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자리한 퐁피두센터
퐁피두센터는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이자 복합문화기관이다. 1977년 프랑스 파리 보부르 지역에 문을 연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도서관, 공연장, 영화관 등을 품으며 미술관의 역할을 도시의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해 왔다. 건물의 구조와 설비를 외부로 드러낸 파격적인 건축으로도 잘 알려진 이곳은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보여주는 방대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세계 여러 도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6월 4일, 서울 여의도에 ‘퐁피두센터 한화’가 문을 연다. 스페인 말라가, 중국 상하이에 이어 세 번째 분관이다. 한화문화재단과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미술관 설립을 위한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한 뒤 약 3년 만에 선보이는 공간이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향후 4년간 매년 두 차례 퐁피두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를 열고, 동시대 작가들과 협력한 기획 전시도 이어갈 예정이다.
퐁피두센터 한화가 들어서는 곳은 과거 아쿠아리움이 있던 63빌딩 별관이다. 2024년 영업 종료 이후 전면 리모델링을 거쳐, 500평 규모의 메인 전시실 두 개를 갖춘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설계는 프랑스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가 맡았다. 루브르박물관 리노베이션과 인천국제공항 프로젝트 등에 참여한 그는 이번 공간을 ‘빛의 상자’라는 개념으로 풀어냈다. 63빌딩의 수직적인 인상과 대비되는 수평의 흐름, 전통 기와의 곡선을 연상시키는 반투명한 유리 외피,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감각이 독특한 인상을 만든다.
대형 전시실부터 야외 정원까지
지상층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것은 중앙 보이드 공간에 놓인 레몽 뒤샹-비용의 청동 조각 ‘대형 말’이다. 퐁피두센터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이자 큐비즘의 주요 작품으로 꼽히는 이 조각은, 개관전의 주제를 예고하듯 관람객을 맞이한다. 작품 위로 시선을 올리면 1층 정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보이고, 지하 상업공간과도 연결돼 있어 관람 전후 식사와 음료, 쇼핑까지 한 동선 안에서 누릴 수 있다.
1층은 전시를 둘러싼 배움과 교류의 공간으로 마련됐다. 정원과 맞닿은 구조 안에 오디토리움, 멀티스테이션,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이곳에서는 전시 연계 강연과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건물을 따라 길게 난 채광창으로 자연광이 깊숙이 들어오고, 창가에 마련된 카페에서는 63 아우돌프 가든을 바라보며 전시의 여운을 이어갈 수 있다. 세계적인 조경가 피트 아우돌프의 철학이 담긴 이 정원은 사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품은 자연주의 정원으로, 미술관의 경험을 실내에서 바깥으로 확장한다.
본격적인 전시는 2층과 3층에 마련된 두 개의 대형 전시실에서 펼쳐진다. 1전시실은 약 1,400㎡ 규모로, 두 개 층을 하나로 연결해 탁 트인 높이감을 살린 공간이다. 큰 규모의 작품도 여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퐁피두센터의 근현대 컬렉션을 보다 몰입감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총 1,650㎡ 규모의 2전시실은 복층 구조로 구성돼 회화뿐 아니라 설치미술, 멀티미디어, 조각 등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형식을 담아낸다.
아시아 최대 규모 큐비즘 전시
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큐비즘의 흐름을 따라가는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개관전으로 준비했다. 입체주의로도 불리는 큐비즘은 하나의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화법으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꾼 중요한 예술 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전시에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후안 그리스, 페르낭 레제, 소니아 들로네, 로베르 들로네 등 큐비즘을 이끈 주요 작가들의 작품 91점이 소개된다. 회화와 조각, 무대미술을 아우르는 구성은 큐비즘이 하나의 양식에 머물지 않고 20세기 시각문화 전반으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피카소가 직접 제작한 대형 발레 무대막은 한국에 소개된 적 없는 작품으로 관심을 모은다.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컬렉션은 제2전시실에 마련되는 특별 섹션 ‘KOREA FOCUS’다. 퐁피두센터 한화 조주현 수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 섹션은 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모더니즘의 흐름이 한국 근대예술과 어떻게 만났는지 살핀다. 출발점은 1920년대 경성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회화와 문학, 무용, 건축, 사진, 영화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모색했고, 파리를 보편적 ‘모던’의 기준이자 예술적 이상향으로 상상했다. 특히 ‘큐비스트적 시인’으로 불린 이상을 중심으로 형성된 1930년대 예술가 네트워크는 도시 문화 전반에 새로운 표현을 실험하는 장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흐름을 다양한 매체와 연출을 통해 풀어낸다. 퐁피두센터 컬렉션을 그대로 소개하지 않고, 한국이라는 시공간적 맥락과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 63빌딩에서 만날까?
