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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

‘남의 집’으로 전시 보러 갑니다

새로운 트렌드 될까, 국내 홈 갤러리 3

주거 공간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15세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서재를 미술관의 기원으로 본다면, 오히려 그 출발점에 가깝다. 다만 특정 계층만 접근할 수 있는 사적인 컬렉션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홈 갤러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집을 하나의 대안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흐름은 1960년대 뉴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예술가들은 저렴한 임대료와 넓은 작업 공간을 찾아 소호로 모여들었고, 공장과 창고를 개조한 로프트는 생활과 작업,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는 장소가 됐다.

Chambres d'amis, Gent, 1986 Photo © Giorgio Colombo

1986년 벨기에 겐트에서 열린 〈Chambres d’Amis〉는 도시 주택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큐레이터 얀 후트는 작품을 미술관이 아닌 개인 주택 곳곳에 배치했고, 관람자는 도시를 이동하며 집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경험했다. 거실과 계단, 침실 등 일상의 공간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은 예술과 삶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전시의 전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주거 공간을 기반으로 한 전시는 각 도시의 조건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홈 갤러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며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었고, 작가나 큐레이터가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검열을 피해 작업과 전시를 이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서 집이 활용되기도 했다. 같은 형식이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실험의 장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생존의 방식으로 기능한 셈이다. 한편 뉴욕에서는 최근 홈 갤러리 문화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코로나 이후 물리적인 만남과 소규모 전시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높은 임대료 역시 상업 공간을 대신할 다른 방식을 요구했다.

홈 갤러리에서의 경험은 기존 전시와 분명히 다르다. 침실과 주방, 창문과 빛 사이에서 작품을 마주하다 보면, 그것을 특별한 대상이라기보다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전시장에 들어설 때 느끼던 긴장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 그 공간에 머무르며 천천히 바라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상적인 전시를 꾸준히 선보이는 홈 갤러리가 있다. 평소에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방문 전 예약은 필수다.

워키토키갤러리

1980년대에 지어진 주택에 자리한 워키토키갤러리는 디자이너의 사물을 다루는 디자인 갤러리다. 대표 임나리의 주거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전파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기기인 워키토키처럼 디자이너, 기획자, 소비자, 그리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유연하게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태도는 전시 방식에도 드러난다. 워키토키갤러리는 ‘디자이너 사물’을 중심에 두고, 이미지와 레퍼런스가 빠르게 소비되는 환경 속에서 참고와 모방의 경계를 짚는다. 사물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사고와 태도를 담은 매개로 바라보는 것이다.

2022년 개관 이후 논픽션 홈, 전산, 스튜디오씨오엠 등과 함께 전시를 이어온 워키토키갤러리는 올해 첫 전시로 건축사사무소 사사건건의 개인전 〈가구에게 일어난 일(Trans-Furniture)〉을 선보인다. 작가가 일상에서 사용하던 원본 가구를 전시장으로 옮긴 이번 전시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사물이 공간을 어떻게 ‘나의 집’으로 바꾸는지 되짚는다. 사적인 가구는 이곳에서 공적인 전시물로 전환되며, 익숙한 대상이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엑스라지갤러리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택가에 자리한 엑스라지갤러리는 미술 전문지 기자로 활동하다 갤러리 디렉터로 커리어를 전환한 김지석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작품을 소장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즐거움을 계기로, 서구에서 이어져 온 ‘홈 갤러리’ 개념을 한국의 주거 환경 안에서 풀어보고자 시작했다. 엑스라지갤러리가 중요하게 두는 기준은 작가와의 관계다. ‘남의 집’이라는 사적인 환경에서 전시가 이루어지는 만큼, 작업은 공간과 긴밀하게 맞물릴 수밖에 없다. 작품에 대한 논의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교류를 이어가며 신뢰를 쌓고, 이러한 관계의 밀도는 전시 전반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작년 봄 개관 이후 고근호, 이동현, 최산 등의 전시를 이어오며, 집이라는 환경이 작품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하는지 꾸준히 실험해왔다.

다가오는 4월 16일부터 5월 23일까지는 이병재 개인전 〈용도없음〉이 열린다. 이병재는 ‘신도시’, ‘미도파’ 등 공간을 운영해 온 동시에, 미술과 디자인을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로 활동하며 젊은 작가들이 처한 불안정한 현실과 그 안에서의 가능성을 다룬 작업을 선보여왔다.

하우스갤러리2303

하우스갤러리2303은 가족이 실제로 거주하는 아파트를 전시장으로 활용해 운영되는 홈 갤러리다. 2020년 첫 전시를 시작했으며, 아파트 23층 3호에서 출발한 공간의 맥락을 이름에 담았다. 낮은 층고와 충분하지 않은 조명, 주택이 아닌 평범한 아파트라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다. 세탁기 소리나 음식 냄새가 남아 있는 일상 속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경험은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주는 거리감을 낮추고, 보다 편안한 감상으로 이어진다.

하우스갤러리2303은 미술의 도착점이 결국 ‘집’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의 집을 찾아주는 전시를 표방한다. 사진과 회화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이어오며 작가의 작업을 일상의 맥락 속에서 소개해왔고, 최근에는 ‘월간하갤’ 프로젝트를 통해 한 달에 한 점의 작품을 제안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첫 번째 작가는 갤러리도스, 쉐마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이어온 이고운이다. 신작 시리즈 〈은방울 26-1〉, 〈은방울 26-2〉를 공개하며, 작품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선보인다.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위키토키갤러리, 엑스라지갤러리, 하우스갤러리2303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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