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8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만나는 지속 가능한 미래

플라스틱, 세상을 재고하다
수십 년 동안 평온한 소비와 혁신의 상징이었던 플라스틱은 오늘날 애증의 산물로서 논쟁의 중심에 있는 물질이다.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플라스틱은 많은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지만, 플라스틱 붐의 역효과가 극적으로 가시화되면서 그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다.
Installation view, »Plastic: Remaking Our World« © Vitra Design Museum Photo: Bettina Matthiessen
Installation view, »Plastic: Remaking Our World« © Vitra Design Museum Photo: Bettina Matthiessen

지난 3월 26일부터 오는 9월 4일까지 열리고 있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전시 <플라스틱, 세상을 재고하다(Plastik, Die Welt neu denken)>는 20세기에 급부상한 플라스틱의 다양한 특성과 기능의 스펙트럼, 트렌디한 현대 디자인 개발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환경 파괴 문제와 그 결과를 분석하고 보다 지속 가능한 플라스틱 사용을 위한 솔루션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재료의 역사, 현재 및 미래를 탐구하는 흥미로운 여정이다.

 

전시는 플라스틱의 생산과 사용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리는 대형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문을 연다. 때묻지 않은 자연의 시대를 초월한 장면은 지난 100년 동안 플라스틱 생산에 관한 영화들과 병치되어 점점 더 빠르고 저렴한 생산 산업에 대한 유혹을 보여준다. 모든 합성 플라스틱의 기반이 되는 화석 원료인 석탄과 석유가 형성되기까지는 2억 년 이상이 걸렸지만, 플라스틱은 불과 한 세기 만에 우리 시대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가 된 것이다.

Installation view, »Plastic: Remaking Our World« © Vitra Design Museum Photo: Bettina Matthiessen
Installation view, »Plastic: Remaking Our World« © Vitra Design Museum Photo: Bettina Matthiessen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플라스틱의 다양한 재료의 개발과 발전 과정, 그리고 플라스틱이 인간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1860년대에 존 웨슬리 하야트(John Wesley Hyatt)에 의해 발명된 셀룰로이드를 시작으로, 1907년 리오 베이클렌드(Leo Beckeland)가 자연에서 발견되는 분자를 포함하지 않는 최초의 완전한 합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를 발명하여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재료로서 입지를 굳혔다.

Bakelite leaflet, 1930s, Courtesy of Amsterdam Bakelite Collection

최초의 플라스틱은 이렇게 개인 발명가나 용접공들에 의해 개발되었지만, 빠르게 성장한 석유화학 산업의 영향으로 인해 1920년대부터는 Dow, Du Pont, Imperial Chemical Industries 및 IG Farben과 같은 회사가 주도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석유 모더니즘 시대의 플라스틱 산업은 수요 중심이었다. 그러나 1920-30년대에 고분자 과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확산되면서 주요 석유회사의 화학자들은 부산물로부터 새로운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폴리스티렌, 폴리비닐, 나일론 등이 등장하게 된다.

Installation view, »Plastic: Remaking Our World« © Vitra Design Museum, Photo: Bettina Matthiessen © VG Bild-Kunst, Bonn 2021

이후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전문 산업디자인 업체는 플라스틱의 새로운 가능성을 빠른 속도로 뒤쫓았다. 1920년대는 가정용 전기화의 시작이었고, 전등 스위치, 소켓은 물론 라디오, 전화 및 대형 스피커와 같은 초기 전기 제품에 사용되는 저렴한 산업 자재로 플라스틱보다 유용한 소재는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플라스틱 산업의 부흥을 이끈 촉매제였다. 고무, 실크, 강철과 같은 전략적인 소재를 보존해야 하는 필요성에 따라 플라스틱 산업은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1930년대 비행기 캐노피에 사용되어 파손의 위험을 최소화 한 플렉시글라스, 낙하산과 모기장 및 해먹에 사용된 나일론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폴리에틸렌은 가벼우면서도 우수한 전류 절연 효과가 입증되어 항공기에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이동식 레이더 스테이션에 이상적인 소재였다.

Installation view, »Plastic: Remaking Our World« © Vitra Design Museum Photo: Bettina Matthiessen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은 미국에서 연간 약 1억 kg에서 거의 4억 kg으로 4배 증가했다. 전쟁 후 생산 능력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석유 산업은 다시 주도권을 잡았고, 수요 중심 산업에서 공급 중심 산업으로의 변화를 불러왔다. 청소가 용이하고 위생적인 포미카 카운터와 비닐 벽지, 타파웨어(Tupperware) 같은 식기류와 레고, 바비 인형과 같은 장난감류가 가정에 보급되었고, 바이닐 레코드는 쉽게 부서지는 셸락 디스크를 대체했다.

