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8

벤츠의 DNA를 담은 랜드마크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를 대표하는 도시 슈투트가르트Stuttgart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곳이다. 영원한 프리마돈나 강수진 발레리나가 무려 30년간 멋진 공연을 선보인 곳도 현재 토트넘에서 대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가 20대 초반 레버쿠젠 소속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몇 차례 멋진 승부를 보여준 것도 바로 슈투트가르트다.
메르세데스-벤츠가 2006년 오픈한 슈투트가르트 운터투르크하임의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Eva Bloem ​

 

하지만 자동차 마니아들은 다른 의미에서 슈투트가르트가 각별한 것이다. 자타 공인 명품 카 브랜드로 꼽히는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와 포르쉐Porsche의 고향이 슈투트가르트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1926년에 포르쉐는 5년 뒤인 1931년에 이곳에서 탄생했다. 세계적인 두 자동차 브랜드를 품은 도시답게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와 포르쉐의 자동차 박물관을 한 번에 가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두 곳 중 단 한곳을 골라야 한다면 한치의 망설임 없이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을 추천한다.

 

인간의 게놈이 저장된 DNA처럼 이중 나선 구조를 닮은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Eva Bloem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이 있는 슈투트가르트 운터투르크하임Stuttgart-Untertürkheim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약 11만 톤의 육중한 건물로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우아한 디자인의 건물로 독특한 아우라를 뽐낸다. 인간의 게놈이 저장된 DNA처럼 이중 나선 구조를 닮은 건물의 디자인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건축 스튜디오인 유엔스튜디오UNStudio에서 담당했다. 2001년 설계 작업에 들어가 2006년에 완공된 메르세데스 벤츠 뮤지엄은 유엔스튜디오의 다양한 포트폴리오 중 최고 중 하나로 꼽힌다. 이로 인해 완공과 동시에 독일 내 다양한 건축상을 휩쓸기도 했다.

 

자동차의 주 소재인 알루미늄과 유리로 제작된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외관,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마치 축구 경기장이나 자동차 주행 코스 혹은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스나 오일 탱크를 연상시키는 뮤지엄 외관은 모두 알루미늄과 유리로 제작됐다. 자동차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인 알루미늄과 유리로 자동차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한 셈이다. 광택 처리된 알루미늄은 햇빛을 받으면 더욱 투명한 빛을 내뿜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소 어둡게 표현된 유리 창틀은 뮤지엄 내부에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에는 무려 1,800개의 삼각형 유리창이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닫힌 공간이나 직선 형태의 벽이 없는 유동적인 내부 구조를 보이는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Eva Bloem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유동성’에 있다. 건물 내에는 닫힌 공간이나 직선 형태의 벽이 없다. 거의 모든 벽, 천장, 경사로와 ​지지대가 아치형이거나 부드럽고 유동적인 방식으로 다른 부분과 연결이 되어 직선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작업을 위해 유엔스튜디오가 특별히 도입한 ‘트위스트twist’ 설계 구조 때문이다. 중간에 어떤 기둥의 도움 없이 약 30m가 넘는 전시 층을 지탱할 수 있는 트위스트는 건물의 핵심적인 하중 지지 구조 요소다. 또한, 트위스트의 상층부는 서로 교차하는 전시실의 평평한 공간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순환 구조의 경사로 역할도 하게 된다. 이런 설계로 인해 뮤지엄 건물 내부에는 수평과 수직의 경계가 무너져 공간 내의 역동성은 더욱 배가되었다.

 

잎이 3개인 삼엽형 식물 구조의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내부, 유엔스튜디오

 

또 다른 특징은 일반적인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트레포일trefoil’ (잎이 3개인 삼엽형 식물을 의미) 구조다. 1층부터 천장까지 건물 중앙을 비운 보이드void를 중심으로 3개의 원이 교차하며 마치 세잎클로버와 같은 모습을 띈다. 마치 식물의 줄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뮤지엄 내부 중앙의 보이드를 중심으로 연결된 세 개의 잎사귀와 같은 전시 공간은 나선형 구조로 연결되어 관람객이 전시 공간의 위와 아래, 혹은 가깝고 먼 곳에서도 뮤지엄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미학적 기능 외에도 화재 시 안전 기능까지 겸비한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내부의 보이드, Eva Bloem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의 보이드는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경험을 제공하는 미학적 기능만 갖춘 것이 아니다. 화재 발생 시, 이 뮤지엄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새로운 ‘토네이도’ 연기 제거 시스템을 통해 건물에서 연기가 추출된다. 연기는 오픈된 갤러리 공간에서 빈 공간으로 빨려 들어간 후 보이드 상단에 있는 144개의 공기 노즐을 통해 밖으로 보내진다. 연간 90만 명에 가까운 관람객 (2019년 기준) 을 맞는 뮤지엄의 위상에 맞는 안전한 설계가 더욱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전설적인 자동차를 감상할 수 있는 레전드 전시 공간,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메르세데스 벤츠 뮤지엄은 건물의 구조뿐 아니라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에서도 독보적이다. 미니어처 등을 포함 약 1,500대에 이르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전설적인 자동차 컬렉션을 통해 기술, 지성, 스타일을 가치로 추구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브랜드 가치를 세심하게 보여준다. 뮤지엄의 최고층인 8층에서부터 1층으로 나선형으로 내려오는 뮤지엄 컬렉션을 감상하면서 관람객들은 마치 도로를 주행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동차를 테마로 근현대 역사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레전드 전시 공간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상), Eva Bloem (하)

 

아울러 자동차의 발명부터 레이싱 카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와 메르세데스-벤츠의 주요 이정표를 기준으로 구분된 총 7개의 레전드 전시 공간에는 각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주요 이슈를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로 함께 제시, 자동차로 근현대 역사 여행을 떠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총 4개 관으로 구성된 컬렉션 공간은 여행, 화물, 구호 차량 및 유명 인사들의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낮은 조도의 레전드 전시실과 달리 채광을 극대화한 올 화이트 전시 공간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독특한 자동차와 슈투트가르트 인근 와인 밭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 화물, 구호 차량 및 유명 인사들의 자동차들이 전시된 컬렉션 공간,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각 시대를 상징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기념비적인 차량부터 리미티드 에디션 차량, 컨셉카까지 전설적인 자동차들을 둘러보다 보면 자동차 그 자체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뼈 속 깊은 열망의 산물임을 깊이 느껴볼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을 인간의 DNA의 이중 나선 형태로 설계한 유엔스튜디오는 자동차에 담긴 인간의 오랜 열망을 이미 간파했던 것이 아닐까.

 

메르세데스-벤츠의 컨셉카 'Concept IAA' (Intelligent Aerodynamic Automobile),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

 

 

김선영

자료 협조 메르세데스-벤츠, 유앤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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