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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9

표면 너머를 보기 위한 사진가의 노력

임준영 초대전 <그 너머에, 늘>, 한성필 초대전 <표면의 이면>
금호미술관에서는 두 사진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임준영 작가(b.1976)와 한성필 작가(b.1972)의 초대 전시다.

임준영 작가는 한국전쟁을 사진으로 기록한 조부 임인식 작가(1920-1998)와 도시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온 임정의 작가(b.1944)에 이어 3대째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주로 도시의 풍경과 현대 건축물을 작업 소재로 삼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 속 사람의 모습에 집중한 작업을 소개한다. 한성필 작가는 재현과 환경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간과 자연, 문명과 지구환경 등 폭넓은 주제를 다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세계 각국에서 촬영한 세 개의 연작과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임준영 작가의 시선

《그 너머에, 늘》

임준영, Museum project 2, 2008+202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40X60cm ​

‘주체’가 ‘대상’이 될 때

<Museum Project>(2008-2022) 연작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업이다. 뉴욕 자연사 박물관 내부를 촬영한 사진들과 박물관을 재현한 사진 설치 작품들로 구성된다. 임준영 작가는 자연사 박물관이 정교하게 연출한 자연 생태계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 화면에 담았다. 연출한 생태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아이의 교육 목적으로 방문한 듯 보이는 가족부터 데이트 중인 연인, 심지어 졸고 있는 관람객도 있다. 이들은 현실 속 자연이 아닌 박물관이 만든 모조 자연을 통해 ‘자연은 이런 모습이다’라는 표본을 학습하고 있다. 

임준영 작가의 사진 프레임 중앙에 배치된 또 다른 프레임에는 모조 자연이 있다. 사진을 본 관람자의 시선은 중앙부, 모조 자연으로 향한다. 궁금해진다.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은 자연이 처한 다양한 위기를 어떻게 전시하고 있을까?” 질문과 동시에 모조 자연을 바라보는 사진 속 사람들의 ‘태도’에 주목하게 된다. 그들의 태도는 자연과는 무관해 보인다. 장난스럽고, 일부는 나태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의 관람 태도는 임준영 작가의 프레임에 담기며 사진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에서 읽힌다.

임준영 초대전 B1층 Museum Project 전시 전경

시선을 돌리면 전시장 한편에 사진 설치 작업이 있다. 앞서, ‘주체’의 입장에서 자연사 박물관에 집중하는 대상을 바라봤다면, 이번에는 ‘대상’이 된다. 천장에 걸린 작업 <Layers 01>(2022)과 목재를 지지한 채 서있는 <Beyond Nature>(2022)는 관람자를 보는 대상으로 만든다. 동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연약한 재료인 천에 프린트된 모습이다. 관람자는 전시장을 거닐며 작품을 다각도에서 감상하게 된다. 

임준영, Like Water 01, 200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02x75cm
임준영, Like Water 03, 200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76x109cm ​

물이 된 도시 속 사람들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간을 구성하는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임준영 작가는 가장 바쁜 도시, 뉴욕에서 퇴근 시간에 일제히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는 그 모습이 마치 파이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같이 보였다고 했다. 자신이 받았던 도시 풍경의 인상을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작업실에서 별도 촬영한 물줄기를 한 가닥씩 세밀하게 보정한 뒤 뉴욕과 서울 등의 대도시 풍경에 합성했다. 그리고 인간의 활동력과 생동감을 암시하는 물줄기와 대비되는 기하학적 형태의 건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강조해 도시와 인간의 조합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단면을 제시하고자 했다.

한성필 작가의 시선

《표면의 이면》

한성필, Metamorphosis, 2011, 플렉시글라스에 피그먼트 프린트, LED 라이트박스, 120x162x6cm
한성필, Janus II, 2008, C-프린트, 180x245cm
한성필, The Dominion of Light, 2006, C-프린트, 147x117cm ​

실제와 환영 사이에서 

한성필 작가는 영국 런던에서 복원 공사 중이던 세인트 폴 대성당 건물 앞을 가리고 있던 대형 가림막을 봤다. 성당 기초 디자인이 그려진 가림막을 본 그는 그간 자신이 고민해왔던 이미지의 ‘재현’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한다. <façade>(2006-2011) 연작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파사드façade는 건물의 외벽을 일컫지만, 유럽에서는 역사적 건축물이나 문화재 복원을 위해 설치한 차단막을 가리키기도 한다. 실제와 가상이 혼재돼 있는 단어다. 가림막은 실제 건물의 외벽 모습처럼 보이며, 외벽을 재현함으로써 실제 건물의 모습을 담는다. 그렇게 실제 건물과 차단막은 자연스럽게 섞인다. 현실과 판타지, 사진과 회화 등 상반되는 두 개의 요소는 한 화면에 혼재돼 경계를 흐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한성필, Ground Cloud 052, 2015, C-프린트, 120x180cm
한성필, Ground Cloud 036, 2005,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2x163cm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포착하기

언뜻 보기에 목가적인 풍경을 담고 있는 듯한 <Ground Cloud>(2005-2015). 풍경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구름으로 추정되는 형상이다. 한성필 작가는 2005년, 프랑스 소도시 고성 지대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하늘에 피어오른 구름 같은 형상을 보게 된다. 그 형상은 구름이 아니었고, 인근 원자력 발전소에서 강물을 냉각하며 발생한 수증기였다. 풍경만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현실을 카메라는 포착한다. 작가는 형태를 변형하거나 인위적으로 조작을 가하는 등의 방식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드러냄으로써 대자연을 향한 경외감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찰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한성필, Vestige of Time II, 2014, 한지에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99.5x199cm
한성필, Vestige of Time, 2020, 이미징 필름 프린트, 77x116cm
한성필, Weight of Time XI, 2017, C-프린트, 150x300cm

한성필 작가의 <Polar Heir>(2014-2020) 연작은 자연과 문명, 자원 개발과 지구 환경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그는 리서치를 진행한 뒤 카메라를 들고 극지방을 여행했다. 그리고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는 빙하와 과거의 산업 지역 등을 기록했다. 작가는 자신이 포착한 풍경을 크게 인화해 자연이 지닌 거대함과 숭고함을 부각했다. 동시에 무너져 내리는 빙하의 모습과 흘러가는 바다의 유속을 정지된 이미지로 제시했다. 그는 사진을 통해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거나, 목소리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지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실에서는 직접적으로 보기 어려운 장면들을 포착하고, 그것의 현실태를 지시한다. 대자연의 엄청난 규모와 더불어 붕괴되고 흘러내리는 빙하를 보고, 그것을 해석의 영역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다.

한성필 초대전 3층 Ground Cloud 전시 전경
한성필 초대전 3층 Polar Heir 전시 전경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금호미술관

장소
금호미술관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
일자
2022.08.05 - 2022.10.23
하도경
수집가이자 산책자. “감각만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라는 페소아의 문장을 좋아하며, 눈에 들어온 빛나는 것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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