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는 2024년 대규모 팝업 전시 〈Hermès in the Making〉을 열고, 브랜드 정체성이기도 한 장인정신을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당시 전시는 에르메스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여주며, 하나의 오브제가 완성되기까지 이어지는 시간과 기술을 조명했다. 이번 〈Mystery at the Grooms’〉 역시 에르메스의 헤리티지를 바탕에 두지만, 관람객이 직접 단서를 찾고 공간을 통과하며 브랜드의 세계를 발견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뉴요커 2만 5천 명이 찾았다
〈Mystery at the Grooms’〉는 상하이, 뉴욕, 도쿄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린 글로벌 팝업이다. 2024년 말 상하이 웨스트 번드 돔에서 처음 선보인 뒤 2025년 6월 뉴욕 피어 36, 11월 도쿄 TOKYO NODE로 이어졌다. 특히 뉴욕에서 열린 행사는 큰 관심을 모았다. 별도로 제품이나 굿즈 판매 없이 운영된 팝업이었지만, 현지 보도에 따르면 약 2만 5천 명이 참가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럭셔리 브랜드를 놀이처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발길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팝업의 출발점에는 에르메스의 승마 헤리티지가 있다. 에르메스는 1837년 파리에서 마구와 안장을 제작하는 공방으로 시작됐다. 말과 기수,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장비를 만드는 일에서 출발한 하우스에게 말은 장식적인 상징이 아니라 브랜드 기원에 가깝다. 〈Mystery at the Grooms’〉는 이 오래된 배경을 무겁게 설명하는 대신 하나의 미스터리 게임처럼 구현했다.
DDP에 펼쳐진 마부의 저택
에르메스 마부들의 프랑스 저택. 이곳에 지내던 말들이 집안 곳곳에 숨어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관람객은 입장과 동시에 QR코드가 적힌 티켓을 받고, 이를 통해 게임 페이지에 접속해 ‘에르메스 탐정’으로서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게임의 흐름은 간단하다. 탐정 오노레의 안내를 따라 다이닝룸, 물품 보관실, 팬트리, 런드리룸, 기숙사 등을 차례로 이동하며 사라진 말 서른 마리를 찾는 방식이다(오노레라는 이름은 에르메스 본점이 있는 거리인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에서 따왔다). 각 방에서 저택의 마부들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실감 나는 연기로 공간 전체에 몰입감을 더한다. 숨은 말을 찾는 과정은 생각보다 긴박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장치를 작동시키고 흩어져 있는 단서를 발견하며, 방탈출 게임에 가까운 리듬으로 진행된다. 다만 각 방을 지키는 마부들이 적극적으로 힌트를 건네기 때문에 어렵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에르메스의 제품이 전면에 놓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많은 브랜드 팝업이 제품을 설명하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게임의 일부로만 등장한다. 가죽, 실크, 식기 등은 별도의 미사여구 없이 저택의 소품처럼 팝업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놓인다. 관람객은 말을 찾기 위해 유심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에르메스가 만들어온 물건의 형태와 질감을 마주하게 된다. 제품을 보기 위해 게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에 몰입하다 보니 브랜드의 세계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미션이 끝나면 모든 관람객에게 기념 노트를 제공한다. 노트 안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작은 게임이 숨겨져 있어, 팝업을 빠져나온 뒤에도 여운을 이어가게 한다. 〈Mystery at the Grooms’〉는 오는 6월 16일까지 DDP 아트홀 1관에서 열린다. 관람은 무료이며,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세션은 약 60분간 진행되고, 게임 참여를 위해 충분히 충전된 휴대폰을 지참해야 한다. 에르메스의 오브제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은 물론, 럭셔리 브랜드가 자신의 헤리티지를 어떻게 오늘의 놀이로 바꾸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글·사진 김기수 기자
자료 및 사진 출처 에르메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