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룰’로 자리 잡은 영화관 문화가 있다. 바로, 상영이 끝난 뒤 시작되는 ‘특전 포스터’ 경쟁이다. 같은 영화라도 극장과 상영관, 관람 주차에 따라 서로 다른 포스터를 선착순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모두 모으려면 같은 영화를 여러 차례 관람하는 일도 흔하다. 2026년 7월 15일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특전 포스터만 10종이 넘는다.
특전 포스터를 얻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인기 포스터는 상영 첫날 소진되기 때문에, 원하는 포스터를 얻으려면 연차를 써서라도 ‘오픈런’을 강행해야 한다. 이제 포스터는 영화를 보고 덤으로 받는 기념품을 넘어, 관람 날짜와 상영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 포스터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소장할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일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포스터 한 장 갖지 못하는 것인가! 너무 낙담하지 말자. 우리에겐 ‘특전’보다도 더 희소성 있는 포스터를 구할 수 있는 ‘포스터 숍’이 있다.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의 해외 오리지널 포스터와 세월이 묻은 팸플릿을 구할 수 있는 국내 영화 포스터 숍 5곳을 소개한다.
유물론
중구 묵정동에 위치한 미스테리한 포스터 숍 유물론. 오래된 상가 2층, 깊숙이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숨겨진 공간이다. 해외 개봉 당시 제작된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와 팸플릿만 취급하며, 온라인 판매 없이 오프라인 상점만 운영한다.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벨기에 등 다양한 나라에서 직접 공수해 온 빈티지 포스터를 만날 수 있다.
유물론은 2026년 3월 영화 기자 출신 문동명 대표가 문을 열었다. 유물론은 문 대표가 출장 및 여행을 다니며 모은 개인 소장품을 위주로 한다. 판매점을 넘어 ‘시네필 갤러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문을 열면 등장하는 붉은 커튼과 벽을 가득 채운 포스트, 팸플릿은 ‘시네필의 방’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유물론에선 매주 영화 상영도 한다. 이 역시 한국에서 쉽게 시청할 수 없는 고전, 예술 영화 위주다. 포스터 구매를 넘어 취향과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공간. 찾아가는 길부터 구매 경험까지 ‘시네필의 정도(正道)’를 알고 싶다면 유물론에 꼭 한 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주소 서울 중구 묵정동 28-6 명성빌딩 201호
인스타그램 @yoomoollon
씨네마포
씨네마포는 2019년 문을 열어 합정동의 ‘시네필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영화 포스터는 물론 배지 같은 영화 굿즈, 단돈 1,000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엽서나 DVD, 씨네마포에서 자체 제작한 영화 굿즈도 있다. 오래된 고전 작품부터 최신 개봉작까지 다루는 영화의 종류도 폭넓다.
독특한 점은 굿즈 숍이 아니란 거다. 씨네마포는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영화복합문화공간이다. 씨네마포의 시그니처 공간은 미니 영화관이다. 1층 중앙 공간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4~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미니 영화관을 만들었다. 팝콘과 음료를 시켜 미니 영화관에 앉아 있으면 비록 개방된 공간이지만 실제 영화관 못지않게 즐길 수 있다.
씨네마포는 영화 디자인 회사 ‘4rest’가 운영한다. ‘4rest’의 윤세준 대표는 좋은 영화들이 상영관에서 내려가면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이 아쉬워 씨네마포를 시작했다. 그 뒤로 씨네마포는 시네필을 넘어 영화 업계인들도 즐겨 찾는 아지트가 됐다. 최근에는 ‘영화인 생일 카페’를 열어 팬들과 영화인들의 소통 창구가 되기도 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01-14
인스타그램 @cinema_four
마이페이보릿
이제 막 영화 굿즈를 모으기 시작한 초심자라면, 마이페이보릿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 굿즈숍으로, 국내외 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영화 관련 상품,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 영화 관련 서적까지 폭넓게 다룬다.
