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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8

실체를 알 수 없는 미래 사건들

남화연 개인전 <가브리엘>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남화연 작가의 개인전 <가브리엘>이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1월 18일부터 오는 2023년 1월 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개인전은 지난 10년간 몰두해 온 무용가 최승희 아카이브 작업을 끝낸 후 새롭게 제작한 영상 및 설치 신작 4점을 선보인다.
가브리엘, 2022, 단채널 비디오, 6 채널 사운드, 20 분 04 초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남화연 개인전 전시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남화연 개인전 전시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전시 제목. 동명의 영상 작품 제목이기도 한 ‘가브리엘’은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천사의 이름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가브리엘은 주로 다가올 전쟁이나 탄생을 전하는 일을 알려왔는데, 그중에서도 작가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장면 ‘수태고지’와 이를 그림으로 기록한 르네상스 시기 회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 시점에서 아직까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미래 사건을 예고 받을 때의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작가는 20분 길이의 영상 작업 ‘가브리엘'(2022)에서 보여준다. 

남화연 개인전 전시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전시장 가장 안쪽에 자리한 ‘가브리엘’(2022)은 스크린 속 영상과 주변을 구성하는 설치물이 혼합된 작업이다. 주름진 검은색 커튼 뒤로 설치된 금속 기둥 구조물은 영상 속 등장하는 타원형 스타디움의 기둥과 상응하며, 기둥과 기둥 사이로 흐르는 바람 소리를 통해 비밀스러운 신탁의 음성을 연출했다. 작가는 스크린 위로 보티첼리, 로베르 캉팽,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화가들이 상상하여 그려낸 수태고지 그림의 일부분을 가져왔다.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부터 성령의 빛줄기, 바닥에 떨어진 진주 목걸이, 촛불의 연기, 천사의 날개까지 푸티지 이미지로 화면에 조각조각 노출시켰다.

 

한편, 스크린 위로는 가브리엘 혹은 수태고지와 연관 없어 보이는 장면들도 대거 등장한다. 작가는 화성의 고대 환경과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탐사 로버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가 카메라로 목격한 장면을 영상에 함께 혼합했다. 인간과 생명체의 존재론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에서 발현된 것으로 현시대 인간에게 도래할 알 수 없는 미지의 시공간으로 화성의 이미지를 활용했다. 

새로운 사원, 2022, 유토, 천, 금박지, 가변크기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창문-꿈, 2022, 백동판에 부식액, 39 x 50 cm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가브리엘’(2022) 영상 작업과 함께 같은 공간에 놓인 ‘새로운 사원’(2022)은 유토로 빚은 작은 조각 작업의 모음이다. 마치 고고학 발굴 현장을 재현한 모습이다. 최첨단 항공 매핑 기술 ‘라이다(LIDAR)’를 통해 기록에서 사라진 마야 문명의 잔해를 과테말라 밀림에서 발견한 소식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소멸한 줄 알았던 과거의 흔적을 상기시키는 과정이 꼭 낯선 전령을 전하는 가브리엘의 모습과도 닮았다. 

 

부식된 백동판의 모습을 그린 드로잉 작업 ‘창문-꿈’(2022)은 다시금 수태고지와 가깝게 이어진다. 수태고지를 다룬 회화 속에서 등장하는 창문은 인간과 신을 연결시켜주는 일종의 통로로 기능한다. 작가는 바로 이 창문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한다. 과거 창문이 텔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통로를 상징한 것처럼 오늘날에는 컴퓨터 창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라고 불리는 우주 혹은 외계로부터 전달되는 메시지를 모니터에서 접할 수 있는 모습에서 일상 속 모니터가 과거의 창문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고 작가는 말한다. 

코다, 2022, 알루미늄 파이프, 황동 파이프, 에어블로어, 에어컴프레서, 진동모터, 튜브, 레코더 마우스피스, 플루트, 호른, 트럼펫, 가변크기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코다, 2022, 알루미늄 파이프, 황동 파이프, 에어블로어, 에어컴프레서, 진동모터, 튜브, 레코더 마우스피스, 플루트, 호른, 트럼펫, 가변크기 사진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

전시의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설치 작품 ‘코다’(2023) 금속 파이프 악기를 해체하여 재조합 한 작품이다. 코다는 이탈리아어로 ‘꼬리’를 뜻하며, 실내악에서는 소나타 형식에서 종결부를 의미한다. 코다는 주제 선율을 반복하고, 변주하거나, 혹은 확장하는 방식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앞서 영상 설치 작업 ‘가브리엘’을 구성하는 금속 기둥에서 바람 소리가 나듯이 ‘코다’(2023)에서도 알 수 없는 리듬의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관객과의 거리에 따라서 숨결과 바람이 섞여 소리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공기의 흐름과 반복 그리고 관객의 동선과 숨결 등 가변적인 외부 환경을 통한 변주로 고유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 낸다. 미처 알지 못하는 미래,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래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응시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고요하지만 호전적인 성격을 지닌다. 남화연 작가가 빚은 독특한 조형미와 리듬감 그리고 예측 불허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번 전시를 놓치지 말자.

heyPOP 편집부

자료 제공 아뜰리에 에르메스

프로젝트
<가브리엘>
장소
아뜰리에 에르메스
주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일자
2022.11.18 - 2023.01.29
참여작가
남화연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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