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4

사색과 대화의 거실, 필로소피라운지 ①

: file no.1 : 오래된 골목의 위스키 & 디저트 바

Briefing

필로소피라운지

여전히 위스키의 인기가 뜨겁다. 관세청 무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위스키 수입량은 지난해 대비 50% 이상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백화점과 편의점에서는 발 빠르게 위스키를 구하려는 이들의 오픈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혼술 문화의 확산과 하이볼의 폭발적인 인기를 등에 업은 위스키는 2~30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대중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위스키 & 디저트 바 필로소피 라운지가 지난 7월 충무로에 문을 열었다.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만들자’라는 모토로 다양한 공간 경험을 설계하는 서비스업 회사 현현의 10번째 직영 매장. 직접 만든 시그니처 위스키와 디저트를 즐기며 고요한 사색과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하는 이곳은 기존의 위스키 바가 가진 무겁고 어려운 이미지를 벗어나 대학생부터 노인까지 부담 없이 머물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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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거실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중구 초동, 명보극장 사거리. 와플대학과 메가커피 사이 먹자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족히 10년은 넘어 보이는 노포들이 펼쳐진다. 보리밥 ・ 중화요리 ・ 닭한마리 ・ 복요리 ・ 노래방 등 어느 하나의 색깔로 정의하기 어려운 길을 걷다 보면 낡고 좁은 골목을 은은한 노란 불빛으로 밝히고 있는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를 대신모텔 아래, 낯선 분위기를 풍기며 발걸음을 이끄는 위스키 & 디저트 바 필로소피 라운지다.

노포가 즐비한 골목길에 위치한 필로소피라운지. 내부가 통 가늠되지 않는 문을 열면, 다른 세상에 온 듯 아늑한 분위기의 공간이 입장객을 맞는다.
모든 것은 거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필로소피 라운지의 출발은 현현 하덕현 대표의 사적인 기억이다. 서울로 상경해 동생과 오래 살았던 그는 독립을 하면서 처음 ‘거실’의 존재를 실감하게 된다. 침대도 옷장도 싱크대도 없는, 말 그대로 뚜렷한 목적과 기능이 없는 공간이었다. 가족과 한집에서 살 때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나만의 여유 공간이 생긴 셈인데, 하덕현 대표는 여길 성급하게 채우기보다 그대로 비워 둔 채 이름을 붙여주는 쪽을 택한다. 필로소피 라운지. 좋은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고 멍하니 상념에 잠겼다. 빛과 음악을 위한 조명과 스피커를 들였다. 이따금 누군가를 초대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거실은 사색과 대화가 흐르는 일상의 귀중한 장소가 되었다.

필로소피라운지의 시그니처 '딸기 위스키'와 위스키로 만든 '하이볼' 그리고 페어링 디저트로 내어주는 초콜릿 한 조각.

차분한 사색과 대화에 위스키를 곁들인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개다. 풍부한 향을 느끼는 게 중요한 술이므로 급하게 마시지 않아도 되고, 거창한 안주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마셔도 이완되는 몸은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을 한층 가라앉혀 준다. 혼자 있을 때와 함께 있을 때 모두 그 순간의 분위기를 천천히 깊어지게 만드는 술이 위스키인 것이다. 지난날의 인상적인 기억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하덕현 대표는 충무로의 오래된 골목에 또 다른 거실을 만들어 냈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세련되게 재탄생했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무의미하고 시시한 생각에 시달릴 때,
  방해 없이 대화에 몰입하고 싶을 때 필로소피 라운지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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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지도 어렵지도 않은 라운지 바

여러모로 호텔 라운지 바가 연상되는 공간이다. 넓은 면적과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마감, 벽을 따라 두른 소파와 각 좌석을 분리해 주는 불투명 유리 파티션, 낮고 부드러운 조도에 쾌적한 화장실까지. 문을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라운지 바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여유로운 스케일과 탁 트인 시야를 설계함과 동시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신경 썼다. 직원이든 다른 손님이든 눈치 보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편하게 대화하라는 뜻이다.

 

일반적인 위스키 바와 달리 여기엔 바 테이블이 없다. 현란한 스킬과 능숙한 스몰 토크를 겸비한 바텐더도 보이지 않는다. 바텐더의 퍼포먼스를 감상하거나 바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혼자만의 시간 혹은 일행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필로소피 라운지가 기대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도의 응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직원은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이 역시 손님의 편안함과 직원의 효율성 모두를 세심하게 궁리한 결과다. ‘혼자 온 손님이니까 말 걸어 줘야 할까?’, ‘이쯤에서 술 한 잔 더 시켜야 하려나?’ 따위의 사소한 고민이 들지 않는 바에서는 모두가 부담 없이 머무를 수 있을 테니까.

브라운과 그린 올리브의 우아하고 차분한 색 조합은 대리석 계단의 단차를 기준으로 나뉜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가구는 현현의 다른 매장들을 작업하며 합을 맞춰본 적 있는 ‘피쉬팜’에서 제작을 맡았다. 중앙에 놓인 둥근 형태의 등받이 의자 1종을 제외하고는 전부 이번에 새로 만든 것. 그중에서도 벽에 붙인 푹신한 소파는 라운지 바라는 콘셉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다. 차분한 느낌의 목재와 낮은 조도가 매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구성하는 가운데, 지나치게 고급스럽고 묵직한 이미지만 남기는 걸 피하고자 소파 시트에 넣은 그린 올리브색이 공간에 포인트를 더한다.

