1997 © Martin Parr/Magnum Photos
Seoul, South Korea, 2004 © Martin Parr/Magnum Photos

결과적으로 마틴 파의 등장은 매그넘 안에서도 다큐멘터리 사진의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세대가 일상과 소비문화, 사진가 자신의 주관적인 시선을 다큐멘터리 안으로 가져오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We Are Martin Parr〉라는 제목은 이제 누구나 마틴 파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AI로 완벽에 가까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시대, 그의 어딘가 어색하고 불완전한 사진은 오히려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모두가 사진을 찍는 지금도 그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는 모두 사진가처럼 살아가요.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고, 먹기 전에 음식을 찍고, 자신의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죠. 마틴 파가 수십 년 동안 관찰해 온 행동을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We Are Martin Parr〉라는 제목을 생각하게 됐어요.

모두가 마틴 파처럼 찍을 수 있는 시대에도 그의 사진은 왜 여전히 특별할까요. 저는 그 차이가 스타일보다 ‘보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플래시를 쓰고, 채도를 높이고, 음식을 가까이 찍는 건 따라 할 수 있어요. 마틴 파가 50년 동안 해온 일은 사람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소비하고,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지를 끈질기게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Kotka, Finland, 1991 © Martin Parr/Magnum Photos

AI 시대에는 이 지점이 더 흥미롭게 다가와요. AI는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를 굉장히 매끄럽고 완결된 형태로 만들어냅니다. 마틴 파의 사진에는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이 계속 끼어들어요. 어색한 표정이나 몸짓, 우연히 화면에 들어온 사람, 조금 이상한 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죠.

 

지금은 그런 우연과 불완전함이 오히려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We Are Martin Parr〉의 ‘We’는 그런 의미도 있어요. 우리는 마틴 파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그가 평생 찍어온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사진집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출처: 서울시립사진미술관

― 전시에서 마틴 파의 사진집 90권도 소개했습니다. 그에게 사진집은 어떤 의미였나요?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도 추천해주세요.

마틴 파에게 사진집은 전시의 기록물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 형식에 가까워요. 어떤 사진을 고르고 어떤 순서로 배치하는지, 책의 크기와 디자인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사진을 찍는 것만큼 편집하고 배열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진가예요.

마틴은 생전에 170여 권의 사진집을 출판했는데, 그중 90권을 소개했습니다. 전시장에 소개된 사진집 중 몇 권을 추천한다면 초기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The Non-Conformists』를 추천하고 싶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한 컬러 사진 이전에 그가 영국 사회와 공동체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Common Sense』는 음식과 상품, 신체를 강렬한 색채와 클로즈업으로 보여줍니다. 흔히 생각하는 ‘마틴 파 스타일’을 가장 압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진집이에요. 사진집을 계속 보다 보면 마틴 파가 평생 새로운 세계만 찾아다닌 사진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같은 세계를 오래도록 다르게 바라본 사진가에 가깝습니다.

― 전시를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비하인드가 있을까요? 인상적인 관람객의 반응을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약 500점의 사진을 계속 들여다봤어요. 처음에는 유머러스하게 보였던 사진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어느 순간 쓸쓸함이 보이고, 냉정해 보이던 사진에서 묘한 애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관람객도 처음에는 사진을 보며 웃다가 어느 순간 자기 이야기와 연결해요. “나도 여행 가서 저렇게 사진 찍는데”, “우리 가족 같다”라는 반응이 나오죠. 저는 그 순간이 재미있어요.

마틴 파의 사진은 특정한 메시지를 정답처럼 제시하지 않습니다. 남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보게 만들어요. 전시장을 나설 때 마틴 파라는 사진가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보고, 소비하고, 즐기고, 자신을 이미지로 만들어왔는지를 조금 낯설게 바라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출처: 서울시립사진미술관

김지오 기자
취재협조 및 자료제공 서울시립사진미술관

프로젝트
〈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장소
서울시립사진미술
주소
서울시 도봉구 마들로13길 68
일자
2026.07.16 - 2026.10.18
링크
홈페이지
김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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