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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8

종로의 랜드마크 YMCA가 호텔을 품었다

120년 역사의 건물에 문을 연 ‘까치호텔’

노포와 공원,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공존하는 종로. 서울의 오랜 역사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동네다. 종각역 인근에 자리한 서울YMCA는 120여 년에 걸친 지역의 변화를 함께해 온 장소다. 1908년 첫 회관을 세운 이래 청년 교육과 민족운동, 근대 체육문화의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전쟁 당시 기존 건물이 소실된 후, 1967년 새롭게 완공한 회관에는 관광호텔도 들어섰다. 오랫동안 여행객을 맞이하던 이 호텔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운영을 중단했지만, 최근 부티크 호텔 ‘까치호텔(The Magpie Hotel)’로 다시 문을 열었다.

© 까치호텔

까치호텔은 종로 대로변에 자리하지만, 거리에서는 그 존재를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서울YMCA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올라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까치호텔이 스스로를 ‘스피크이지(Speakeasy) 호텔’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다. 미국 금주법 시대의 비밀 술집을 가리키던 말을 빌려, 익숙한 건물 속에 숨어 있는 호텔의 특성을 설명했다. 호텔의 이름은 반짝이는 물건을 발견하고 모으는 까치의 습성에서 따왔다. 역사적 건물에 남아 있는 가치를 발견하고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서로 다른 시대의 미감이 만나는 곳

©까치호텔

까치호텔의 디자인은 서구식 건축과 디자인이 한국에 자리 잡기 시작한 20세기 전반부터 1950년대까지의 건축문화에서 출발했다. 당시의 양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서구적인 장식 요소와 한국의 전통 소재를 조합해 고유한 디자인 언어를 만들었다. 클래식한 몰딩과 스테인드글라스, 한지와 황토 등이 한 공간에 어우러지는 풍경이 제법 이채롭다. 공간 곳곳에는 호텔의 탄생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디테일도 숨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패턴은 옛 YMCA 회관의 유리 문양을 재해석한 것이다.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천장은 까치 둥지에서 착안했다. 여기에 타공 한지를 적용해 빛과 공기가 드나들도록 하는 동시에 둥지 특유의 아늑함을 표현했다.

©까치호텔

공간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는 국내 장인들의 역할도 컸다. 까치호텔은 전통 소재와 공예 기술을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접목하기 위해 여러 공방과 협업했다. 1966년부터 수제 한지와 옻칠 기술을 이어온 천양제지, 전통 방식으로 도자기와 흙 조명을 제작하는 누림 세라믹, 창덕궁 작업에 참여한 한지 도배 장인 김장환과 조에이스 등이 힘을 보탰다. 한지에 옻칠을 더한 삼지장판과 황토 등도 주요 마감 소재로 활용했다. 특히 1987년부터 부자가 함께 석공 기술을 이어온 백화석재는 호텔에 사용한 700여 점의 화강암을 시공했다. 오랜 시간 축적한 장인들의 기술이 공간 곳곳에 드러난다.

©까치호텔

객실에서는 한국의 전통 가구인 서안(書案)도 발견할 수 있다. 바닥에 앉아 글을 읽거나 쓰던 낮은 책상으로, 양 끝이 위로 올라간 상판이 특징이다. 두루마리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한 형태다. 실용적인 목적에서 탄생한 가구지만, 충분히 조형적인 매력을 발휘한다. 까치호텔은 이처럼 전통 가구의 쓰임과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객실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직원들의 유니폼 역시 한국의 전통 복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복의 우아한 실루엣을 바탕으로 재킷에는 두루마기의 유려한 선을, 하의에는 풍성한 곡선미를 적용했다. 여기에 전통 매듭 공예가 이원섭 장인의 매듭 장식을 더했다. 자연스러운 백색의 유니폼은 복도의 따뜻한 벽돌빛과 조화를 이룬다. 공간을 구성하는 소재부터 직원들의 옷차림까지 디자인의 방향성을 이어간 점이 돋보인다.

체크인부터 시작되는 특별한 경험

©까치호텔

서울YMCA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까치 바’를 마주하게 된다. 리셉션과 라운지, 카페와 바의 기능을 결합한 공간으로, 투숙객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거실로 기능한다. 낮에는 차와 커피를 마시며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고, 저녁에는 술 한 잔을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제격이다. 한국 차와 오미자를 활용한 까치 하이볼과 둥글레 올드패션드, 우롱 하이볼 등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까치호텔

까치호텔은 총 28개 객실을 갖췄다. 스탠더드부터 코너 컴팩트까지 8가지 타입으로 나뉘며, 크기와 구조, 창의 방향이 조금씩 다르다. 주변 건물과 거리가 있어 객실 창밖으로 시야가 트여 있으며, 큰 창을 통해 자연광도 넉넉히 들어온다. 종로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다. 객실의 문을 열면,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린다. 까치호텔은 소프트 오프닝 기간을 맞아 카세트테이프를 웰컴 기프트로 준비했다. 1970년대 한국 음악을 담은 것으로, 음악을 통해 잠시 다른 시대로 여행하는 경험을 제안한다. 

웰컴 티와 취침 전 제공하는 간식인 턴다운 스낵에도 종로의 특색을 담았다. 호텔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공식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필름 특유의 색감과 질감을 통해 오래된 건물이 지닌 분위기와 공간의 디자인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재료와 가구뿐 아니라 음악, 사진, 작은 서비스까지 호텔의 철학을 이어간다.

©까치호텔

편안한 휴식을 위한 설계에도 공을 들였다. 종로는 유동 인구가 많고 교통량이 많은 지역인 만큼 외부 소음을 줄이는 일이 중요했다. 기획 초기부터 방음과 숙면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도심의 활기를 가까이에서 즐기면서도 객실에 돌아와서는 조용히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종로의 풍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아침

© 길보경

까치호텔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같은 건물 2층에 자리한 카페 ‘데이로우’로 이어진다. 높은 층고와 개방적인 구조,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투숙객은 조식 쿠폰으로 베이글 샌드위치와 그래놀라 요거트, 커피, 오렌지 주스로 구성된 ‘맥파이 모닝 세트’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의 통창 너머로는 커다란 나무와 종각역 일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가을 시즌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을 것. 물론, 호텔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베이글 샌드위치와 페이스트리,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종각역 인근에 자리한 까치호텔은 광화문과 인사동, 익선동 등 서울의 주요 지역을 도보로 둘러보기에도 편리하다. 오래된 골목과 문화유산, 새로운 상점이 밀집한 지역인 만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종로의 역사와 일상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싶다면, 까치호텔에서 하룻밤 머물러보는 것도 좋겠다.

글 길보경 객원기자

장소
까치호텔
주소
서울 종로구 종로 69 8층
길보경
언제나 자유로이 걷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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