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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4

대구 여행, 사유원과 함께 가볼 만한 공간 5

대구의 자연과 도심을 모두 경험하고 싶다면?

낯선 곳으로 여행을 계획할 때면, 늘 비슷한 고민에 부딪힌다. 도시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자연으로 들어갈 것인가. 평생 서울에서 살아온 필자에게 도시 여행은 ‘익숙함 속 낯섦’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고, 산이나 바다로의 여정은 비일상적인 풍경을 마주하는 탐험처럼 느껴진다. 만약 깊고 순수한 자연과 로컬 문화가 응축된 도시의 매력을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면, 이번 여름엔 대구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세계적인 건축가와 조경가들이 참여해 거대한 사유의 장을 완성한 수목원 ‘사유원’부터, 지도에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숨은 공간, 그리고 요즘 핫플레이스가 모여드는 동인동까지. 1박 2일의 가볍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대구의 다채로운 얼굴을 담은 5곳의 공간을 소개한다.

사유원

© 사유원

대구 여정의 시작은 도시의 소음이 완벽히 차단된 군위의 깊은 숲, ‘사유원’에서 출발한다. 이곳은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다.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박하고도 웅장한 콘크리트 건축물과 승효상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공간들이 오랜 세월을 버텨온 모과나무, 소나무 숲과 경이로운 조화를 이룬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건축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밀도 높은 풍경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스마트폰을 내려둔 채 오롯이 걷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 사유원

승효상은 저서 『솔스케이프』에서 사유원을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특별한 삶을 잠시 경험하고, 다시 일상으로 나갈 힘을 얻는 곳”이자 “홀로 자신을 성찰하고 발견하는 장소”라고 설명한다. 사유원의 철학을 가장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포르투갈의 세계적인 거장 알바로 시자(Álvaro Siza)가 설계한 대표 건축물, ‘소요헌’과 ‘내심낙원’이다. 긴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소요헌은 빛과 어둠, 좁고 넓은 공간의 리듬을 통해 명상적인 경험을 유도하고, 내심낙원은 최소한의 빛과 흰 벽만으로 강렬한 침묵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 사유원

사유원은 자연 지형과 오래된 나무를 최대한 보존하며, 인공적인 조경보다 ‘시간이 축적된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사유원의 상징적인 정원 ‘풍설기천년’은 정영선 조경가와 박승진 조경 건축가가 함께 작업한 공간으로, 300년이 넘은 모과나무 108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걷다가 잠시 쉬어가고 싶다면,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티하우스 ‘가가빈빈’에 들러볼 것. 팔공산 비로봉 능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공간에서 차 한 잔과 함께 사유원의 풍경을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다.

 

방문 날짜를 정했다면 사전 예약은 필수다. 하루 입장 인원을 제한해 운영하며, 규모가 큰 데다 경사진 산길이 많아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의 추천 코스를 미리 살펴보고 동선을 계획해 두면 훨씬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전체를 경험하려면 최소 3~4시간 정도는 비워두길 권한다. 특히 해 질 무렵, 숲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니 가능하다면 오후 시간대에 맞춰 방문해 볼 것.

사유원 대구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76

문학서비스센터

© 문학서비스센터

중구 봉산동은 화랑과 고미술점, 고서적점, 화방이 밀집해 있어 ‘대구의 인사동’이라 불리는 동네다. 봉산문화거리 인근의 한적한 골목 안쪽에는 지도에 등록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이 숨어 있다. 서점 겸 카페 ‘문학서비스센터’다. 적벽돌 건물 1층에 붙은 작은 포스터를 따라 3층까지 올라가 나무문을 열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진다. 왼편의 본관과 오른편의 별관으로 나뉜 이곳은 도시인을 위한 은신처를 자처한다.

 

먼저 본관은 빼곡한 책장과 검은색의 대형 테이블, 아르테미데 톨로메오 조명의 차분한 빛으로 채워져 있다. 군더더기 없이 정갈한 인테리어는 마치 독서 그 자체를 위해 설계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잔잔한 음악 사이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펜 끝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조용히 겹치고, 그 고요함 덕분에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감각에 몰입하게 된다. 테이블마다 놓인 메모지와 볼펜도 인상적이다. 문득 떠오른 문장을 적거나, 책을 읽다 스친 생각을 기록할 때 요긴할 듯하다.

© 문학서비스센터

조금 더 밝고 편안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별관으로 향해보자. ‘일상미학’의 작품 전시와 아트 북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운영되며, 본관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머물며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다.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기에도 제격. 별관에는 몇 가지 작은 규칙이 있다. 대화는 조용히, 사진 촬영은 별관 내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배려 덕분에 모든 방문객이 평온하게 공간과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여행 중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거나, 생각에 잠기고 싶을 때 찾기 좋은 장소다.

문학서비스센터 대구 중구 봉산동 230-4

도어스 러닝

© 도어스 러닝

동인동은 동성로와 교동, 삼덕동과 맞닿아 있어 대구 도심 여행 동선에 함께 넣기 좋은 동네다. 최근에는 감각적인 편집숍과 카페, 레스토랑이 하나둘 모여들며 대구의 새로운 핫플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도보 5분 거리 안에 다양한 공간이 촘촘히 자리해, 취향에 맞는 장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크다. 오래된 주택과 상가 사이로 새로운 브랜드들이 스며든 풍경 역시 지금의 동인동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그 중심에는 대구 러닝 커뮤니티를 이끄는 ‘도어스 러닝’이 있다.

