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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7

당신은 ‘문래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스몰바치 스튜디오 로컬 투어 〈스텐과 백반〉

백반집 한편에 어김없이 쌓여 있는 스테인리스 물컵.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 물건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은 드물다. 물컵은 왜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에도 저마다의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 9월 18일, 문래동에서 조금 특별한 로컬 투어가 열렸다. 영등포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스몰바치스튜디오가 기획·운영한 〈스텐과 백반〉이다. 스몰바치스튜디오는 음식을 매개로 사람과 장소, 문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식경험 디자인 스튜디오다. 강은경 대표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산업화와 집단 식문화를 상징하는 스테인리스 식기에 주목했다. 금속가공 소공인들이 모여 있는 문래동을 무대로 이들의 기술과 노동, 오랫동안 끼니를 책임져 온 백반집의 식문화를 함께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왜 우리는 스테인리스 식기를 사용하게 됐을까. 그리고 문래동의 철공소와 백반집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한 동네의 풍경을 만들어왔을까. 평범한 물컵 하나를 따라 문래동의 작업장과 식탁을 오갔다.

문래동 철공소는 미사일도 만든다고?

첫 번째 목적지는 집결 장소인 목화수라간에서 걸어서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창성헤라시보리다. 작업장 곳곳에는 크고 작은 금형과 공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강병기 대표는 약 50년 동안 ‘헤라시보리’ 기술을 다뤄온 숙련공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제작한 스테인리스 물컵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헤라시보리는 평평한 금속판을 회전하는 금형에 대고 밀어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금속가공 기술이다. 물레 위에서 흙을 빚는 모습과 닮았지만, 다루는 것은 스테인리스나 알루미늄 같은 단단한 금속이다. 회전하는 판에 도구를 대고 힘을 조금씩 옮겨가며 형태를 잡는데, 한곳에 힘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금속이 찢어지거나 모양이 틀어질 수 있다. 강병기 대표에 따르면 이런 작은 물컵 하나를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숙련되기까지도 최소 5년이 걸린다.

제품 하나를 완성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문래동에서는 각자의 기술을 가진 소공인들이 공정을 나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금속판을 자르는 곳, 금형을 만드는 곳, 형태를 잡는 곳, 용접하거나 표면을 다듬는 곳이 따로 있고, 필요한 공정에 따라 작업장을 오간다. 강은경 디자이너는 이런 제작 방식을 두고 “유럽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길드와도 같다”고 비유했다. 한때 문래동에는 ‘작업자 열 명만 모이면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로 각 분야의 기술을 가진 소공인이 밀집해 있었다. 특히 금속가공업이 활발했던 1970~80년대에는 이런 제작 생태계가 문래동 곳곳에 촘촘하게 자리했다.

〈스텐과 백반〉을 위해 특별 제작한 물컵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스몰바치스튜디오가 디자인하고 창성헤라시보리가 형태를 제작했으며, 대성레이저가 컵에 무늬와 글자를 새겼다. 강은경 디자이너는 백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물컵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문래동의 소규모 제작 방식에 맞춰 형태를 다시 잡았다. 컵 윗부분의 볼록한 굴곡을 바닥에도 적용하고, 원하는 곡률을 찾기 위해 강병기 대표와 여러 차례 샘플을 수정했다.

 

강병기 대표는 헤라시보리를 새로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몸에 익혀야 하는 기술인 만큼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작업장을 나오며 손에 쥔 물컵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지름과 높이 각각 75mm, 용량 180ml, 소재는 스테인리스 304. 처음에는 익숙한 공산품처럼 보였던 작은 물건 안에 여러 사람의 기술과 판단, 시간이 겹쳐 있었다.

서로를 지탱하던 문래동 사람들

공장에서 갓 나온 스테인리스 식기는 사용 전 세척이 필요하다. 표면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연마제와 이물질을 닦아내기 위해서다. 다시 목화수라간에 모인 우리는 여러 방법을 이용해 직접 컵을 세척했다. 먼저 식용유를 묻힌 키친타월로 컵의 안팎을 닦았다. 몇 번 문지르자 종이 위로 검은 흔적이 묻어났다. 이어 베이킹소다로 다시 닦고 주방 세제로 씻은 뒤, 마지막에는 식초를 넣은 물에 컵을 담가 끓였다. 

