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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차 프로-스펙스가 브랜드북 만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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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펙스는 1981년에 태어났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산업과 문화가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던 시기다.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프로-스펙스의 모태는 ‘왕자표 고무신’으로 1960년대부터 뛰어난 신발 제조 기술력으로 국내 신발 산업을 이끌던 기반을 갖췄다. 프로-스펙스는 이후 수입 스포츠 브랜드의 강세에도 40여 년간 국산 스포츠 브랜드의 자리를 지켰다. 운동 선수들과 스포츠를 지원했고, 프로 선수들에게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고자 연구를 거듭하며 기능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어왔다.
프로-스펙스가 2023년 3월, 선보인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는 브랜드가 걸어온 역사를 되짚고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추진력을 찾기 위해 기획되었다. 모든 브랜드에게 ‘헤리티지’란 중요한 요소지만 어떤 시각으로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방향은 달라진다. 프로-스펙스 역시 다져온 역사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브랜드 북은 총 두 권으로 구성되어 각각 글과 이미지로 프로-스펙스의 브랜드 스토리를 다룬다. 빨간 로고 고무 밴드로 묶인 커다란 브랜드북 세트 패키지의 첫인상은 ‘신선함’이다. 텍스트북은 전문가 좌담, 프로-스펙스 현황 리뷰, 역사 및 전문 필진의 글을 수록했으며 40여 년 브랜드 역사를 함께한 인물과 협력사의 인터뷰를 실어 생동감을 전한다. 시원시원한 크기가 인상적인 이미지북은 프로-스펙스의 이미지 아카이브 자료들을 담고 있다.
브랜드북을 만든 프로-스펙스의 프로젝트 총괄 구은성 담당과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 아넥스 김그린 기획자, mykc 김기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프로-스펙스 마케팅·상품 담당 구은성 (브랜드북 프로젝트 총괄)
—지난 2월,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을 선보였습니다. 여러 매체가 있는데 책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프로-스펙스라는 브랜드에 몸담고 있는 동안, 안팎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적이 있었어요.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보여야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죠. 브랜드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고, 우리 스스로에게 또 사람들에게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프로-스펙스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브랜드에 대해 공부 할수록, 우리가 갖고 있는 뿌리와 근간에 대해 스스로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또 자산의 가치를 깨닫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하는 마음이 커졌어요. 방대하고 진중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책 이라는 형태의 결과물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랜드북을 준비하면서 브랜드의 근간을 다지고, 그 근간을 토대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정립하고, 그렇게 나아가기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을 모색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브랜드북을 출간하기 전이였다면 머뭇거렸을 이 질문을 이제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랜드북에서 박세진 칼럼니스트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란, 오래되었다고 저절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 브랜드의 방향과 시대의 흐름이 함께할 때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프로-스펙스에서도 이 지점이 고민이실 것 같은데요. 지금 브랜드가 불러내고자 하는 헤리티지의 핵심과 앞으로의 방향은 무엇인가요?
‘전문적인 규격(Professional Specification)’에서 비롯된 ‘프로-스펙스(PRO-SPECS)’라는 브랜드명은 우리에게 명확한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해줍니다. 과거에 프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만들었던 상품과 펼쳤던 활동들이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여기까지 끌고 왔어요. 스포츠는 다양한 종목만큼 여러 방면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통용되는 스포츠 언어와 문화부터 타 스포츠 브랜드들이 각각 지향하는 스포츠 정신까지, 굉장히 광범위한 세계에요. 그 안에서 프로-스펙스가 추구해온 스포츠 정신이 있다고 느껴요. 그 특유의 정신이 지금 시대와도 충분히 맞닿아있고요.
프로-스펙스는 예전부터 엘리트 선수들을 후원할 뿐만 아니라, 학교 운동장마다 농구 골대를 설치하는 등 우리 삶의 많은 영역에서 스포츠 활동에 대한 지지를 해왔어요. 1등, 승리, 강인함을 우선적으로 열망하는 스포츠 정신이 있는가 하면 운동이라는 행위, 움직임에 대한 모든 것, 모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정신도 있어요. 후자가 프로-스펙스 특유의 스포츠 헤리티지라고 믿어요. 최근에 열렸던 WBC에 출전하는 우리 국가대표 팀의 가슴에 프로-스펙스 로고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원도의 어느 리조트에서 제공되는 배드민턴 라켓에도 같은 로고가 그려져 있습니다. 프로-스펙스는 앞으로도 ‘전문적인 규격’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제공하며, ‘모두를 위한 스포츠’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거예요.