착석감이 부드러운 소파와 의자, 핸드폰을 넣어두는 목함과 모래시계는 공간에 머무는 동안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구석구석 눈길이 가는 장치들이 많다. 백차 블렌딩 티를 냉침해 내어주는 웰컴 티 담화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뜻처럼 새로운 사색과 대화를 가볍게 열어주고, 휴대폰을 넣어둘 수 있는 나무 보관함은 잠시나마 외부의 자극을 차단한 채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볼 것을 은근하게 권한다. 테이블 위에 놓인 모래시계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오브제인 동시에 이곳에 흐르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는 고요한 순간을 선물한다. 이외에도 식음료의 사진과 한글명, 상세 설명이 정확히 표기돼 있어 주문 시 헤매지 않게 도와주는 앨범형 메뉴판과 굳이 멀리까지 찾아가거나 소리 높여 부를 필요 없이 직원을 찾을 수 있는 호출 벨은 매장 이용의 편의성을 높여주는 사려 깊은 디테일이다.

필로소피라운지에서는 시그니처 위스키를 베이스로 토닉, 탄산수, 두유 세 종류의 하이볼을 주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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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즐거움을 깨우는 위스키와 디저트

위스키와 디저트는 ‘기분을 좌우하는 식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생존을 위해, 배를 채우기 위해 섭취하는 필수 요소가 아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 먹는다. 풍부한 향과 맛을 음미함으로써 감각을 깨우고 싶을 때 먹는다. 기쁠 때 혹은 슬플 때, 그때의 감정을 돋우거나 누그러뜨리고 싶어서 먹는다. 고단한 하루 끝에 이 깊숙한 골목까지 찾아와 주는 이들을 위해 오늘도 필로소피 라운지는 기분 좋은 한 모금, 기분 좋은 한 입의 순간을 선사한다.

필로소피라운지의 시그니처인 '마롱 쇼콜라 위스키'와 쑥 위스키로 만든 '쑥 위스키 두유 하이볼'. 왼쪽은 캐러멜 소스에 적신 촉촉한 질감의 '버터 스카치 푸딩', 오른쪽은 바닐라&금귤, 브랜디 체리, 깔루아&아몬드 세 가지 맛의 '위스키 샌드'.

8종의 시그니처 위스키부터 싱글 몰트에 블렌디드까지 다양한 위스키 옵션이 준비돼 있다. 이외에 칵테일과 맥주, 와인도 주문 가능해 취향에 맞는 술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은 넣어 둬도 된다. 다만 필로소피 라운지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위스키가 정답일 것. 쑥 ・ 마롱(밤) ・ 청사과 ・ 백도 ・ 목밀 등 처음 위스키를 접하는 이들의 부담을 덜고자 여러 재료를 블렌딩해 꾸준히 개발하며 둔감한 사람마저도 눈이 번쩍 뜨이는 개성 강한 향미가 인상적이다. 모든 위스키는 샷과 보틀 외에 하이볼로도 마실 수 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베이스로 체리 콩포트, 라즈베리 젤리, 초코 그래놀라, 누가틴, 코코넛 머랭, 생 체리 등을 겹겹이 쌓은 뒤 버번 바닐라 시럽으로 마무리한 '미드나잇 파르페'.

코와 혀를 깨우는 위스키 한 모금 뒤로 달큼한 디저트를 크게 한 스푼 밀어 넣는 기쁨. 알록달록한 시그니처 위스키 라인업에 밀리지 않는 시그니처 디저트 역시 눈과 입 모두를 사로잡는다. 계절과일 청을 얹은 레어치즈케이크 위에 젤리 베일이 꽃잎처럼 덮인 후르츠 무스케이크, 체리와 라즈베리 젤리, 초코 그래놀라와 코코넛 머랭 등 미묘하게 다른 단맛과 식감을 가진 풍성한 재료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어우러지는 미드나잇 파르페는 무르익어 가는 밤의 대화를 풍요롭게 채워줄 것이다.

프로젝트 캐비닛은 참신한 기획과 브랜딩, 디자인으로 트렌드를 이끄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헤이팝 오리지널 시리즈 입니다. 매주 목요일, 영감을 주는 프로젝트들을 꺼내 보세요.

[Project Cabinet] 사색과 대화의 거실, 필로소피라운지

▶ : file no.1 : 오래된 골목의 위스키 & 디저트 바

▶ : file no.2 : 세상에 필요한 서비스를 고민하는 일

▶ : file no.3 : 현현이 만든 공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글 김정현 객원 필자

사진 표기식

프로젝트
[Post-It] 필로소피라운지
장소
필로소피라운지 (오픈 시기: 2023년 7월 26일)
주소
서울 중구 충무로 21-21
기획자/디렉터
현현
크리에이터
인테리어 | soje, 현현, 공간 시공 | 바하 H&D, 가구 제작 | 피쉬팜, BI | 현현, 일러스트 | 곽명주
김정현
프리랜스 에디터. 동시대의 흥미로운 사람과 장소와 콘텐츠를 소개한다. 에세이 『나다운 게 뭔데』를 썼고, 유튜브 채널 <현정김>을 운영한다. 뭘 다루든 은근슬쩍 내 이야기를 껴 넣을 때 가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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