Panasonic Toot-a-Loop R-72S radio, 1969–72 © Vitra Design Museum, Photo: Andreas Sütterlin

또 다른 전시장에서는 우주 여행에 대한 관심이 급증함에 따라 플라스틱의 유토피아적 잠재력이 전면에 부각된 디자인 오브제들을 소개한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반영된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영화와 수많은 잡지 표지를 장식했던 핀란드 디자이너 에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의 ‘볼 체어(Ball Chair)’는 개인 우주 캡슐에서 모티브를 얻은 디자인으로 신소재인 화이버글라스를 사용해 제작된 최초의 작품이다. 세계적인 이탈리아 디자이너 지노 사파티(Gino Sarfatti)의 ‘문 램프(Moon Lamp)‘는 달에 착륙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며, 역시 신소재인 폴리머 아크릴로 만들어졌다. 매력적인 파나소닉의 Toot-a-Loop 라디오는 60년대 후반 진보적인 플라스틱 디자인을 잘 구현한 제품이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틱에서 파생된 직물은 파코 라반(Paco Rabanne)과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d)과 같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으며, 나일론, 라이크라, 네오프렌, 마일라 및 테플론을 포함한 20개 이상의 합성 직물로 제작된 아폴로 시대 우주복을 탄생시켰다.

Bär+Knell, Müll Direkt, 1994 © Vitra Design Museum, photo: Jürgen Hans

오늘날 플라스틱은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며 플라스틱이 없는 일상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특히 의료 부문에서는 생명을 구할 수도 위협할 수도 있는 양가적 성향이 분명히 드러난다. 토양 및 해양 오염을 비롯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각되고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에 이르는 환경 파괴 이슈는 엄청난 생태학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시는 2000년대에 들어서 많은 디자이너와 건축가가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제인 엣필드(Jane Atfield), 베어+크넬(Bär+Knell), 엔초 마리(Enzo Mari) 등의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디자인 작품들이 그것이다.

The Ocean Cleanup, system 002 deployed for testing in the Great Pacific Garbage Patch, 2021 © The Ocean Cleanup

전시회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강과 바다에 흩어져 있는 폐기물과 미세 플라스틱을 회수하기 위해 개발된 몇 가지 중요한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맥락에서 “Ocean Clean Up”, “Everwave” 및 “Great Bubble Barrier”와 같은 프로젝트는 불필요한 포장과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줄이려면 제품 자체의 수명 주기를 고려한 설계 접근 방식을 적용한 케이스다. 또한 조류를 기반으로 한 3D 프린팅 플라스틱 또는 미생물의 도움으로 생산된 바이오플라스틱의 사용을 다루는 네덜란드 디자이너 Klarenbeek & Dros의 연구 논문이 소개되며, 마지막으로 미생물을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플라스틱 알갱이로 만드는 퇴비화 가능 화장품 포장재를 개발한 영국 스타트업 Shellworks와 플라스틱 분해 효소 개발을 연구한 포츠머스 대학과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의 프로젝트도 살펴볼 수 있다.

Shellworks, jars made from Vivomer, a bioplastic produced with the help of microbes, 2021 © Shellworks, Photo: Catharina Pavitschitz
Klarenbeek & Dros in collaboration with Luma, cultivation of micro algae for biopolymers photo: Antoine Raab, courtesy of Luma

전반적으로 <플라스틱, 세상을 재고하다(Plastik, Die Welt neu denken)>는 플라스틱 소재에 대한 비판적이지만 차별화된 자료들을 제공하는 전시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진행한 디자이너, 과학자, 관련 활동가와의 인터뷰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 산업, 연구가 함께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 방법은 당장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전시는 이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고 질문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어떻게 플라스틱에 의존하게 되었을까? 플라스틱은 어떤 영역에서 필수이며 또 어떤 영역에서 줄이거나 대체 가능한가? 마지막으로 플라스틱을 보다 지능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플라스틱의 미래에 대해 재고해 볼 수 기회를 주는 본 전시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에서 막을 내리고, 가을에는 스코틀랜드 V&A 던디(V&A Dundee)로, 2023년 봄부터는 리스본의 마트 뮤지엄(MAAT Museum)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김정아 해외 통신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프로젝트
<플라스틱, 세상을 재고하다(Plastik, Die Welt neu denken)>
장소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일자
2022.03.26 - 2022.09.04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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