—내부에서는 2021년 7월부터 12월까지 ‘헤리티지 기초조사’를 진행하셨다고요. 브랜드북 역시 이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을까요? 또 수집한 자료를 추후 어떻게 활용할지도 궁금합니다.
외부 아키비스트를 통하여 보다 전문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것이 2021년 7월부터고, 그전에 내부에서 모으기 시작한 것까지 생각하면 1년 가까이 수집하기만 했어요. 온·오프라인의 중고 거래를 통한 과거의 제품들(예전에 후원했던 구단의 유니폼, 경화되어 다 떨어져 나가는 신발, 이제는 단종된 아웃도어 라인의 캠핑 텐트 등)을 사 모았고, 본사 영업팀을 통해 오랜 기간 함께 해주신 매장 점주님들께서는 90년대 사용했던 쇼핑백과 사은품으로 나갔던 수건 등을 전해주셨으며, 이미 철수한 90년대 매장 간판도 건물주 분의 허락 하에 떼어올 수 있었고, 이전 국제상사 시절 몸담으셨던 과거 임직원분들의 인터뷰를 통한 당시의 기획이나 업무 방식, 사내 분위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과거 문헌과 사진자료 등 브랜드와 관련된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았습니다.
막무가내로 수집만 하다가 외부 아키비스트까지 찾게 되었고, 이후 더욱 전문적인 방법으로 찾고, 검증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반복했어요. 그렇게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모인 것이 헤리티지 기초조사 였고, 모인 자료들을 활용한 첫번째 결과물이 브랜드북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주요한 과거 행적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현재의 활동들을 꾸준히 기록하며 프로-스펙스만의 아카이브를 쌓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로 ‘프로-스펙스 아카이브’(가칭)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브랜드북을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책을 구성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연대순으로 구성할지, 주제별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각각 대조 될 수 있도록 배치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많았어요. 책을 준비하는 과정이 깊어질수록, 과거를 재조명하며 그 안에서 중요성을 찾을수록, 우리가 담아야 할 내용은 절대 과거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현재만을 이야기하기에도 부족하고, 반드시 ‘앞으로’에 대한 의지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브랜드북은 최종적으로 어떤 이를 타겟으로 만들었나요?
프로-스펙스에 몸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하고, 최종적으로는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애정해줄 ‘모두’를 타겟합니다. 브랜드에 몸 담을 때면 여러 가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타사 동향과 최신 트렌드, 매출 등 현혹되고 흔들릴 여지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우리의 중심을 바로 잡아줄 지침서이자 가이드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펼치는 활동들이 어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는지 여러분들이 조금이나마 이해해주시길 바라는 욕심도 담겨있습니다.
사진: 긱쿠리어 (GIG Courier)
—긱쿠리어(GiG Courier)와 함께한 브랜드북 자전거 배송 서비스도 재미있었습니다. 브랜드북을 자전거로 배송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브랜드북의 기획을 맡아주신 외부 파트너 ‘아넥스’ 측의 아이디어입니다. 브랜드북 출간을 기념으로 전시를 할까, 팝업을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긱쿠리어 라는 서비스를 제안해주셨어요. 휘발되고 소모되는 성격의 팝업은 이 책의 의미와는 맞지 않고, 브랜드에서 중점을 두는 ‘움직임’의 가치를 책의 배송 방식에 입힌 아주 기발하고 컨셉츄얼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했어요. 멋진 마인드를 갖고 계신 멋진 분들과의 협업이였어서 개인적으로 즐겁기도 했지만, 결과물로 봤을 때 책만큼이나 성공적인 이벤트였다고 자랑하고 싶어요.
—프로-스펙스는 한국 토종 브랜드로 입지를 굳혀오기도 했는데요. 한국 패션 브랜드로서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작은 나라가 세계 라는 무대에서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 근성을 믿어요. 그 근성이 프로-스펙스 유전자에도 분명히 깃들어있다고 생각하고요.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 특유의 예민함으로,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찾아내고, 개발하고, 반영하며, 기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이 우리의 근성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프로-스펙스의 뿌리와 행보가 궁금하시다면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을 추천 드립니다.
Interview with 아넥스 김그린 대표
—기업이나 브랜드에서 브랜딩 활동을 위한 브랜드북을 만드는 프로젝트들은 이전에도 있어왔는데요. 이번 브랜드북을 만들 때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프로-스펙스는 여러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과 스포츠 후원 사업, 캠페인 광고 등 최근 다방면으로 펼쳐온 마케팅 활동들을 장기적으로 뒷받침할 브랜드 자산을 구축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저희는 브랜드북을 만드는 과정을 브랜드 스스로가 현황을 점검하고 방향성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구성해보자는 제안을 했고, 프로-스펙스는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향후 활동을 위한 브랜드 메시지를 도출하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브랜드북은 프로-스펙스의 지난 역사를 돌아볼 뿐 아니라 여러 필진의 인터뷰, 실제 근무했던 인물들의 증언으로 입체적인 윤곽을 그려갑니다.
