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with 스튜디오 웬
김원영, 배민경 대표
시계가 아닌 시간 보는 방법을 디자인하는 스튜디오 웬의 탄생 배경이 궁금합니다.
시계를 단순 제품이 아닌, ‘시간을 전달하는 매체’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기존 시계의 구성 요소가 관습적이라고 느껴졌어요. 시계의 주 기능인 ‘시각을 확인하는 기능’은 핸드폰이 대신한지 오래잖아요. 납작한 원판, 동일한 간격으로 재단한 열두 개의 눈금과 숫자, 규격화된 시침과 분침 등 시계를 이루는 요소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아도 된다는 지점을 발견했죠. 이러한 관습을 탈피하고자 시계의 외형 디자인이 아닌, ‘시간을 보는 방법’을 디자인하는 걸 브랜드 철학으로 삼았고, ‘타임피스 프로젝트’를 실천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스튜디오 웬의 첫 시작을 기억하세요? 두 사람이 함께 스튜디오를 차린 계기가 궁금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는데 디자인 워크숍에 참석해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것이 첫 만남이지 않을까 싶네요. 침대에 누워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서 이야기하던 중에 문득 대부분의 벽 시계가 너무 동그랗기만 하다고 생각해 ‘동그랗지 않은 시계’를 찾아 나섰어요. 몇 시간에 걸쳐 ‘이런 시계가 있으면 어떨까?’, ‘타임 디자이너(time designer)라는 직업은 왜 없을까?’ 등 서로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으며 스무 가지가 넘는 종류의 ‘이상한 시계’를 구상한 게 첫 시작이에요. 졸업 이후 ‘그때 이야기했던 이상한 시계들, 한 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라며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지금까지 함께 타임피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입니다.
처음 시작은 관습처럼 고정되어 온 시계의 외형에서 시작했는데 오늘날 스튜디오 웬이 지향하는 건 ‘시계 디자인이 아닌 시간을 보는 방법을 디자인한다’라는 것이잖아요. 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계’보다는 ‘시간’을 디자인해 보고 싶었어요. 기존 시계들에도 다양한 소재와 색상, 외형의 차이가 존재했지만 결국 시간을 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기 때문인데요. ‘시계 디자인’이 아닌, ‘시간을 보는 방법’에 대한 디자인으로 접근 방법을 달리하니 시계의 외형도 자연스럽게 독창적인 형태로 도출되었고 재미있는 ‘타임피스(timepiece)’들이 탄생하였습니다.
말씀처럼 스튜디오 웬에서 소개하고 전개하는 제품을 ‘타임피스’라고 부르는데. 스튜디오 웬이 정의하는 타임피스는 무엇인가요?
통상적으로 해외에서 ‘timepiece’는 ‘시계’라는 의미를 지녔는데요. 저희는 ‘time(시간)이 담긴 piece(조각)’으로 그 의미를 풀어봤어요. 절대적인 측량 단위로서의 시간이 아닌 시간이 가질 수 있는 다층적인 의미를 담는 작업을 하다 보니 ‘Clock’과 ‘Watch’라는 카테고리 바깥의 시계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죠. ‘시간을 담는 매체’를 제안하는 웬(when)의 작업이 단순히 시계 이상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grid’부터 ‘50000 clock projects’까지. 2020년도부터 꾸준히 시간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는 중입니다. 그중에서도 초기작 ‘grid’(2020)와 ‘d.frost’(2020)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시계의 모형을 기반으로 하는데요. 어떤 고민 과정을 거쳐 나온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grid'(2020)는 웬(when)의 첫 번째 ‘타임피스 프로젝트’입니다. 일반적인 시계 구성 요소 중에서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시분침을 벗어나 보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어요. 수직과 수평으로 왕복 운동하는 시분침을 구상했는데요. 직교하는 두 선분의 교차점은 현재 시간을 나타내요. 그에 따라 4분 면으로 나뉘는 면적을 보면서 하루 동안 지나온 시간과 남은 시간비를 직감할 수 있도록 제작했습니다.
‘d.frost'(2020)는 시곗바늘이 없는 대신 우측으로 기울어진 간유리(frosted glass) 아래로 시계판이 회전하는 작품이에요. 현재의 시간은 간유리와 맞닿아 있어 선명한 상으로 맺히지만 반면에 지나간 과거의 시간과 다가올 미래의 시간은 간유리 표면으로부터 멀어져 흐릿해지죠. 현재에 집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손목시계입니다.
앞서 두 작품은 시계의 기존 모형을 유지하면서 다르게 시간을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반면, ‘o’collection’(이하 오콜렉션)부터는 독특한 시계 모양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데요. 실험적인 디자인과 조형미가 인상적이에요. 초기 작품들과 결이 달라진 느낌이랄까요. 오브제의 성격이 더 짙어졌는데 이러한 변화에는 어떤 계기가 있을까요?
부피와 질량 등 형태의 제약이 큰 손목시계보다는 벽과 탁상시계의 형태를 구상할 때 조금 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오콜렉션이 그 첫 시도였는데요. 2차원 도형의 시계판과 그 위로 납작하게 누워있는 시분침을 손으로 잡고 원뿔형이 될 때까지 위로 늘리는 상상을 구현했어요.
