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치듯 휘어진 벽면과 나무처럼 뻗은 기둥, 깨진 타일 조각으로 뒤덮인 표면.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은 한눈에 알아볼 만큼 독특하다. 하지만 그 익숙한 형태가 어디에서 시작됐고, 가우디가 어떤 방식으로 건축의 답을 찾아갔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가우디 서거 100주기를 맞은 올해, 서울 신사하우스에서 열리고 있는 〈가우디: 서울에서 다시 태어나다〉는 완성된 건축물보다 그 이전의 과정을 들여다본다. 자연을 오래 관찰했던 어린 시절부터 바르셀로나에서 건축가로 성장한 시간, 실과 추를 이용한 구조 실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과 기술까지. 관람객은 그의 생애를 살펴보는 동시에 설계 원리를 직접 만지고 움직이며 경험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약 33만 명의 관람객을 기록한 가우디 재단 공식 월드투어의 서울 버전이다. 재단이 소장한 원본 30여 점과 공인 레플리카 42점을 비롯해 건축 도면과 모형, 가우디가 직접 남긴 드로잉과 친필 노트 등이 공개된다. 건축과 자연, 구조, 상징 등 그의 작업을 일곱 개 테마로 나누고, 미디어 아트와 인터랙티브 콘텐츠, AI 기술을 더해 가우디의 사고와 설계 방식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다섯 가지 포인트를 짚었다.
병약한 소년에서 거장이 되기까지
전시는 가우디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1852년 스페인 레우스에서 태어난 그는 몸이 약해 여느 또래처럼 활발하게 뛰어놀기 어려웠다. 그 대신 주변을 오래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나뭇가지가 무게를 지탱하는 방식과 식물의 곡선, 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유심히 살폈다. 구리 세공업에 종사했던 집안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평평한 금속판이 입체적인 형태로 바뀌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며 평면이 입체로 변하는 감각을 일찍부터 익혔다. 전시장에서는 밀 이삭과 마늘 구근, 사이프러스 솔방울, 버섯, 플라타너스 가지를 가우디의 건축 요소와 나란히 놓아 자연에서 발견한 형태가 건축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은 스파이홀에 눈을 대면 소년 가우디가 바라봤을 법한 풍경도 만날 수 있다.
1868년, 열여섯 살의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건축을 공부하며 여러 양식과 기술을 흡수하고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시기다. 카사 비센스, 엘 카프리초, 아스토르가 주교관, 카사 보티네스, 구엘 저택 등 초기 작품은 3관의 미디어 월을 따라 펼쳐진다.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코메야 장갑 매장의 진열장을 계기로 에우세비 구엘과 인연을 맺고, 이후 오랜 후원 관계 속에서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이어간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대표작을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우디 재단이 소장한 드로잉과 건축 자료, 그가 직접 써 내려간 친필 노트, 끝내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까지 아우르며 한 건축가의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됐는지를 보여준다. 그중 뉴욕 맨해튼에 계획됐던 ‘호텔 어트랙션(Hotel Attraction)’은 실제로 지어지지 못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에서는 남아 있는 도면과 스케치를 바탕으로 3D 모델로 복원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가우디를 처음 접하는 관람객에게는 그의 생애를 따라가는 입문서가 되고, 이미 그의 작품에 익숙한 이에게는 특유의 건축 언어가 형성된 배경을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가 된다.
가우디는 곡선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가우디의 건축을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곡선이다. 그러나 그 곡선은 감각에만 의존해 그린 자유로운 선과는 거리가 있다. 전시는 그를 ‘건축가’이자 끊임없이 구조를 실험한 ‘연구자’로 소개한다. 자연에서 발견한 형태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그 안에 숨은 힘과 구조를 이해해 건축에 적용하려 했다. 이를 위해 사슬과 추, 로프, 점토, 빛, 입체 모형 등을 활용하며 구조가 어떻게 서고 힘을 견디는지 반복해서 시험했다.
전시장에서는 이러한 설계 원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직선의 각도와 배열을 달리하며 기하학적인 곡면이 생겨나는 과정을 살펴보고, 코노이드 지붕처럼 곧은 선으로 유연한 곡면을 만드는 방식도 체험한다. 가우디가 사용했던 입체 안경도 전시돼 있다. 두 장의 사진을 겹쳐 깊이감을 확인하는 도구로, 평면 도면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건축의 부피와 공간을 미리 살피는 데 활용됐다. 복잡한 기하학을 모형과 체험 장치로 풀어낸 덕분에 건축을 잘 모르는 관람객도 그 원리를 어렵지 않게 따라간다. 건축이나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가우디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듯 한참 머물 법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중력을 설계 도구로 활용한 방식이다. 천장에 실을 매달고 끝에 추를 달면 중력에 따라 자연스러운 곡선이 생긴다. 가우디는 이를 거꾸로 뒤집어 안정적인 아치 구조를 찾았다. 콜로니아 구엘을 설계할 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폴리푸니큘러 모델’이 대표적이다. 도면과 계산에만 의존하기보다 중력이 만들어내는 힘의 흐름을 관찰하며 구조의 답을 찾아간 것이다. 전시장에는 이 원리를 재현한 모형과 체험 장치가 마련돼 있어, 그의 건축이 치밀한 관찰과 실험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100년 전 가우디의 실험, AI를 만나다
전시장에서는 어린아이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다소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전시이지만, 미디어 아트와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진입 장벽을 낮췄다. 바르셀로나 시기를 다룬 공간에서는 가우디 초기 건축물이 미디어 월을 따라 펼쳐지고, 화면에 손을 대면 파사드에 색과 빛이 번진다. 작품의 이름과 연도를 읽는 대신 손을 움직이며 가우디의 건축을 만나는 방식이다.
