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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6

작품에 완벽한 몰입감 선사하는 특별한 전시 디자인

유럽의 예배당, 일본의 정원을 옮겨 놓은 듯한 전시
폴란드 크라쿠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엔아키텍투라(NArchitekTURA)는 작품에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특별한 두 개의 전시회 디자인을 선보였다. 바로 란스코론스키(Lanckoroński) 컬렉션의 걸작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와 크라쿠프의 국립 박물관(Muzeum Narodowe w Krakowie)에서 열린 일본 화가 호쿠사이(Hokusai)의 작품 전시다.
© Anna Stankiewicz, Dariusz Błażewski
© Anna Stankiewicz, Dariusz Błażewski

엔아키텍투라(NArchitekTURA)는 크라쿠프 출신의 건축가 바르토시 하두흐(Bartosz Haduch)가 이끌고 있는 디자인 및 연구 그룹이다. 그는 건축가로써 엔아키텍투라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저널리스트, 교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그는 책을 수집하거나 발행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재능을 지닌 그가 이끌고 있는 스튜디오는 도시, 조경, 인테리어, 그래픽과 같은 산업 디자인에서 저널리즘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다수의 작업을 진행해왔다. 설립자인 바르토시 하두흐를 비롯하여 우카쉬 마리안스키(Łukasz Marjański), 미하우 하두흐(Michał Haduch), 미하우 사페타(Michał Sapeta)가 주축이 되어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으며, 특수한 성격을 띈 프로젝트의 경우 엔지니어, 기술자, 사회학자, 생물학자, 예술가 또는 패션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가와 협력하고 있다.

스튜디오의 이름인 엔아키텍투라는 자연과 건축이라는 두 단어의 결합을 통해 탄생했다. 이들에게 있어 자연과 건축의 상생은 자연으로부터 얻은 재료들을 건축으로 통합하는 작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생태학, 리사이클링, 계절적 변화, 빛과 시간 등의 측면이 인간에 삶의 미치는 영향은 이 그룹이 연구하고 있는 주요 이슈들이다. 작업에 대한 영감은 직관 또는 과학, 과거의 역사 또는 미래학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얻고 있는데, 때로는 반대되는 영역을 통해 영감을 얻기도 한다.

© Anna Stankiewicz, Dariusz Błażewski

이처럼 다양한 영역을 자유롭게 연결하고, 유연한 사고를 하며 이를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엔아키텍투라는 르네상스 회화 전시를 위해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마치 예배당을 연상시키는 이 인테리어는 란스코론스키(Lanckoroński) 컬렉션의 걸작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를 위해 디자인되었다. 폴란드의 수도인 크라쿠프의 유서 깊은 올드타운이 내려다보이는 바벨 성 1층에 마련된 이 전시 공간에는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바르톨로마이오스 브루인 엘더(Bartholomaeus Bruyn Elder), 바렌드 그라트(Barend Graat)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엔아키텍투라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접목된 바벨 대성당의 레이아웃을 참조했으며 여기에 현대적인 형태, 기술, 재료를 결합하여 디자인을 완성했다. 건축가 하두흐는 “전시를 위한 새로운 건축은 모던하지만 성스러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놀랍게도 전시 공간은 다양한 방이 연속되어 있는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었죠. 이 새로운 ‘예배당’은 방문 경로를 통해 들어왔을 때 기존의 내부 공간과 독립된 자율적인 공간을 형성합니다. 또한 바벨 성 안에서 다양한 스타일과 건축 형태를 레이어링 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죠.”라고 전시 디자인에 대해 덧붙여 설명했다.

© Anna Stankiewicz, Dariusz Błażewski

특히, 부드럽게 구부러진 구리 소재의 벽과 이를 감싸고 있는 기하학적인 난간이 눈에 띈다. 건축가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영국 국립 미술관, 채플힐의 애클랜드 미술관에서 전시를 위해 가져온 명화들이 걸려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이 구리 벽의 인상적인 형태는 독일에서 활동한 르네상스 화가였던 바르톨로마이오스 브루인 엘더의 작품인 ‘Portrait of a Girl’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오목한 그 형태는 중앙에 걸려있는 파올로 우첼로의 작품 ‘Saint George and the Dragon’에서 묘사된 동굴의 신비한 내부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마치 물이 흐르듯 구부러진 형태는 관객이 각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 관람할 수 있게 한다. 전시회의 차분한 색상은 바렌드 그라트의 ‘Company in a Garden’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다.

