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2

AI로 만드는 또 다른 세계, 디지털 디자이너 김지현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그리는 이미지
Birth of Mutualism, 2023, Generative AI Art

싱가포르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낮에는 디지털 디자이너로 일하고 밤에는 아티스트로 개인 작업을 하며 디지털 노매드의 하루를 완성하는 디자이너 김지현. 브랜딩, 그래픽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여러 디지털 매체로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녀는, 요즘 인스타그램 계정 @an_realphoto(언리얼포토)를 운영하며 AI 아트를 필두로 본인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다. AI 명령어인 프롬프트에 본인이 얻고자 하는 이미지와 관련된 텍스트를 입력하여 조합하는 이미지 생성형 AI를 사용해 최근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Interview with 김지현 디자이너

ㅡ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말에 많은 것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이 단어로 본인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미디어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서 미디어에 활용되는 여러 디자인을 탐구하고 연습할 기회가 많았죠. 자연스럽게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디자인을 하게 되었고 그게 일의 연장선으로 이어졌어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고 보니 브랜드에 필요한 다채로운 시각 언어를 개발하는 게 브랜드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넓은 범위의 말이 제가 일하는 방식과 모습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ㅡ 디자이너로 정식적인 일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현재 다니고 있는 싱가포르에 위치한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펜듈럼 디자인(Pendulum Design)’에서 일 년 전 그래픽 디자이너 업무를 한 게 첫 디자이너 생활의 시작입니다. 리모트 워크를 하고 있어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고 싱가포르와의 시차로 인해 11시에 출근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있습니다.

 

 

ㅡ 월간 <디자인> 7월호(541호)에 AI 작업인 ‘평온한 사과’가 소개되기도 했죠.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AI 작품을 보고 연락을 주셨는데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매우 기뻤습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닌데 오롯이 저의 애정으로 하는 일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소개되는 기회까지 이어졌다는 게 참 감사했어요. 어딘가에 소개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잡지를 보신 분들에게 저를 알릴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Nostalgic Future, 2023, Generative AI Art
Overthinking, 2023, Generative AI Art

ㅡ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AI 아트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계정에 올라온 작업물을 살펴보면 패션매거진 화보로 나올 법한 이미지부터 브랜드를 재해석한 이미지까지, 폭넓은 이미지 생성 작업이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생성형 AI를 통해 AI 아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은 언제부터 품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새로운 게 나오면 시도를 해보는 타입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던 시기가 있었죠. 저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텍스트를 입력해서 원하는 이미지를 뽑아낼 수 있는 이미지 생성형 AI에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시도해 본 것뿐이었는데 하다 보니 잘 맞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1년도 안 되었어요.

 

 

 호기심에 시작해서 확장하게 된 케이스네요. 어떤 프로그램으로 처음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미드저니(Midjourney)’를 통해 입문했습니다. 프로그램을 찾아보던 당시 가장 유명했어요. 접근성도 좋고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아웃풋이 좋은 게 장점인 것 같아요.

Mushrooms in Full Spectrum, 2023, Generative AI Art
Mushrooms in Full Spectrum, 2023, Generative AI Art

ㅡ 생성형 AI 아트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과 여러 툴을 이용하지 않고도 작업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전에는 혼자서 만들 수 없었던 영역의 이미지를 만드는 게 AI 아트로는 가능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패션화보 사진의 경우 모델,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롭 등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이 모든 걸 준비하지 못하거나 현실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면 원하는 이미지를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프롬프트를 통해 원하는 이미지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점이 만족스러워요. 마음에 드는 프롬프트가 완성되었다면 변주를 주어 반복하면서 시리즈 형태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부분도 매력적입니다.

 

 

ㅡ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게 어떤 이미지로 도출이 될지 모른 채 기대를 품고 입력하는 거잖아요.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수정의 수정을 거듭할 것 같습니다. 시각적으로 만족스러운 이미지가 생성되길 바라나요, 아니면 예상 밖의 이미지가 나와서 ‘오 이거 좀 재밌는데?’ 같은 흥미로움을 주길 바라나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보통은 만들고 싶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이미지를 위해서 프롬프트 수정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 밖의 이미지를 만나기도 하고 그걸 발전시켰을 때 만족스러운 이미지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우연적인 방식이 AI 아트만의 묘미라 할 수 있죠.

 

 

ㅡ AI 아트 작업 방식도 디자이너마다 다르죠. 요즘은 어떻게 작업을 진행하는지 그리고 하나의 이미지를 생성하는데 대략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저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합니다. 이를테면 표현방식은 현실적인데 대상이나 상황은 비현실적인 이미지들 말이에요. 그래서 비현실적인 이야기 즉, 그런 스토리를 가진 프롬프트를 제작하고 현실적인 표현방식은 AI에 맡기는 형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또 하나의 프롬프트를 미드저니 속 여러 버전에서 테스트해 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버전 테스트를 하다 보니 저만의 데이터가 쌓여서 이제는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버전을 사용했을 때 결과가 좋을지 감이 와요.