 

직접 세척한 컵에 차를 따라 마시고 있을 즈음, 백반을 담은 커다란 쟁반을 싣고 온 오토바이 한 대가 목화수라간 앞에 멈춰 섰다. 이날의 점심은 문래동에서 배달 백반을 내는 복청집에서 왔다. 제육볶음과 우거지 된장국, 깻잎무침과 멸치볶음이 쟁반째 테이블 위에 놓였다.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으로 차린 익숙한 한 끼지만, 문래동의 배달 백반은 오랫동안 이곳의 산업과 함께 이어져 온 식사 방식이기도 하다.

작은 작업장을 운영하는 소공인들은 자리를 오래 비우기 어렵다. 점심 시간에도 작업을 이어가야 하거나 거래처 사람이 불쑥 찾아오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 틈을 메운 것이 동네 백반집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작업장으로 한 상을 배달하고, 식사가 끝난 뒤 밖에 내놓은 그릇을 다시 거둬갔다.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밥을 짓는 사람이 같은 동네 안에서 서로의 하루를 지탱해온 셈이다.

 

그렇다면 왜 백반집에는 유독 스테인리스 식기가 많을까. 강은경 디자이너는 식사 중 우리가 사용하던 밥공기와 물컵, 수저를 하나씩 짚으며 한국의 근현대 식탁에서 스테인리스가 자리 잡은 배경을 들려줬다.

한국의 식탁에는 오래전부터 유기와 옹기, 도자기, 나무 등 다양한 소재의 식기가 쓰였다. 이후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가볍고 저렴한 알루미늄 식기가 널리 사용됐고, 1960년대에 등장한 스테인리스 식기도 점차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녹이 잘 슬지 않고 쉽게 깨지지 않으며 세척과 관리가 수월하다는 장점은 많은 사람에게 반복해서 음식을 내야 하는 식당이나 급식 환경에 특히 잘 맞았다.

 

백반집도 마찬가지다. 밥과 국뿐 아니라 여러 반찬을 함께 내야 하니 한 끼에도 많은 그릇이 필요하다. 여러 개를 포개 보관하기 쉽고, 배달 과정에서 깨질 염려가 적으며, 사용 후 빠르게 씻어 다시 쓸 수 있는 스테인리스는 백반집의 운영 방식과 잘 맞았다. 우리가 흔히 ‘옛날 식당 느낌’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풍경 안에는 산업화와 집단 식문화, 위생에 대한 인식, 음식을 빠르게 내고 거둬야 했던 현장의 조건까지 함께 쌓여 있던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 아이콘, 스텐 식기

이야기는 식기의 형태와 무늬로 이어졌다. 가령 백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리스 물컵은 입구 주변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여러 개를 겹쳐 놓아도 잘 쌓이고 쉽게 빠지도록 고안된 형태다. 식당에서 열댓 개씩 포개 놓은 모습을 자주 봤지만, 그 굴곡에도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지금도 식당에서 종종 마주치는 ‘인삼 수저’ 이야기였다. 스테인리스 수저에는 인삼이나 학, 사슴 같은 무늬가 새겨진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문양들은 그저 장식만은 아니다.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상징을 식기에 새겨, 밥 한 숟갈에도 먹는 이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식기에도 누군가의 디자인 의도와 바람이 숨어 있었다.

〈스텐과 백반〉을 위해 새롭게 만든 물컵 옆면에도 사슴과 거북이, 인삼을 새겼다. 오래된 스테인리스 수저가 그랬듯 물 한 모금에도 사용하는 사람의 건강과 안녕을 빌어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컵을 뒤집으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타난다. 바닥에는 물컵을 제작한 창성헤라시보리와 무늬를 새긴 대성레이저뿐 아니라 이날 백반을 만든 복청집의 이름도 함께 새겨져 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의 끼니를 책임져온 이들을 우리는 흔히 ‘이모님’이나 ‘어머니’라고 부르지만, 정작 한 사람의 이름과 그가 쌓아온 전문성은 잘 기록되지 않는다. 문래동의 소공인 역시 오랜 시간 기술을 다뤄왔지만 완성된 제품 뒤에서는 이름이 사라지기 쉽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래서 작은 물컵의 바닥에 가능한 한 많은 이름을 새겼다. 컵을 만든 사람과 무늬를 새긴 사람, 그리고 오늘의 한 끼를 만든 사람까지.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평범한 스테인리스 물컵 하나를 들여다봤지만, 끝날 무렵에는 그 물건 주변에서 일해온 사람들의 이름까지 읽게 됐다. 좋은 디자인을 발견하기 위해 꼭 특별한 물건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익숙해 지나쳐온 물건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미 쌓여 있던 사람과 시간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스몰바치 스튜디오

프로젝트
〈스텐과 백반〉
김기수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음주가무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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