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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기이한 꿈

달리부터 마그리트까지, <초현실주의 거장들>展.
거울을 바라보는 한 남자. 하지만 거울 속에는 남자의 얼굴이 아니라 뒷모습이 비친다. 그렇다면 남자가 바라보고 있던 게 거울이 맞을까? 어쩌면 거울 속의 남자는 동일 인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거울 안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1937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수많은 상상을 이끌어내는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이다. 이처럼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그려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예술의 전통적인 관점에 반기를 들었다.

 

폴 델보, 붉은 도시, 1944 © Foundation Paul Delvaux, Sint-Idesbald - SABAM Belgium / SACK 2021

 

세상에 위기가 닥치면 모든 게 변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삶이 달라졌듯이, 20세기 초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사회가 붕괴되었다. 유럽 강국의 자만심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진 것을 경험한 예술가들은 전과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초현실주의는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태동했다.

 

1924년, 앙드레 브로통은 프랑스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며 초현실주의의 시작을 알렸다.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은 앙드레 브로통의 이 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6가지 키워드 아래, 초현실주의의 탄생부터 발전과 확산까지 살펴본다.

 

<초현실주의 거장들>이 초현실주의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시 작품을 소장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특징 때문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본 전시에서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들 –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등의 회화와 입체작품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전시 작품 대부분이 우리가 미술 교과서에서 봤었던 초현실주의와 각 작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초현실주의를 직접 보고 느끼기에 좋은 기회다.

 

마르셀 뒤샹, 여행 가방 속 상자, 1952 © Association Marcel Duchamp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전시는 초현실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부터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현실에 안주하는 사회를 거부한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예술의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다다이즘의 정신은 초현실주의로 이어졌다. 전시에는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작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도 진열되어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을 작은 크기로 만들어 하나의 가방에 담은 <여행 가방 속 상자(1952)>는 뒤샹의 명작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실제로 뒤샹은 이 가방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보여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건을 파는 영업사원 같았다고 한다.

 

살바도르 달리,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1936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다다이즘을 넘어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에 초점을 맞췄다. 프로이트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욕망의 세계를 밝히고 그를 솔직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그림은 환상적이지만, 어떨 때는 악몽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 예로, 환각에 시달렸던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의 환각을 그림으로 실체화했다. 그는 자신의 편집증에 기초하여 새로운 기술법을 만들었는데, 이 방법을 통해 그린 이미지들은 끝없는 해석을 이끌어냈다. 가까이서 보면 사람이었던 것들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얼굴이 되는 등, 착시 효과도 종종 활용했다.

 

에일린 아거, 앉아있는 사람, 1956, Photo ©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초현실주의자들은 전과 다른 예술을 발견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술법을 개발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무의식 속으로 빠져 의식의 흐름대로 그리는 ‘자동기술법(오토마티즘)’이다. 이를 통해 탄생한 작품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했다. <초현실주의 거장들>에서는 자동기술법을 통해 그려진 20세기 초반 작품은 물론, 현재까지 이 기법으로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만 레이, 복원된 비너스, 1936(1971) © manage RAY TRUST/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성적인 욕망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다뤘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억압된 성적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나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신, 묘하게 비틀어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게 작업했다. 본 전시에서는 관능적이고 기이한 분위기의 사진, 조각, 잡지, 특별 출판물을 통해 초현실주의 특유의 에로티시즘을 느낄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 붉은 모델 III, 1937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는 평범한 것도 낯설게 만드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능력을 볼 수 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일상의 오브제들을 하나로 모으고, 흔히 알고 있던 현상을 뒤집음으로써 초현실주의자들은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 섹션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 많이 걸려있다. 거울 속의 비친 남성의 모습을 기괴하게 그린 <금지된 재현(1952)>, 아름다운 풍경 위에 상관없는 오브제들을 나열한 <일러스트 젊음(1937)>, 창밖으로 여러 장면이 보이는 방 안에 대포가 설치된 <자유의 문턱에서(1930)>는 재현된 이미지에 대한 르네 마그리트의 질문과 탐구를 엿볼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 그려진 젊음, 1937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꿈같다. 하지만 이 꿈은 결코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어떤 작품에서는 공포와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사람마다 아름다움과 기이함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현실주의는 보는 즐거움이 있다. 거장들이 창조한 기이한 아름다움 중에서 나와 맞는 걸 찾아내고 그것만 집중적으로 즐겨도 상관없을 것이다. 이처럼 ‘주체(관람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린 건 초현실주의가 현대미술에서 이뤄낸 큰 성과다.

 

 

허영은

자료 협조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예술의전당, ㈜컬쳐앤아이리더스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2406)
일자
2021.11.27 - 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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