구현 과정에서 소재별로 디테일이 다른 세 가지 디자인을 도출했어요. 일반적인 납작한 시계판이 아닌 입면체의 타임피스이기에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시간을 바라볼 수 있는 점이 특징이죠.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벽에 걸면 벽 시계로, 평면 위에 놓으면 탁상시계 혹은 아트 오브제로 기능해 여러 가지 정체성을 넘나들 수 있어요.
최근까지 ‘오만 시계 프로젝트’를 통해 수공예 시계 제품을 선보이는 중입니다. 5만 개의 각기 다른 디자인을 선보이는 프로젝트인데 그 수가 만만치 않아요. 5만 개를 고집한 이유가 있을까요?
오만 시계 프로젝트는 ‘세상에 없는 오만가지 시계를 만들어 보자’라는 농담에서 출발했어요. 중의어이다보니 ‘오만 가지를 오만 개’ 만들자고 웃으며 이야기했는데 최근에 계산해 보니 지금과 같은 속도로 50,000개를 만들려면 앞으로 600년이 걸리더라고요. (웃음) 이제 막 27번째 오만 시계를 제작했는데요, 100번째, 1000번째, 10,000번째 오만 시계를 만들 때까지 계속해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만 시계 프로젝트 내의 작품마다 제목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요. 시선을 끄는 제목을 붙이는 비법이 있을까요?
작품마다 제목이 다른 것처럼 이름을 붙이는 과정도 제각각 다르죠. 기획 초기 단계에서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nn번’으로 소통하다가 무브먼트가 내장된 베이스, 즉 몸통과 돌아가는 시침 간에 조형적 관계성을 고려한 초기 디자인이 어느 정도 확정되면 그때부터 형태에서 연상되는 단어를 붙여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해요. 마치 동네 고양이들을 ‘반양말’이나 ‘하얀 넥타이’ 등으로 부르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단순한 특징을 지칭하는 별명이 그대로 작품명으로 이어지곤 하죠. 예컨대 잔 위에 체리가 떠있는 것 같은 ‘cocktail clock’이 그래요. 제작 단계에서 ‘칵테일 시계’라고 별명 삼아 부르던 것이 공식 작품명이 된 케이스에요.
반대로 형태가 도출되기 전부터 작품명을 먼저 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제작 시에 시계 외형 디자인보다 시간과 관련된 스토리텔링의 비중이 높은 ‘오만 시계’가 그렇죠. 예컨대 시침이 12시 정각을 가리킬 때, 12가 아닌 ‘3’과 ‘5’를 읽을 수 있어서 ‘12의 3(3 at 12 clock)’ 그리고 ‘12의 5(5 at 12 clock)’이라고 부르죠.
‘오만 시계 프로젝트’에서 소개하는 시간 디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구현한 시계의 제작 과정도 궁금합니다.
우리는 주로 ‘시간이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이 널널하다’라고 표현하며 시간을 양을 표현하는 수식어와 함께 이야기하곤 하죠. 많고 적다는 표현보다 시간의 앞뒤로 더 다채로운 형용사와 이야기가 붙을 수 있도록 시간에 관한 의미를 확장시키고자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의 의미와 상관없이 그저 ‘시계’라는 매체가 이런 형태를 가질 수는 없을까? 라는 질문과 도전을 담아 ‘세상에 없는 오만 가지’ 형태를 찾는 것에 집중하기도 해요.
작업 중 ‘무브먼트의 집’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요. 위, 아래, 앞, 뒤 구분 짓지 않고 무브먼트의 집을 만들기 위한 조형적 실험을 하면서 사용자가 시계를 놓을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게 해요. 아이폰 메모장에 손가락으로 삐죽삐죽 그린 도안으로부터 굉장히 정교한 구조의 시계가 나오기도 하고요. 3D 모델링으로 복잡한 구조를 설계했지만 오히려 외부에서 단순한 형태로 보이도록 꽁꽁 감추기도 하죠. 이렇게 기획 단계를 거친 ‘오만 시계’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형태로 제작하기 위해 3D 프린트를 사용. 뼈대를 출력하고 수 겹의 후가공을 덧씌워 제작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치화된 시간 대신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며 사용자에게 새로운 시간 체험 경험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평소 디자인의 영감은 어디로부터 얻는지도 궁금합니다.
비정형의 형태, 우연으로 만들어진 텍스처로부터 매력을 느껴요. 이태원 보광동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래로 옛 건물의 녹슬고 거친, 그리고 세월을 머금고 바래진 표면에서 영감을 얻고 있어요. 최근에는 출근길 마주하는 지하철역사의 타일 패턴과 의자에서 매력을 느끼는데요. ‘망원 시계’, ‘을지로 2호선 시계’ 등 <오만 시계:지하철 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해 사진으로 아카이빙 중입니다.
시간을 디자인하는 타임 디자이너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네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 있다면요?
시간을 느낄 수 없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요즘에는 요가와 풋살 하는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 웬의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단순하게는 ‘오만 시계’를 50,000가지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바라보고 진행 중인데요. 스튜디오 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 아티스트 그룹과 협업으로 ‘오만 시계 프로젝트’가 저희 것만이 아닐 수 있는 프로젝트의 플랫폼화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자신에게 의미 있는 특정 시간을 물성화 해 맞춤형 오만 시계를 만들어드리는 ‘오더 메이드’ 서비스도 기획 중이에요.
글 이정훈 기자
자료 제공 스튜디오 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