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7

데미안 허스트 전시와 함께 즐기기 좋은 장소 5

소격동부터 안국까지, 서울의 멋과 맛이 녹아든 산책 코스

지난해 론 뮤익 전시로 50만 이상의 관람객을 모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단일 전시로는 2013년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관객 수를 기록했다. 올해도 그 열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3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영국 현대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개인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마침 ‘예술 산책’하기 좋은 계절, 봄이 당도했다. 소격동부터 사간동, 윤보선길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예술과 패션, 미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다섯 곳을 소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미술디지털도서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 서울)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네 개 분관 가운데 하나로, 서울 도심에서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경복궁과 삼청동, 북촌 사이에 자리한 이 부지는 조선시대 왕실 친족의 업무를 담당하던 종친부가 있던 자리다. 이후 국군기무사령부가 사용하던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하면서 미술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과거 건물의 일부 흔적을 보존하고 현대적인 건축을 더해 역사성과 동시대성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완성했다. 

현대미술의 거장, 데미안 허스트의 개인전 〈데이미언 허스트 :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이 곧 열릴 예정이다. 삶과 죽음, 과학과 종교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탐구해 온 그의 작업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로, 허스트를 대표하는 주요 시리즈와 작품을 통해 작가의 개념적 접근과 시각적 언어를 살펴볼 수 있다. 포름알데히드 수조 속 동물로 유명한 〈자연사〉 연작,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벚꽃〉연작 이후의 미공개 신작까지. 그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살펴볼 기회다.

데미안 허스트의 강렬한 작품들로 한껏 달아오른 감각을 잠시 식힐 시간이다. MMCA 미술디지털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미술관 외부로 나와 조각가 박은선의 기둥 작품을 지나면 도서관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 공간의 긴장감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차분한 호흡으로 미술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미술디지털도서관은 미술 전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공개형 아카이브 공간이다. 국내외 미술 서적과 전시 도록, 학술 자료가 폭넓게 갖춰져 있어,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 도록을 펼쳐보며 작품 세계를 차분히 곱씹어 보기에도 제격. 

측면의 통창을 통해 쏟아지는 자연광이 공간 전체에 밝고 산뜻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유 있게 배치한 테이블과 편안한 좌석 덕분에 오래 머물기에 부담이 없다. 다만, 방문 전 운영 시간을 반드시 살펴보길 권한다. 2026년 3월 기준,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오전 10시부터 17시 30분까지 운영하며 주말 및 법정 공휴일은 휴실이다.

아모멘토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1

MMCA 서울을 찾는 날이면 자연스레 샵아모멘토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미술관에서 도보로 5분 남짓한 가까운 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브랜드와 아모멘토 특유의 뾰족한 큐레이션을 시즌마다 새롭게 만날 수 있어서다. 샵아모멘토는 옷과 오브제, 공간의 분위기가 하나의 장면처럼 어우러지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클래식 미니멀리즘’을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이끈다.

장식을 최소화한 실내는 소재와 여백을 강조해 옷의 실루엣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구성했다. 벽면을 따라 정돈된 행거와 낮은 디스플레이 테이블이 이어지고, 곳곳에 여유를 둔 동선 덕분에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팔로마 울(Paloma Wool), 샌디 리앙(Sandy Liang), 세실리에 반센(Cecilie Bahnsen), 호프(Hope) 같은 패션 브랜드를 비롯해 액세서리와 프래그런스, 차 도구와 테이블웨어 등 라이프스타일 제품까지 폭넓은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열린송현 녹지광장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48-9

©현대자동차

이제 잠시 숨을 고를 차례. 서울 한복판에 오아시스처럼 자리한 열린송현 녹지광장이다. 이곳은 때마다 모습이 바뀐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일 것.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불리는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이 설계한 ‘휴머나이즈 월(Humanise Wall)’은 길이 약 90m, 높이 약 16m에 이르는 거대한 구조물로, 도시를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아냈다.

