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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6

성북구의 화백이 작별하며 남긴 것

서세옥 <화가의 사람, 사람들> 展.
서울 성북동 언덕에 자리한 무송재(撫松齋).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라는 이름을 공연히 붙이지 않은 듯, 정원엔 수백 년 전 태어난 소나무가 자라고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진다. 이 집의 주인이 산정 서세옥이다.
무송재. 사진 제공: 성북구립미술관

 

전통 수묵 기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 한국화의 지평을 넓힌 작가는 오랫동안 성북을 흠모했다. 1973년 마침내 성북동에 집을 지은 서세옥은 그 안에서 <사람들>, <춤추는 사람들> 등 걸작을 빚어낸다. 성북은 그에게 자체로 영감을 주는 땅이자, 동료 예술가와 교류하는 터전이었다. 지난해 11월 서세옥이 세상을 떠났다. 거장이 성북을 아끼는 마음과 그곳에서 일군 것을 가까이에서 본 이들은, 서세옥이 만들고 모아 온 것을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한다. 서세옥 전작은 물론 추사 김정희, 오원 장승업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포함하는 컬렉션은 3300여 점에 이른다.

 

무송재. 사진 제공: 성북구립미술관

“대학교 1, 2학년 때 미대가 연건동에 있을 때 하숙을 하시면서 성북동에서 자취를 하셨던 것 같은데,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언젠가는 성북동에 꼭 집을 가지고 싶다고 원을 세우셨대요. 그래서 나중에 70년대 초에 우리가 여기에 이사 오게 된 거죠. 본인이 원하셨던 것은 낙락장송 소나무들이 있는 정원에서 집을 꾸리고 그다음에 작품을 만드는, 그러면서 정원을 거닐면서 사색을 하고…. 조선 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그대로 하고 싶은 것이 아버님의 원이셨고 그래서 아버님이랑 성북동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성북구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한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거였고요. (…) 어떤 의미이냐 하면 아버님이 평소에 어떤 작가의 작품들을 흠모했고 바라봐 왔느냐, 그게 이제 본인의 작품으로 탄생되기까지 어떤 자양분이 분명히 됐을 것이고요.”

– 故 서세옥 작가의 큰아들, 서도호 작가 인터뷰 중에서(전시 영상 발췌)

 

산정 서세옥 〈사람들〉 1989, 닥종이에 수묵, 162x129cm

 

방대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기획된 첫 전시가 <화가의 사람, 사람들> 전이다. 서세옥의 사람, 사람들이라는 의미일 텐데, 여기서 ‘사람’은 두 가지 의미를 품는다. 우선 서세옥에게 영향을 준 예술가들이다. 서세옥은 추사 김정희와 오원 장승업을 우러렀고, 성북동을 중심으로 영운 김용진, 소정 변관식, 수화 김환기 등 여러 작가와 우정을 나눴다. 두 번째는 서세옥의 대표 작업 ‘인간’ 시리즈를 일컫는다. 작가는 ‘가장 귀한 존재는 사람’이라는 철학을 평생에 걸쳐 풀었다. 이는 사람이 느끼는 희로애락부터 사람 사이 관계, 인류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확장하고 깊이를 더해 갔다.

 

영운 김용진 〈장미〉 1960년대 초, 한지에 수묵담채, 33.5x44.5cm

 

“우리는 항상 어떤 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작은 것에 집착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생명 그 자체는 작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착을 합니다. 그 집착에서 초월하면서 훌쩍 뛰어 거닐면서 그 대상을 해부를 합니다. 아름다운 창작으로 바꿔지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초월하는 정신을 가지고, 눈으로 바라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대상이면 그 대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초월하는, 훌쩍 뛰어서 넘어가서 자기의 인생관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붓끝을 통해서 함축해서 표현하는 것. 이것이 초월의 경지인데 이 초월의 경지를 밟고 나서야 비로소 그 화가는 아득하고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작가다.”

2014년 11월 서세옥 작가 인터뷰 중에서(전시 영상 발췌)

 

소정 변관식 〈산수도(선면도)〉 연도 미상, 한지에 수묵담채, 21.5x51.5cm

 

이번 전시에서는 서세옥 주요 작품, 미공개 작품을 비롯해 그에게 영감을 준 작가 작품 등 총 25점이 소개된다. 성북이 서세옥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짚는 한편, 한국 근현대미술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헤아려 볼 기회다. 12월 5일까지.

 

“크게 두 가지 정도, 의미를 생각해 볼 수가 있어요. 첫 번째로는 그 한 예술가가 평생 작업해 온 대부분의 작품들, 전작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의 양이죠. 컬렉션이 한곳으로 모였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 의미는 그 예술가가 살았던 그 지역, 평생을 창작의 터전으로 삼았던 그 지역의 작품들이 오롯이 온전히 다 귀속되었다는 것. 이 두 가지 모두 정말 큰 의미고 전무후무한 사례예요.”

