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정동길에 조금 낯선 이름의 축제가 열린다. 〈NEO-JEONGDONG : 판〉. 새로 생긴 행사처럼 보이지만, 뿌리를 따라가면 올해로 28회를 맞은 ‘정동문화축제’에 닿는다. 1999년 시작해 매년 가을 정동길을 공연과 전시, 아트마켓,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채워온 오래된 거리 축제다.
올해는 익숙한 이름 앞에 ‘NEO’를 붙였다. 공연과 공간, 음식까지 하나의 기획 아래 엮고, 2030년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첫해에는 퍼포먼스에 주목해 정동길 위에 새로운 판을 벌인다. 28년 동안 이어진 축제는 왜 지금 새로운 이름과 방향을 꺼내 들었을까. 그 배경에는 개항 이후 낯선 문물을 만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온 정동의 역사가 있다.
올해로 28회를 맞은 정동문화축제
정동문화축제의 무대는 처음부터 정동길이었다. 경향신문사에서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 대한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공연과 전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대한제국 시기 외교와 교육, 문화의 중심지였던 정동의 역사와 곳곳에 자리한 문화시설은 오랫동안 축제를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어왔다.
축제가 시작된 1999년은 정동길이 서울시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2차선 도로를 1차선 일방통행으로 줄이고 보행 공간을 넓히면서 지금과 같은 걷기 좋은 거리의 틀이 만들어졌다. 축제 역시 이 길 전체를 무대로 삼았다. 사물놀이와 고적대 퍼레이드, 포크와 록 공연부터 전시와 영화제, 공예 체험, 벼룩시장, 어린이 사생대회까지 장르와 세대를 가리지 않는 프로그램이 정동 곳곳에서 펼쳐졌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는 공연을 온라인 콘서트로 옮기고 길을 따라 감상하는 워킹스루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후 거리 행사가 재개되면서 공연과 아트마켓, 컬러링, 박물관 스탬프 투어 등이 다시 정동길 곳곳을 채웠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길을 걷고 머무는 동안 정동의 문화와 역사를 자연스럽게 발견하도록 하는 방식은 20년 넘게 이어져 왔다.
NEO-JEONGDONG
올해 정동문화축제는 〈NEO-JEONGDONG〉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중심에 둔 것은 ‘동시대의 전통’이다. 오늘의 창작자가 전통문화에서 무엇을 이어받고 무엇을 다르게 바라보는지, 이를 자신의 경험과 감각으로 어떻게 풀어내는지 살펴본다.
정동은 개항 이후 궁궐과 외국 공사관, 학교와 교회가 한데 자리하며 낯선 문물과 생활양식이 빠르게 유입된 곳이다. 축제 기획팀은 이곳을 단순히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가 아니라, 새롭게 들어온 것을 기존의 것과 섞고 변형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장소로 바라본다. 판소리가 근대식 극장으로 들어가 창극으로 변화하고, 새로운 교육 방식과 언론, 공론 문화가 자리 잡은 역사도 그 예다.
프로젝트는 앞으로 5년간 분야를 달리하며 이어진다. 올해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문학, 패션, 사운드·미디어, 건축까지 매년 하나의 분야를 다루며 전통이 현재의 언어로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할 예정이다. 첫해에는 전통 연희와 국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확장해온 창작자들이 정동길 위에 모인다. 프로젝트는 공동 디렉터 유상경과 류송이가 이끈다. 유상경이 운영하는 식물 스튜디오 서간은 그동안 식물과 공간을 매개로 전시와 공간 연출을 이어온 곳으로, 이번 축제를 함께 기획했다. 음악과 공간, 그래픽, 조명, 사운드 등 각 분야의 창작자도 크리에이티브팀으로 합류해 축제의 여러 요소를 하나의 방향으로 엮는다.
신명 나는 굿부터 테크노까지
정동길의 밤은 〈나례희 : 행〉으로 문을 연다. ‘나례’는 한 해의 끝에 잡귀를 몰아내고 복을 맞이하기 위해 행하던 의례다. 고려 시대부터 궁중에서 행해졌으며, 네 개의 눈이 달린 가면을 쓴 방상시와 처용, 악공 등이 등장해 음악과 춤, 행렬로 액을 쫓았다. 연출가 이지희가 이끄는 나례희 프로젝트는 이 오래된 의례를 거리 퍼포먼스로 옮겼다. 정해진 객석은 없다. 길가에서 공연을 바라보던 사람도 행렬에 합류하고, 종을 울리거나 추임새를 보태며 한 장면을 함께 만든다.
전통음악을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확장해온 창작자들의 공연도 이어진다. 박백수는 거문고와 생황 등 여러 악기의 조합을 바탕으로 상상 속 이미지와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낸다. 이채현은 익숙한 경기민요를 해체하고 다시 엮은 ‘콜라주 잡가’를 선보이고, 상자루는 거문고와 아쟁, 양금, 태평소, 타악 등을 오가며 전통 장단을 경쾌하고 낯선 리듬으로 풀어낸다.
전자음향과 만난 국악은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프로듀서 DAHN과 가야금 연주자 RICO가 결성한 NOVASIA는 가야금 선율 위에 전자음악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겹쳐낸다. 잠비나이의 이일우는 모듈러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전자음향을 탐색하고, 3인조 64ksana는 굿과 테크노를 연결한다. 서울굿 대감놀이나 동해안별신굿에서 가져온 소리와 구조를 반복적인 전자 비트와 결합해 굿판의 신명을 동시대의 댄스 음악으로 옮긴다.
먹거리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만날 수 있다. 신당의 지역성과 굿 문화를 칵테일로 풀어온 구서울은 재수굿에서 영감을 얻은 팥 베이스 칵테일 ‘재수굿’과 가을 곶감으로 만든 ‘수정과 올드패션드’를 준비한다. 한국차 브랜드 다도레는 제철 원물로 만든 차를 지금의 생활 방식에 맞게 선보이고, 브링욜볼과 Farm.Form은 여러 재료를 골라 싸 먹는 구절판의 방식을 타코로 옮긴다. 푸드 디자인 스튜디오 홈그라운드는 정동에 쌓인 시간과 계절을 음식으로 풀어낸 ‘풍류도시락’을 선보인다.
〈NEO-JEONGDONG : 판〉은 10월 16일부터 17일까지 덕수궁 대한문과 서울시립미술관, 경향신문사로 이어지는 정동길 일대에서 열린다. 공연과 음식, 공간 곳곳에서 오래된 형식을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낸 장면을 만날 수 있다. 행사는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며 관람은 무료다.
글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정동문화축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