© Jakub Certowicz

또한, 엔아키텍투라는 크라쿠프의 국립 박물관(Muzeum Narodowe w Krakowie)에서 일본 화가 호쿠사이(Hokusai)의 작품 전시를 위한 디자인을 선보인 바 있다. 전시회에는 일본 에도 시대의 우키요에 화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의 독특한 목판화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마치 일본의 정갈한 정원처럼 꾸며진 전시 공간은 호쿠사이의 목판화, 일본 전통문화, 일본 문학과 미학 등의 다양한 모티브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다. 건축가는 예술, 건축, 자연의 융합을 추구했으며 현대적 표현 수단을 통해 전통적인 모티브들을 재해석했다.

전시회의 배치는 일본의 유서 깊은 사찰, 궁, 정원, 가옥들을 떠오르게 한다. 배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개별 전시 공간에 맞게 꾸며진 네 개의 정원이다. 일본식 석정 ‘가레산스이(karesansui)’는 반성, 사색, 고요함을 제공한다. 이 정원들은 미술관 내부에 자연을 도입하려는 시도이며, 연관된 작품에 대한 더욱 폭넓은 해석을 허용한다. 각 룸에 전시된 작품들을 간접적으로 참고하여 정원을 구성하는 돌들의 형태, 색상, 질감이 선택되었고, 첫 번째 룸과 마지막 룸의 정원은 특별히 선택된 돌들로 채워져 있다. 건축가는 교토에 있는 몇 개의 사찰들에서 이와 같은 악센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 Jakub Certowicz
© Jakub Certowicz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낮은 벽은 공간을 분리할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위한 동선을 형성하여 다음 작품들이 있는 공간으로 안내한다. 각진 형태의 전시회 공간은 은색과 금색 바니시(Varnish)로 칠해진 대각선 벽으로 나누어져 있다. 건축가는 금, 은 도금과 아연을 다루는 ‘후키 보카시(fuki bokashi)’, ‘마키에(maki-e)’, ‘히시부키(hishibuki)’와 같은 일본 미술 및 건축에 사용되는 색상을 참조하여 차분하고 모던한 금속성 색조 팔레트를 적용했다. 7개의 독립적인 좁은 벽들은 전체 레이아웃의 규칙성을 무너뜨리고, 대칭적인 배열을 틀어지게 만든다. 건축가는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 붓글씨의 붓놀림 또는 목판의 커팅과의 유사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 Jakub Certowicz
© Jakub Certowicz
© Jakub Certowicz

벽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공간 디자인의 색상 및 재료 선택 또한 호쿠사이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건축가는 더욱 세부적인 요소들을 특정 작품에 맞게 개별적으로 설계했다. 호쿠사이의 가장 유명한 두 작품인 ‘the great wave off kanagawa'(1831)와 ‘fine wind, clear morning'(1830-1832)이 있는 벽은 특별히 선별된 돌들 위에 올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 정원을 형성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한편, <One Hundred Ghost Tales> 시리즈의 ‘The Dish Mansion’은 구멍이 뚫린 난간을 만드는 데 영감을 주었다. ‘Ghosts and apparitions’이라는 주제가 있는 룸에는 작품들이 청록색 유리 조각으로 채워진 정원 위에 놓여있다. 폭포를 표현한 중앙 룸 하나를 제외하고 모든 룸은 검은색으로 칠해져있다. 폭포와 다리를 그린 작품이 있는 이 공간에는 호쿠사이의 작품에서 가져온 새틴 네이비블루 색상이 칠해졌다.

이처럼 엔아키텍투라는 전시의 콘셉트 및 화가와 작품들의 특징에서 영감을 받아 더욱 실감 나는 전시를 위한 특색 있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들의 공간 디자인은 전시된 작품들을 돋보이게 만들며, 관객들에게 넓은 스펙트럼으로 열린 감상을 할 수 있는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새미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NArchitekT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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