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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1

<2023바다미술제>를 위한 그래픽 디자인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
홀수 해 10월이면 부산의 바다는 분주하다. 바다와 해수욕장을 무대로 하는 <바다미술제>가 열리기 때문. 올해에도 어김없이 <2023 바다미술제>가 찾아온다. 오는 10월 14일부터 11월 19일까지 37일간의 여정을 앞두고 있다. 행사는 재작년에 이어서 기장 일광해수욕장과 일대를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전시를 이끌 감독은 그리스 출신의 큐레이터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Irini Papadimitriou)'. 그녀는 예술과 디자인, 기술을 통해 바다와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며 국내외 30여 명의 작가들과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를 3개월 앞둔 시점. 바다미술제의 방향성을 반영한 디자인이 공개됐다. 흥미로운 건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최동녁 디자이너와 전시 감독이 함께 디자인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환경을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가 해석한 바다미술제의 주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최동녁 디자이너로부터 디자인 개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with 최동녘 디자이너 (누록)

부산 기장 일광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 전경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2023바다미술제>의 메인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지난 2월 부산비엔날레조직위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올해 10월에 개최하는 <2023바다미술제>의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rini Papadimitriou) 전시감독님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역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전시 안에 지역을 녹여내기 위해서 말이죠. 이번 전시 주제는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Flickering Shore, Sea Imaginaries)’인데요. 감독님께서 이를 시각화하는데 그간 제가 추구해온 작업 방향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시곤 먼저 협업 제안을 주셨어요.

메인 디자인

그간 부산의 대표 예술 행사로 손꼽히는 <부산비엔날레>와 <바다미술제>를 접하면서 한편에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요. 행사를 위한 비주얼 디자인을 주로 수도권의 디자인 스튜디오에만 맡기는 게 바로 그거였죠. 이러한 현상을 보며 과거에 친구와 ‘부산에서의 행사는 부산 디자이너가 한 번 해보자!’, ‘부산 탈환!’ 등을 외치며 포부를 다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2023바다미술제> 디자인 개발에 참여하게 되어 무척 감격스럽더라고요. 물론 동시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생겼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에게도 좋은 기회들이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전시 감독으로 선정된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 (사진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 전시 감독과 함께 협업해 메인 디자인을 개발했다고 들었어요. 사실 이 부분이 쉽게 이해가 되진 않았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제가 합류했을 때는 전시의 기본 기획 방향이 정해져 있었고요. 세부사항을 디벨롭 하는 단계였어요.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전시의 주제, 참여하는 작가들의 작품 세계 등 전시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전시 감독님뿐만 아니라 조직위 전시팀 직원분들과 여러 차례 미팅을 가졌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바다와 해안, 미래에 대한 긍정적 상상이 나타내는 색감을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시안 작업에 돌입했어요. 시안이 나온 이후에는 감독님과 디자인 안을 보면서 떠오르는 느낌과 이미지를 공유했고, 세분화된 부분들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기본형 엠블럼 디자인 및 디자이너 최동녁에게 영감을 준 이미지 래퍼런스

본격적으로 디자인 이야기를 한 번 해보죠. 격자 패턴을 활용한 심볼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바다미술제인 만큼 바다 풍경 중 ‘윤슬’과 ‘파도’를 형상했다고요.

 

바다를 어렵지 않게 찾아가 오랜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건 부산 시민이 지닌 특권일 텐데요. 물결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찬란한 빛을 뽐내는 윤슬이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동시에 그 빛으로 인해 물결이 위태롭게 끊어지고 깨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규칙적이지 않은 빛, 이따금 연결되고 끊어지는 바다의 물결. 이로부터 이진법 신호의 구성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이를 격자 패턴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형태의 반복이나 이미지의 중첩, 네거티브 스페이스(negative space)는 시각적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해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반복과 변주로 불안하지만 서로 연결된 바다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한편 윤슬과 대비되는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힘을 표현하기 위해 크고 거센 파도의 이미지도 참고했습니다.

응용형 엠블럼

심볼과 문자 그리고 패턴의 방향과 간격에는 디자이너의 어떤 의도를 반영했나요?