퐁피두센터 한화가 제안하는 미술관 경험은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화문화재단은 전시 관람을 넘어 휴식과 체험이 결합된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선보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이곳은 작품을 감상하는 전시실과 함께 F&B, 쇼핑, 정원 등을 하나의 동선 안에 배치하며 ‘체류형 문화 시설’에 가까운 형태를 갖췄다. 특히 ‘63 CULTURE & GOURMET STREET’를 조성해 예술과 문화, 미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흐름을 만들었다. 전시를 관람한 뒤 잠시 숨을 고르고, 식사를 하고, 일상으로 예술품으로 들이는 시간까지.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과 함께 경험해볼 만한 리테일 공간 네 곳을 소개한다.
파르노 FARNO
파르노는 2024년 12월 서래마을에 문을 연 브런치 카페다. 유럽의 작은 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데일리 수프와 요거트, 샌드위치, 파스타 등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메뉴를 선보여왔다. 퐁피두센터 한화점은 기존 파르노의 브런치 무드를 이어가면서도, 한층 깊이 있는 양식 다이닝으로 확장한 공간이다. 기존 시그니처 메뉴는 물론, 퐁피두센터 한화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메뉴도 준비 중이다. 예술이 머무는 공간 안에 자리한 만큼 플레이팅과 매장 분위기에도 공을 들였다.
핸드투홈서울 hand To home seou
핸드투홈 서울은 서울의 감각을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이는 아트 리테일 스페이스다. 조선의 고궁과 고층 유리 빌딩이 한 풍경 안에 놓이는 서울만의 대비와 균형을 공예적 언어로 풀어낸다. 한국 공예 작가들이 만든 아트 퍼니처와 오브제, 라이프스타일 소품 등을 통해 서울의 문화와 정서를 감각적으로 전한다. 한국을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서울의 기억을 간직하는 오브제로, 일상 속 새로운 취향을 찾는 이들에게는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물건을 만나는 경험으로 다가간다.
로파서울 LOFA SEOUL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로파서울도 퐁피두센터 한화에 자리 잡았다. 동시대 작가와 디자이너가 만들고 있는 공예, 그래픽 디자인, 독립출판물을 꾸준히 조명해 온 곳으로 감상하고 떠나는 작품이 아니라, 일상으로 번지는 예술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퐁피두센터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63시티점은 그 실천을 보다 넓은 접점으로 확장한 공간이다. 공예·도자·섬유·금속·가구·디지털 조형 분야 작가 17인이 참여하는 그룹 기획전 〈책가도의 방〉을 마련했으며, 국내 그래픽 디자이너와 스튜디오 21팀이 함께한 커스텀 다이어리 프로젝트도 준비했다. 작품과 디자인, 책의 형태로 예술의 감각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다.
프레젠트모먼트 PRESENT MOMENT
프레젠트모먼트는 특별한 선물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와 가이드를 제공하는 큐레이션 숍이다. 망원동에서 ‘산타의 비밀 창고’라는 콘셉트로 첫 오프라인 공간을 선보인 데 이어, 퐁피두센터 한화에는 두 번째 공간 ‘산타의 등대 HOHO’를 열었다. HOHO는 ‘Happiness Of Human Observatory’의 약자로, 행복을 관측하는 등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점은 선물을 고르는 행위에 질문과 사유의 시간을 더했다. 행복에 대한 질문을 품은 선물과 예술가들의 작품 그리고 멋진 항해 기록이 담긴 서가를 기반으로 향후 전시와 강연도 이어갈 예정이다. 오픈을 기념해 선보인 멤버십 키트는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과 일상의 중심을 잡는 도구들로 구성됐다.
글 김기수 기자
사진 및 자료 출처 퐁피두센터 한화, 파르노, 로파서울, 프레젠트모먼트, 핸드투홈서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