앞서 살펴본 폴리푸니큘러 모델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다. 관람객이 화면 속 실에 추를 매달아 현수선을 만들면, 이를 뒤집어 얻은 아치 구조를 바탕으로 AI가 가상의 건축물을 생성한다. 100여 년 전 가우디의 건축 언어가 동시대 기술을 거쳐 새로운 이미지로 확장되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 〈유기의 바다: 트렌카디스와 건축물들〉에서는 바닥을 걸을 때마다 발아래에서 깨진 타일 조각이 나타난다. 흩어진 조각들은 다시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공원 등 건축물의 형상으로 변한다.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원리를 경험으로 풀어낸 덕분에 사전 지식 없이도 비교적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이 함께 보기에도 부담이 적다.
144년째 짓는 건축을 ‘미완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명할 때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는 ‘미완성’이다. 1882년 착공한 뒤 144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이번 전시는 그 긴 시간을 단순히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바라보지 않는다. 한 건축가의 설계가 여러 세대의 건축가와 장인, 새로운 기술을 거치며 오늘에 이른 과정에 주목한다. 전시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영원한건축’으로 소개하는 이유다.
1883년 설계를 이어받은 가우디는 세상을 떠난 1926년까지 40년 넘게 성당 건축에 매달렸다.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작업실이 불타면서 그가 남긴 도면과 석고 모형 상당수가 훼손됐지만, 후대의 건축가들은 남은 파편과 사진, 기록을 하나씩 맞추고 해석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건축이 다음 세대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작업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남겨진 석고 모형과 도면을 주요한 단서로 삼았다면, 지금은 3D 스캔과 파라메트릭 모델링, 컴퓨터 제어 석조 가공 같은 디지털 기술이 활용된다. 가우디가 남긴 형태를 복제하기보다 그의 구조와 설계 원리를 해석해 구현하는 과정이다. 전시장에서는 초기 설계 자료와 모형부터 현대의 제작 기술까지 한 흐름 안에 놓아,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과 기술이 하나의 건축에 어떻게 축적되어 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가우디 서거 100주기인 올해에는 높이 172.5m의 예수 그리스도 탑 외관이 완성되며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맞았다. 하지만 성당 전체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44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과 기술이 더해져온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언제 완성될까’보다 ‘어떻게 하나의 건축이 세대를 건너 계속 이어질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가우디를 담는 서울만의 방식
전시 〈가우디: 서울에서 다시 태어나다〉가 열리는 신사하우스는 승효상 건축가가 기존 다세대주택 두 동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방마다 크기와 층고가 다르고, 계단과 복도를 따라 동선이 복잡하게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구조를 정리하거나 감추기보다 그대로 활용하는 쪽을 택했다. 일곱 개의 테마를 여러 층과 방에 배치해 마치 하나의 집을 탐색하듯 새로운 장면을 마주한다. 덕분에 규모가 크지 않은 공간에서도 단조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시 디자인에도 가우디의 건축 원리가 스며 있다. 서울 전시의 주관을 맡은 jpa.(Junglim Planning Advisory)는 정림건축에서 출범한 공간 크리에이터 그룹으로, 이번 전시의 기획부터 공간 디자인과 구현, 운영까지 전 과정을 맡았다. 일본 전시의 콘텐츠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신사하우스의 구조와 서울 관람 환경에 맞춰 동선과 공간 경험을 새롭게 구성했다. studio xyz와 함께 가우디가 구조를 연구할 때 활용했던 역현수선의 형태를 전시장 그래픽 전반에 확장한 것도 그중 하나다.
본 전시를 지나면 리본 스페이스, 까예 가우디, 루프탑 테라스 등 서울 전시를 위해 새롭게 마련한 공간이 이어진다. 다양한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참여한 협업 제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야이야앤프렌즈는 트렌카디스의 색채와 가우디 건축의 모티프를 라이프스타일 제품으로 옮겼고, 옥산백은 백옥과 향을 매개로 그의 세계를 새롭게 해석했다. 10월에는 걸그룹 리센느와 함께한 한정 협업 MD도 더해졌다. 서로 다른 분야의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가우디에게서 발견한 색과 형태, 재료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100년 전 건축가의 언어가 오늘의 물건과 문화로 확장되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재미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가우디 서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