도어스 러닝은 기능성과 미감을 동시에 갖춘 동시대 인디펜던트 러닝 브랜드를 소개하는 동시에 빈티지 마라톤 티셔츠, 러닝 매거진 등을 큐레이션하며 러닝을 하나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해 보여준다. 오픈 이후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이자 트레일 러너 알렉스 조노와 함께한 첫 전시였다. 러닝 세션과 워크숍, 세미 러닝 리트릿 등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꾸준히 진행 중이다.

매장에는 새티스파이(Satisfy), 로아(Roa), 옵티미스틱 러너(Optimistic Runners)를 비롯해 쿠타 디스턴스 랩(Kuta Distance Lab), 멘탈 애슬래틱(Mental Athletic) 등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해외 러닝·하이킹 브랜드를 폭넓게 갖췄다. 러닝을 즐기는 사람은 물론, 최근 스포츠웨어 트렌드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들러볼 만하다.

도어스 러닝 대구 중구 동덕로36길 127

나이트웍스

© 나이트웍스

대구 패션 신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 ‘나이트웍스’. 오랜 시간 대구 로컬 사이에서 사랑받아 온 패션 편집숍이자, 도어스 러닝을 운영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도어스 러닝 건물 2층으로 올라서면 나이트웍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2017년 봉산동에서 시작한 나이트웍스는 동성로를 거쳐 지난해 12월 동인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랜드 초기엔 1980~90년대 빈티지 리바이스 데님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업사이클링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오래된 데님 특유의 질감은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실루엣과 디테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의 나이트웍스는 자체 리메이크 제품을 넘어 국내외 브랜드를 폭넓게 소개하는 편집숍의 성격까지 함께 갖추고 있다. 퍼플릭 포세션(Public Possession), 기마구아스(Gimaguas), 베이스레인지(Baserange) 등 동시대 패션 신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를 감각적으로 큐레이션해 선보인다. 

© 나이트웍스

공간 곳곳에 놓인 프리츠 한센의 세븐 체어와 닷 스툴 역시 인상적이다. 절제된 가구와 빈티지한 오브제가 어우러지며, 나이트웍스가 추구하는 미감을 공간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매장 한편의 수비니어 숍도 놓치지 말 것. 해외 독립 매거진과 디자인 북, 유니크한 오브제를 경험할 수 있다. 

나이트웍스 대구 중구 동덕로36길 127 2층

오이

© 오이

동인동 골목 안쪽,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조용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이’를 발견하게 된다. 오전 8시부터 문을 여는 이곳은 대구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내부는 높은 층고와 하늘색 톤의 오픈 키친, 빈티지 가구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북유럽의 작은 카페를 떠올리게 한다. 테이블 간격을 여유롭게 배치해 혼자 방문해도 편안하게 머물며 책을 읽거나 음료를 즐기기 좋다. 조용히 아침의 여유를 음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여행자에게도 적합한 공간이다.

© 오이

메뉴는 매일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음식들로 구성된다. 아보카도 베이컨 샌드위치와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후무스 샐러드, 양송이수프, 라구 파스타처럼 익숙한 메뉴가 중심이지만, 재료의 조합과 균형감이 좋아 한 끼 식사로의 만족도가 높다. 과하게 힘을 주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맛을 지향하는 점 역시 이곳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커피 또한 음식과 편안하게 어울리는 스타일로 준비되며, 오렌지 착즙 주스와 수박 슬러시, 살구 슬러시처럼 계절에 따라 바뀌는 시즌 음료를 곁들이면 한층 산뜻한 기분으로 즐길 수 있다.

 

주말 오전에는 오픈 직후부터 자리가 빠르게 차는 편이다. 보다 느긋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평일 아침 방문을 추천한다. 주변의 ‘보흔바’, ‘도어스 러닝’, ‘푸테카’와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동인동 로컬 숍 투어 코스로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다. 

오이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151길 22

푸테카

© 푸테카

오이에서 도보로 1분 남짓 걸으면, 동인동에서 가장 주목받는 카페 겸 젤라테리아 ‘푸테카’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해 4월 문을 연 이후, 오픈 직후부터 긴 대기 줄이 이어질 만큼 빠르게 입소문을 탄 공간이다. 보통 젤라테리아가 아이스크림 중심의 메뉴를 선보이는 것과 달리, 이곳은 커피와 디저트까지 폭넓게 갖췄다. 라즈베리 그라니따와 사브레 샌드, 초콜릿 타르트처럼 디저트 메뉴의 완성도도 높지만, 이곳의 진짜 매력은 계절감을 섬세하게 담아낸 젤라또에 있다. 특히, 스트라치아텔라 체리, 신비 복숭아, 캠벨 포도, 홍옥 사과처럼 제철 재료를 활용한 메뉴가 인기가 높다.

작은 규모의 공간이지만 머무는 재미 또한 충분하다. 내부에는 단 세 개의 테이블만 놓여 있지만, 벌 우드 벤치와 레드 컬러 테이블, 블랙 체어를 조합해 간결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절제된 공간 안에서 젤라또의 색감과 디저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잠시 앉아 디저트를 즐기기에도 좋고, 테이크아웃한 뒤 동인동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보기에도 잘 어울린다. 푸테카에 들렀다면 근처 빈티지 숍 ‘리리썬’도 함께 둘러보길 추천한다. 

길보경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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