광고 이미지, 인물 구술채록, 제품 등 프로-스펙스의 자료들을 열람하다 보니, 단지 특정 브랜드에 국한된 것이 아닌 한국의 산업과 문화에 대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 흐름에 빗대어 자료를 보니 과거의 행보가 더욱 설득력 있고 이해가 되었죠. 브랜드북은 소재의 특성상 독자층을 넓게 갖기 어려울 수 있는데, 저희는 한국 역사의 흐름 안에 프로-스펙스의 이야기를 위치시켜서 우리가 왜 이 브랜드에 대해 알아야 하는 지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어요. 그리고 한국의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신발산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전문가(김도균 스포츠마케팅 전문가,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부산경제진흥원 신발산업진흥센터)를 섭외했습니다.
브랜드북에는 프로-스펙스에서 근무했던 혹은 하고있는 인물들과 타 브랜드의 기획자 및 운영자도 등장하여 프로-스펙스에 전하는 쓴 조언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기획 초기에 저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서면 인터뷰하며 근무자들의 브랜드에 대한 인식과 니즈를 파악한 것입니다. 그리고 답변을 토대로 외부 전문가를 선정하고, 의뢰할 글의 방향을 정하거나, 토크 등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 브랜드의 강점에 대해 어필해야 하는 브랜드북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내용일텐데, 되려 프로-스펙스의 실질적인 고민과 따끔한 충고가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이후의 활동을 위한 선언이자 지침서로 역할합니다’ 라고 책 소개글에 주문처럼 적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여과 없이 담아 출간하기로 했어요.
—브랜드북을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프로-스펙스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었어요. 저마다 프로-스펙스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씀하시며, ‘잘됐으면 좋겠네요’라는 말을 꼭 붙이셨는데요. 프로-스펙스에 “잘됐으면 좋겠어”라는 캠페인이 있었는데,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무쪼록 이렇게 개개인의 스토리와 브랜드가 연결될 수 있는 것이 오랜 시간을 이어온 브랜드가 가진 힘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역전하고자 하는 프로-스펙스에게는 참 어려운 숙제겠다라는 생각이 앞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더욱 과거에 치중되지 않도록 콘텐츠와 디자인을 기획했습니다.
—긱쿠리어와 함께한 브랜드북 자전거 배송 서비스도 재미있었습니다. 프로-스펙스팀에서 아넥스의 재치있는 아이디어였다고 말씀 주셨는데요.
긱쿠리어는 서울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자전거 메신저 서비스인데, 메신저 중 한 분이 을지로 작업실에서 자전거를 조립해서 판매하기도 해요. 저와 아넥스를 함께 운영하는 차정욱씨가 개인 자전거를 구매하며 맺은 인연으로 알게 된 곳이에요. 프로-스펙스 브랜드북의 출간을 어떻게 알릴 것인지 고민하면서 일시적으로 터트려야 하는 팝업 보다는 책을 잘 읽어주실 분들께 정성스럽게 전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긱쿠리어가 떠올랐고, 메신저들의 에너지가 이 책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브랜드북을 만들면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브랜드에 관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많은 에너지가 쓰여요. 수익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기존 브랜드 활동과는 달리 이벤트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사건이면서, 브랜드의 지난 활동을 압축하면서도 향후 방향성을 알리는 등 한 권의 책이 맡아야 하는 역할이 다양하고 막중하기 때문이지요. 지난 일 년간 이 책을 준비하며 저희는 프로-스펙스와 브랜드 전반에 대해 가깝게 소통하며 브랜드의 장기 플랜과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일맥상통하도록 발 맞추는 작업을 했습니다. 책이 출간된 이후가 더욱 중요할텐데요. 브랜드가 이어나갈 활동을 관심있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시간이 지나고 봤을 때 이 역시도 우리의 문화사, 산업사의 또 하나의 자료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 목격자가 될 거고요. (웃음)
Interview with mykc 김기문 대표
—mykc는 평소 다양한 브랜드 프로젝트들을 작업하고 계시는데요. 이번 프로젝트는 ‘헤리티지를 다루는 브랜드북’이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스펙스 브랜드북은 헤리티지를 주요한 내용으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프로-스펙스는 어떠한 브랜드며, ‘앞으로’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도 담아내야 하는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디자인적 고민은 결국 책을 봤을 때 어떠한 인상을 줄 것인가 였습니다. 타 스포츠 브랜드처럼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쳐야 할까? 아니면 레트로한 인상의 책일까?