Spring, 2023, Generative AI Art

이미지 하나를 생성하는데 대략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작업을 의뢰해 주실 때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궁금해하더라고요. 많은 튜토리얼이나 텍스트를 입력하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짧은 시간이 소요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시간이 단축되는 건 사실이지만 정말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십 번 수정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짧게는 몇 분, 길게는 며칠이 걸리기도 해요. 아주 가끔은 시간을 들여 작업을 해도 원하는 이미지를 얻지 못할 때도 있죠.

Blossom Delights_pizza, 2023, Generative AI Art
Blossom Delights_popcorn, 2023, Generative AI Art

ㅡ 저는 개인적으로 ‘블러썸 딜라이츠(Blossom Delights) 시리즈가 인상 깊었습니다.

‘블러썸 딜라이츠’는 꽃으로 만든 레시피북을 먹은 한 소녀가 그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판타지 같은 짧은 이야기에서 출발했어요. 동화 같으면서도 시각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미드저니를 통해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한 후 몇 가지를 추려서 SNS 계정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ㅡ 꽃을 좋아하시나 봐요. 꽃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꽃을 비롯한 자연물에서 오는 비정형적 형태를 좋아합니다. 그런 형태가 제 작업물에 많이 녹아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AI나 3D 등 기술을 사용해 시각적으로는 편안하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Escape to Serenity, 2023, Generative AI Art

ㅡ 작가 본인이 뽑은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은 무엇일지 궁금해요.

최근에 업로드한 ‘이스케이프 투 세레니티(Escape to Serenity)’입니다. 작품을 보면 고요하면서 포근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이미지라 가장 애정이 가요.

 

 

ㅡ 김지현 디자이너가 생각하기에 지금 디자인 씬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AI 아트는 어느 위치인 것 같나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성형 AI를 사용해 봤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꾸준히 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도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업무를 진행할 때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모든 디자인 씬에서 친숙하게 활용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언제든 실무에서 아주 유용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능들이 추가되고 새로운 AI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제는 낯선 눈초리로 바라보는 때는 지났다고 봅니다. 거부할 수 없는 툴이 되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도움을 받으며 영리하게 사용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ㅡ ‘AI 아트 저작권을 누구에게 부여해야 하는 것인가’와 같은 지적재산권 문제, AI 활용은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에요. 그래서 AI 규제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디자인 영역에서 볼 때 AI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나의 기술로서 기존 디자인 생태계와 잘 융화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아주 복잡하고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규제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AI를 사용했는데 아무런 표기를 하지 않는 건 큰 혼란은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봐요. AI를 사용한 작품임을 분명하게 명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역시 AI를 하나의 툴로 인지한다면 그리 복잡한 문제는 아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용해 디자인을 해왔듯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셈이라고 이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Nostalgic Future, 2023, Generative AI Art
Nostalgic Future, 2023, Generative AI Art

ㅡ 자아실현과 타인이 내 작품을 보는 시선 사이에서 김지현 디자이너는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둘까 궁금해요.

저에게는 두 가지 자아가 있어요.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클라이언트가 있기 때문에 제 자아실현보다는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죠. 하지만 제가 아티스트로 저만의 작업을 할 때는 철저히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고 봐요. 그러나 어떤 작업을 할 때든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학습된 아름다움 또는 취향의 교집합들이 모든 창작 활동에 스며든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가끔은 다수가 좋다는 작품이 저에게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할 때도 있어요. 이럴 때가 가장 아이러니하죠.

 

 

ㅡ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하고 싶은 건 너무 많고 시간은 한정적인 게 가장 고민이에요.

 

 

ㅡ 하고 싶은 그 많은 것 중 실행에 옮긴 게 있다면요?

리모트 근무를 하고 있어서 디자이너 동료들과 대면으로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적어요. 소통의 부재가 큰 고민 중 하나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만나며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이너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함께할 사람들을 찾았어요. 현재는 ‘워크베이커리(@work._.bakery)’라는 모임을 통해 2주에 한 번 개인 아트 워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Fashion in heart, 2023, Generative AI Art

ㅡ 최근 가장 몰두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디지털 작업을 실제 세상에 어떻게 옮겨오면 좋을까 고민하며 하나씩 실천하고 있어요. 디지털로 봤을 때의 감동을 현실에서도 구현하고 싶습니다. 디자이너로서는 글로벌 단위 대형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고 개인 작업으로는 개인전을 꼭 열고 싶어요. 커리어의 목표라기보다 즐기면서 오래 일하고 싶은 게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김지민 객원 필자

진행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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