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7

경험이 된 문구점, 오벌

서울의 문구점으로 12년 째.
서울의 문구점으로서 12년째. 오벌Oval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묘사는 어쩌면 이렇게 명료하다. 혹은 이것뿐이다. 어떤 브랜드를 소개해왔는지, 그중 무엇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지, 누가 이곳에 들르곤 하며 이곳이 얼마나 많은 경로로 소개되는지를 두고 가게 스스로는 말을 아끼는 탓이다.

‘포스탈코 Postalco*’와 ‘파피에 라보 Papier Labo.**’같이 오벌이 서울에 처음 소개한 디자인 스튜디오의 제품부터 저마다 다른 기억을 품은 세계 각지의 오래된 연필들이 함께 놓인 곳. 가게 안에 반짝이는 사인들을 두기 보다 무엇이든 직접 써 보고 느끼고 싶어 하는 이들의 서성임을 기다리는 가게. ‘큐레이션’이나 ‘셀렉트’란 단어를 넘어 하나의 총체적인 경험이 된 문구점 오벌 oval을 찾았다. 2008년부터 이곳과 더불어 동명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해 온 김수랑 디자이너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연신 쑥스럽다는 듯한 미소로 대답을 시작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디자이너이자 부부인 마이크 Mike Abelson, 유리 에이벨슨 Yuri Abelson이 시작해 현재는 도쿄를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숍. 가죽 소품과 지류 중심의 문구 제품이 잘 알려져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종이와 종이를 활용한 제품을 다루는 도쿄의 디자인 스튜디오. 역시 숍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08년에 전문 문구점을 만들었어요.

가게로 실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옛날 사람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카페나 가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카페라면 ‘비하인드’ 정도. (웃음)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잘 만들어진 문구를 사고 싶었는데, 그런 걸 파는 문구점도 달리 없었죠. 그래서 제가 하는 일과 관련이 있기도 한 문구를 가지고 디자이너 마인드로 가게를 꾸리면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패션 분야라면 그런 멀티숍이 많은데 문구는 왜 없을까, 희소성이 있겠다 생각하기도 했고요. 문구가 어떤 도구인 동시에 장식의 기능도 지닌 하나의 소품이라는 점도 좋았네요. 점점 잊히고 있는 물건인 문구라면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오벌은 어떤 물건 혹은 브랜드를 들이나요.

아주 대중적인 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순히 말해 깔끔하고 써보면 디테일이 있는 물건들을 만드는 브랜드들이에요.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충성도가 있는.

 

 

그중 어떤 제품들은 요즈음 다른 곳에서 만나볼 수 있기도 하지요.

원래 처음에 의도했던 건 한국에서 수입하지 않는 브랜드들로 전체적인 컬렉션을 보여드리자란 거였는데요. 아무래도 어떤 제품이 눈에 띄면 다른 가게에서도 금방 볼 수 있게 되는 상황이기는 하죠. 그래서 연필 빈티지를 많이 들였어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온라인 숍을 병행하지 않는, 전적으로 오프라인을 택한 가게예요. 2012년에 한 번 이사해 자리 잡은 이곳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온실 구조로 잘 알려져 있지요. 물건들 만큼이나 공간이 눈에 들어와요.

처음 여기로 올 당시 옥탑 공간을 직접 온실로 고치고 들어왔어요. 지금은 온실 콘셉트의 공간도 꽤 많아졌지만요. (웃음) 저희 스튜디오가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아트 디렉팅을 하고 있어서, 그런 부분이 반영된 것 같아요. 꼭 이런 결의 공간을 컨설팅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공간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도의 메시지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숍에 물건을 놓을 때 생각하는 디스플레이의 기준이 있을까요.

일로서 컨설팅해드리는 공간에라면 그런 기준이 있지만 저희 가게에서라면… 딱히 없어요. 이곳은 저희 색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봐주시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디스플레이를 할 때도 그냥, 한번 놓아 보는 거예요. 학생 때 시험 공부하면 책상 정리부터 하잖아요. 사실 거기에 무슨 기조같은 건 없죠. (웃음) 크게 복잡할 것 없이, 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주체가 그대로 보이는 결과물이에요. 생각해 보면 가격표도 없고, 불친절하긴 해요.

그래서 그런지 이 가게에선 길을 잃기가 쉬워요. 도드라져 있거나 반대로 묻혀 있는 제품이 없죠. (웃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길을 잃으시면 좋겠어요. SNS에 올린 제품을 보고 오셔서 그것만 바로 구매하고 나가시는 게 아쉽거든요. 아무리 오래 계셔도 상관없고, 계속 보시면서 좋은 제품을 찾아나가시길 바라요. 어떤 물건에 대해 물어보시면 제가 바로 안내해 드릴 테니까요. 무슨 동굴같은 곳에 가서 보물 찾기를 하듯이 둘러보셨으면 해요.

 

 

어떤 가게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세요.

솔직히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는 야망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어떤 걸 만들겠다라든지. 치기 어린 마음에서요. 지금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요. 공간 자체가 캐릭터를 가지면 좋겠고요. 또 저보다는 공간이 먼저 보이면 좋겠고. 앞으로 몇 년이 더 흘러도 오벌은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아직 안 없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찾을 수 있는 가게가 되길 바라요. 어쨌든 힘 닿는 데까지는 운영할 생각이라서요. 서울에도 몇십 년 된 문구점 있어, 라면서 소개할 수 있는 그런 가게 하나쯤 있으면 좋잖아요.

 

 

글, 사진 유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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