꽤나 긴 논의 끝에 지금까지 프로-스펙스가 거쳐온 과정, 지금의 고민, 앞으로의 방향성 등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텍스트로 담아내자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완성된 무언가를 뽐내기보다 과정 중인 브랜드를 보여주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분권형 box set(텍스트북, 이미지북 분권형 세트)이라는 형식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화려하고 드러내기에 좋은 이미지, 과거의 영광을 텍스트와 함께 조화롭게 배치하는 것도 물론 취할 수 있는 옵션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텍스트에 집중한 책(텍스트북)을 통해 프로-스펙스가 생각하는 ‘스포츠’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스포츠를 매개로 무엇을 해 왔고,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과정과 속내를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조형적으로도 억지로 꾸미기 보다는 주어진 텍스트를 소화하는 차원에서 일종의 논문 같은 책의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번 브랜드북은 텍스트북, 이미지북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에 각각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에서 분리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 디자인을 계속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프로-스펙스가 지닌 헤리티지라 함은 단순히 긴 역사성에 있기 보다는, 어떤 ‘순간들의 총합’에 깃들어져 있는게 아닐까 했지요. 그러한 순간과 찰나를 모아서 본다면 각자 나름의 인상과 기억을 갖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큰 판형의 이미지로요. 이는 어쩌면 우리가 브랜드를 인지하고 기억하는 방식과 흡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브랜드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기에 앞서 단편적인 인상과 느낌이 먼저 자리잡게 되면서 그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처럼요.
—책을 받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길 바랬나요?
우선 독자들이 책을 보기 위해 많이 움직였으면 했습니다. 박스를 받고 열어서 고무밴드를 풀고, 책 한 권을 읽고, 또 다른 책을 읽고 다시 박스에 넣는 과정은 아무래도 단 권의 책보다는 더 움직일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상호 이질적인 성격의 텍스트북과 이미지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가 패키지 구성이 아닐까 합니다. 억지로 합치기 보다 서로 다른 판형, 제본방식, 질감 등을 더 극대화하면서 이 모든 내용이 결국은 프로-스펙스라는 브랜드가 지닌 콘텐츠임을 모아 주는 것, 그 매개체가 붉은 고무밴드라 생각했습니다.
-텍스트북의 경우, 책등을 덮지 않고 접착면을 드러냈는데 여기에 제호를 인쇄해 디자인적인 면으로 부각시킨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래도 스포츠와 움직임이라는 이슈를 다루는 책이다 보니 자연스레 ‘신체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신체성은 책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도 물리적 부분의 명칭을 ‘책등, 배, 머리’와 같이 신체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마치 번호나 팀명칭을 등에 달고 있는 것처럼 책등에 제호를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지북은 판형을 크게 해서 눈이 시원한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책 중간마다 들어가 있는 삽지는 다큐멘터리에서 코멘트가 툭툭 나오는 것을 상상하면서 넣은 것입니다.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 아카이브이기에 하나하나 들여다 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 없이 빠르고 가볍게 보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브랜드북을 제작하시면서 특별히 신경쓰셨던 부분이 있다면?
앞서 말씀드린 ‘인상’에 대한 부분인데요. 우리 머릿속에 프로-스펙스는 과거에 알던 국내 스포츠 브랜드, 혹은 심볼은 봤지만 전혀 몰랐던 미지의 브랜드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늘날의 프로-스펙스는 어떠한 모양이며, 존재인지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이 브랜드북을 통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영광에 있지 않고, ‘대한민국’과 ‘국가대표’라는 큰 이야기를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개개인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금의’ 브랜드. 이 부분이 책의 내용과 그 만듦새로 전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 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전세계에서 몰려오는 지금, 잠시만 프로-스펙스라는 존재에 눈과 귀를 기울여 보신다면 브랜드의 단순 자기 자랑이 아닌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한 존재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로-스펙스 브랜드북 <우리의 레이스는 끝나지 않았다> (Our Race is Not Over)
기획 프로-스펙스, 아넥스
글 김도균, 김신, 박세진, 정인천 등
사진 장수인
사진 제공 프로-스펙스, 국가기록원, 디자인하우스
인터뷰 참여 부산경제진흥원 신발산업진흥센터, 오동희, 하용호, 이근상, 프로-스펙스(R&D 센터, 마케팅/제품개발부)
인터뷰 진행 문한아, 오상희, 허영은
교정 전남희
디자인 MYKC
인쇄 투데이아트
발행 아넥스
글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프로-스펙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