마이페이보릿은 2018년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영화의 도시 군산에 처음 문을 열었다. 영화만을 테마로 한 상시 운영 굿즈 숍은 한국에서 처음이었다. 마이페이보릿은 IT 직장인 출신 신현이 대표가 ‘영화 일을 하고 싶다’라는 꿈을 좇아 오픈한 공간이다. 군산에 자리했던 시절, 마이페이보릿은 여행객들이 필수로 방문하는 여행 코스였다.
서울 합정동으로 자리를 옮긴 건 2023년이다. 초록색 철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이 나타난다. 포스터 존, LP 존, 도서 존 등 품목별로 정리된 넓은 매장 곳곳엔 신현이 대표가 직접 메모지에 적은 추천사가 붙어 있다. 독립서점의 따뜻함과 영화 편집숍의 큐레이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1길 18 지층
인스타그램 @store.myfavorite
러브레플리카·미하 숍
포스터 숍을 방문하는 경험 자체가 특별하기를 바란다면 러브레플리카와 미하 숍을 추천한다. 두 개의 숍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운영된다. 미하 숍은 박병우, 강아름 대표가 운영하는 빈티지 포스터 숍이다. 개봉한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소성 있는 포스터를 취급한다.
이를 공간화한 게 망원동에 위치한 러브레플리카다. 러브레플리카는 빈티지뿐 아니라 음악부터 패션까지 다양한 분야를 취급하는 서브컬처 공간이다. 카페 겸 바로도 운영되며, 전시된 소품과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분위기에 압도된다. 두 대표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수집해 온 희귀품들이다.
처음 문을 열 땐 다양한 장르를 취급했지만, 최근엔 만화·애니메이션 〈죠죠의 기묘한 모험〉 테마 카페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당연히 〈죠죠의 기묘한 모험〉 일본 현지 포스터는 물론, 피규어부터 작품 속 캐릭터를 테마로 한 음료도 판매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애니메이션, 영화 굿즈를 구경할 수 있으니, 방문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 될 거다. 종종 ‘팬아트 사생 대회’나 서브컬처 플리마켓 등 다양한 이벤트도 개최되므로, 서브컬처를 좋아한다면 팔로우해 두자.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19길 12
인스타그램 @thelovereplica / @miiha_shop
블랙쉽월
블랙쉽월 역시 세월의 가치를 지닌 빈티지 영화 포스터를 수집하고 판매한다. 다만 블랙쉽월의 포스터를 만나기 위해선 다음 행선지를 확인해야 한다. 고정된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영화제와 편집숍, 문화 공간을 오가며 팝업 형태로 소비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패션 편집숍 스컬프스토어 한남, 서촌 소품숍 콜리빌리 등 다양한 공간에서 팝업을 열어왔다.
블랙쉽월은 패션 에디터 출신의 이광식 대표가 운영한다. 영화 포스터를 주력으로 하지만, 티셔츠와 CD, 책 등 다양한 영화, 음악, 패션 전반을 넘나든다. 단순히 오래되거나 희귀한 물건을 모으기보다, 서사가 있는 물건을 선별한다. 가령, ‘스튜디로 지브리’ 설립 이전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포스터를 소개하는 식이다.
‘블랙쉽월’이라는 이름은 ‘모든 양 떼에는 검은 양이 있다’는 유럽 속담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만큼 블랙쉽월은 제품의 숨겨진 이면을 조명하는 데 탁월하다. 진행되는 팝업이 없을 땐 이광식 대표가 직접 제품의 히스토리를 설명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인스타그램 @blacksheep.wall
영화 포스터를 모으는 일은 좋아하는 작품의 얼굴을 고르는 일과 닮았다. 같은 영화라도 어떤 포스터, 어느 시기에 제작된 포스터를 벽에 거느냐에 따라 작품을 향한 감정은 달라진다. 개봉 당시의 공기를 간직한 해외 오리지널 포스터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맛으로 재해석된 재개봉 포스터도 있다.
영화관의 ‘특전 포스터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이유는 그 ‘취향의 맛’이 갈수록 다양해지기 때문일 거다. 내 취향을 더 견고히 다듬고 싶을 때, 다른 누군가의 취향으로 가득 찬 포스터 숍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내가 모르던 영화의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해 보는 시간이 될 테니.
글 김은빈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