©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거대한 아치형 구조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또 다른 전시 ‘일상의 벽(Walls of Public Life)’이 이어진다. 건축가와 디자이너, 장인 등 24개 팀이 만든 24개의 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재료와 질감의 건축이 인간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탐구하도록 이끈다. 벽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호기심, 즐거움 같은 감각적 울림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듯하다. 지금은 비엔날레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머지않아 이곳은 송현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과 함께 진행되는 이 사업은 2029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 향후 또 다른 풍경으로 채워질 열린송현 녹지광장. 서울 시민이 즐겨 찾는 나들이 장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콤포타블 커피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16-1

열린송현 녹지광장에서 서울공예박물관, 안국역 1번 출구까지 이어지는 길목에는 늘 많은 인파가 교차한다. 365일 활기를 띠는 도심의 분위기가 조금 벅차게 느껴진다면, 윤보선길로 향해보자. 종로구 관훈동 113-1에서 재동 2-2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인근에 자리한 ‘윤보선 가옥’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통 한옥의 돌담이 이어지는 단정한 풍경 덕분에, 윤보선길은 안국 일대에서도 유난히 걷기 좋은 산책길로 꼽힌다.

윤보선길의 중간 지점에 콤포타블 커피가 있다. 퍼퓸 브랜드 그랑핸드(Granhand)가 선보인 카페로, ‘향의 일상화’를 추구해 온 브랜드 철학을 커피 경험으로 확장한 공간이다. 입구를 따라 ‘ㄱ’ 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내부에 앉은 사람과 골목을 걷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내부는 절제된 색감과 나무 소재의 가구로 채워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창가 좌석부터 테이블석, 벽면 벤치, 테라스 좌석까지 다양한 형태의 자리가 눈에 띈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을 때면, 바깥에 앉아 돌담을 따라 흐르는 윤보선길의 풍경과 계절의 공기를 만끽해도 좋겠다.

© 콤포타블 커피

콤포타블 커피의 시그너처로는 안국 칵테일, 그랑핸드 에이드, 너티 크림 라떼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에스프레소 마티니와 아포가토, 샤케라또처럼 커피를 활용한 음료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디저트는 버터 향이 풍부한 휘낭시에와 슈가 코팅을 입힌 슈가코트 휘낭시에가 대표적이며, 시즌에 따라 바스크 치즈케이크나 티라미수, 생딸기 케이크 같은 메뉴도 만날 수 있다. 

룻 안국

서울 종로구 율곡로1길 54-1

© 룻 안국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 윤보선길에서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방향으로 돌아가 보자. 인적이 드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 룻 안국이 모습을 드러낸다. 룻 안국은 한식의 익숙한 문법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합을 제안하는 모던 한식 다이닝 주점이다. 계절에 따른 제철 요리와 막걸리, 약주, 청주, 소주 등 다채로운 전통주를 함께 선보인다. 

룻 안국은 메뉴의 이름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미역 봉골레’, ‘닭발 트리빠’, ‘꼬들쌈’처럼 한국인의 소울 푸드를 재치 있게 변주한 접시들이 이어진다. 메인 메뉴뿐 아니라 ‘단새우’, ‘전복’, ‘만둣국’으로 구성한 스타터도 인상적이다. 특히 타르트 쉘 위에 참나물 포마쥬 블랑 소스를 얹고, 씻은 묵은지와 라임잎 드레싱으로 버무린 단새우를 더한 메뉴는 산뜻한 산미와 감칠맛이 어우러져 식사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연다.

© 룻 안국

이곳에서는 모든 전통주를 잔으로 주문할 수 있다. 무엇부터 시작할지 망설여진다면 ‘룻 시그니처 탁주’를 권한다. 오현균 오너 셰프의 조부가 경북 봉화에서 재배한 자두로 만든 청에 레몬 딜의 향을 더해 완성한 술이다. 부드러운 질감 위로 산뜻한 산미와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겹치며, 가볍게 피어오르는 여운이 인상적이다. 디저트처럼 화사하게 마무리되면서도 식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룻 안국은 한옥의 구조를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미감을 지녔다. 통창과 금속 자재로 단정한 분위기를 만들고, 공간의 중앙을 비워 중정을 완성했다. 책가도에서 착안한 진열장, 사랑채를 닮은 룸, 곳곳에 남겨둔 여백 등 한국적인 정서를 과장 없이 드러낸다. 사간동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보석 같은 공간. 외국인 친구와 함께 찾기에도 더없이 좋을 듯하다.

길보경 객원기자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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