–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인터뷰 중에서(전시 영상 발췌)

 

산정 서세옥 〈동네〉 1978, 한지에 수묵, 66x68.5cm

 

Interview with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를 어떻게 구성했나.

전시가 시작하는 2층은 서세옥 작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 작가, 혹은 직접 교류했던 성북 지역 작가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서세옥 컬렉션에 포함된 추사 김정희의 서간문을 비롯해 영운 김용진, 근원 김용준 소전 손재형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서세옥 작가의 구상 작품을 함께 전시해 다른 작가와 어떻게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가늠하도록 했다. 3층에는 서세옥 작가의 수묵추상 대작과 더불어 총 6점을 전시한다. 전시를 위해 준비한 인터뷰 영상 역시 주목할 만하다. 2019년 촬영한 작가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가 최초 공개되는데, 작업관과 그의 근원적 사상과 의지를 살필 기회가 될 것이다. 작가 유족과 제자, 주요 관계자 인터뷰를 함께 담아 화가이자 컬렉터, 교육자, 시인이었던 서세옥 작가의 여러 면모를 훑게 했다.

 

전시장 2층 내부
전시장 3층 내부

 

전시관을 계획하며 더욱 신경 쓴 부분은.

추사 김정희, 오원 장승업을 비롯해 영운 김용진, 소정 변관식, 소전 손재형 등 한국 전통 문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구성했다. 더불어 서세옥의 구술 기록, 작가 어록 등을 함께 배치해 그와 다른 예술가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전시장 곳곳에 쓰인 작가 어록 ⓒ designpress

 

특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을 추천한다면.

김용진의 <매화>, <국화> 등 이번 전시로 처음 대중을 만나는 작품이 많으니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변관식이 그린 산수 <산수도(선면도)>와 손재형의 글씨 <화의통선>(1958) 등의 작품에는 해당 작가가 서세옥에게 작품을 선물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당시 작가간 교류 및 영향 관계를 짐작할 수 있기에 의미가 크다.

 

영운 김용진 〈매화〉 1948, 한지에 수묵담채, 138x34.5cm

 

서세옥 작가는 성북구를 깊이 아꼈다. 그가 성북구를 그토록 사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성북 지역은 물 맑고 산세가 빼어나 예로부터 국내 문화예술계 인사에게 사랑받았다. 특히 성북동은 겸재 정선, 오원 장승업, 수화 김환기, 만해 한용운, 작곡가 윤이상 등 수많은 거장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한 곳으로, 구석구석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세옥 작가 역시 민족성과 예술적 정취가 가득한 성북을 귀하게 여겨 60년 이상 거주했다. 이곳을 거친 여러 예술가와 교감하며 창작 세계를 넓혀 나갔으며, 제자를 주변으로 불러들여 한국 현대 화단을 이끄는 동인을 만들기도 했다.

 

작가는 성북구립미술관 명예 관장이기도 하다.

서세옥 작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한편 예술가의 업적을 발굴하고 기리는 일에 열정적이었다. 이와 관련한 기획 전시 개최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작가는 미술사 외적으로도 성북 지역 곳곳을 살피는 사람이었다. 1978년 동료 작가와 함께 ‘성북장학회’를 조직해 타계 전까지 꾸준히 성북 지역의 어려운 학생을 지원했다. 지역은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전시장 3층 ⓒ designpress

 

이번 컬렉션의 의미를 잇는 프로젝트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계획을 들려 달라.

서세옥 컬렉션에는 중국 명·청 시대뿐 아니라 19세기 상해화파 등 중국 미술과 한국 미술 관계 연구에 중요한 작가 작품이 포함됐다. 한국 작가 작품은 시대별로 다채롭게 구성되어 전통적 문인화부터 현대 화단까지 역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초기 구상 작품은 물론 ‘서세옥의 정수’라 불리는 ‘인간’ 시리즈 등 서세옥 세계 전반을 아우르는 작품이 전부 포함되어 더욱 뜻깊다. 이를 바탕으로 시대별, 주제별 기획 전시를 준비하려 한다. 서세옥 작가 전작과 그의 컬렉션을 두루 짚으며 작가가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작품을 관통하는 역사적 맥락은 무엇인지 연구하려 한다. 그로부터 얻은 결실을 차근차근 선보일 예정이다.

 

 

 

 김유영

자료 협조 성북구립미술관

장소
성북구립미술관 제1, 2전시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로 134)
일자
2021.10.07 - 202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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