 

백그라운드에 은은하게 깔린 기하학 패턴들과 푸른 문양이 만들어 내는 층위는 메인 전시 장소가 될 바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문자들 사이의 간격과 층위에는 문자 배열만으로도 일렁이는 파도를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의도했고요. 서로 단절되면서도 연결되고 얽히도록 배치해 보는 사람들이 시선이 흘러가는 대로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 상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디자인 시작 과정에서부터 가장 큰 고민은 ‘파도’라는 단어였는데요. 특히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라는 전시 주제와 제목을 고려할 때 ‘파도’는 모두가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요소이자 동시에 모두가 사용하기 꺼려 하는 것이라 이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지가 걱정이었요. 결과적으로는 역동적으로 솟은 파고의 형상으로 힘 있는 파도의 모습을, 선명한 색감을 통해서는 긍정적 미래를 발견한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디자인에 적용한 'Sandoll 독수리' 서체

디자인에 적용한 한글과 영문 서체는 어떤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아울러 혹시 다른 서체 후보군도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물론 다양한 서체를 두고서 비교하며 고민했습니다. 그중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한글 서체 후보로는 산돌의 ‘독수리’, ‘크랙’, ‘개화’ 등이 있었고요. 영문 서체로는 ‘Bely display’를 후보에 뒀었어요. 바다미술제가 다양한 연령층과 국적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인 만큼 남녀노소 모두가 명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높은 가독성을 지닌 서체를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연약한 바다의 상반된 느낌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서체를 고민했고, 최종적으로 메인 디자인에는 ‘Sandoll 독수리’체를 적용했습니다.

디자인에 적용한 컬러 시스템

메인 디자인에 적용한 컬러 시스템도 궁금해요. 특히 키 컬러key color를 선정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앞서 말씀하신 대로 바다를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파란색이 떠오르잖아요. 이처럼 관습적인 사고가 반영된 디자인의 고루함과 지루함은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신기하게도 ‘바다를 포함하는 전시나 행사에서 푸른색을 적용한 디자인이 교과서처럼 보이거나 지루하진 않을까?’라는 고민을 할 틈도 없이 감독님께서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심해의 바다를 디자인 단계에서 고민하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어요. 컬러 선택에 있어서도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는데요. 키 컬러로 ‘울트라 마린 블루’ 계열의 색상을 사용했어요. 흰색, 회색, 금색은 보조 색상으로 활용해 바다의 강인함과 연약함을 조화롭게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색상의 조합을 통해 바다의 강인함, 우아함, 그리고 연약함을 담을 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바다의 역동적인 면을 강조해 거룩하고 신성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응용형 엠블럼 디자인 모습

엠블럼이 기본형과 응용형으로 구분되어 있던데. 두 가지 형식으로 나눈 이유가 있을까요?

 

엠블럼은 이번 전시를 위해 개발될 모든 디자인에 포함됩니다. 디자인적 통일감을 가지면서 전시 제목과 주제, 기간과 같은 정보를 노출하고자 개발된 항목이에요. 홍보물, 도록 등 제작물부터 아카이브 자료와 프로그램 자료까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유연하게 어우림을 부여하기 위해 기본형과 응용형을 구분해 제작했습니다.

응용형 엠블럼은 심볼과 문자 배치를 다채롭게 적용했다. 파도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연상시키는 점이 특징이다.

기본형은 다양한 매체에 범용적으로 사용될 예정이고요. 작은 크기로 표기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바다미술제’가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도록 최대한 심플하게 제작했습니다. 반면 응용형에는 문자 외에도 파도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형상화한 모형을 가미해 전시 주제와 메시지를 담고자 했습니다.

다가올 <2023바다미술제>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에 메인 디자인이 활용될 텐데요. 기본형과 응용형이 구분되어 있듯이 매체별로 마련한 기준도 있는지 궁금하네요.

 

매체별로 이용자들의 소비 형태가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이용자 연령층이 낮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짧은 온라인 매체에는 밝은 색감과 시원한 물결의 모형을 강조한 비주얼이 시선을 끌기 좋겠죠. 반면, 옥외 홍보물이나 광고물 등 오프라인에서는 정확한 정보 전달이 요구되기에 높은 가독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프로젝트
<2023 바다미술제>
장소
일광해수욕장 일대
일자
2023.10.14 - 2023.11.19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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