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Space Developer] 2. 구체적으로 상상한 것으로 채운 공간들

남준영 TTT 대표
공간 기획의 시대. 지역의 맥락과 문화를 살피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헤이팝이 ‘스페이스 디벨로퍼’ 시리즈를 통해 창의적인 공간 기획자들을 소개합니다.

스페이스 디벨로퍼 시리즈로 만난 두 번째 인물은 남준영 TTT 대표다. 2019년 서울 용산구에 오픈한 효뜨는 마치 베트남의 어느 도시를 연상케 하는 공간 분위기와 맛깔나는 요리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후 론칭한 F&B 브랜드 남박, 꺼거, 키보 역시 확실한 콘셉트와 콘텐츠를 갖춰 호응을 얻는 중이다. ‘Time to Travel(여행할 시간)’이라는 뜻으로 지은 ‘TTT’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남준영 대표는 낯선 땅의 정취가 깃든 공간을 만들어낸다. 더 큰 꿈을 꾸는 그에게 브랜딩이 훌륭한 공간에 대해, 용산이라는 상권에 대해 물었다.

남준영 TTT 대표 ⓒ헤이팝

Interview with 남준영 TTT 대표

— 2019년 서울 용산구에 연 효뜨가 첫 매장이다. 왜 용산이었나.

용산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용산이 익숙했다. 첫 매장이었기에 대형 상권에 들어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데다, 여러 매장이 빼곡히 늘어선 북적이는 지역은 그때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당시 용산에서 느껴졌던 운치, 고즈넉함이 좋았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근에 직장이 많아 직장인 수요가 확보되고, 교통이 편리해 접근성이 좋을 거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제 효뜨를 열던 때와는 거리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쉽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퇴근 후 한잔할 장소의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기도 하니 아쉬워만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 첫 매장부터 브랜딩을 각별하게 생각한 듯 보인다. 효뜨는 음식뿐 아니라 콘셉트와 인테리어 등으로도 화제가 됐다. 초반부터 브랜딩의 중요성을 크게 고려한 건가?

정교하게 계획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사업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방문한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일례로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식사를 하면 기분이 좋을지, 보다 구체적으로는 낮에는 어떤 노래가, 밤에는 어떤 노래가 나오면 더 나을지 상상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상세하게 그려보려고 했다. 또 베트남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었으니까, 베트남을 여행하며 만났던 인상적인 장면을 계속 떠올려 봤다. 마치 전시장을 손수 꾸미는 느낌으로.

2019년 오픈한 용산 효뜨. 사진 출처: TTT 인스타그램(@ttt.corp)

— 2019년 효뜨, 2020년 남박, 2021년 꺼거, 그 후 키보와 사랑이 뭐길래, 굿손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다. 사업을 확장하기로 선택하는 것부터 실제로 추진하기까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거칠게 말하자면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경험이 많지 않으니 하고 싶어지면 곧장 뛰어들 수 있었다. 또 언제나 ‘전에 없던 걸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예전에 비해서는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신중해진 만큼 브랜드가 전달해야 하는 가치, 보다 본질적인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 그 본질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좀 더 듣고 싶다.

각 브랜드의 방향성을 조정하는 일이랄까? 어떤 브랜드는 점포 수를 늘리며 확장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브랜드는 아예 다른 분야로 다각화할 수도 있지 않나. 브랜드가 다섯 개라면, 전체를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각 브랜드에 맞도록 세부적인 방향성을 계획하는 일도 중요하다. 내가 만든 브랜드 하나하나를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공무원이지만 누구는 가수일 수도, 또 다른 사람은 엔지니어일 수도 있다. 같은 사회 속에서 다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 TTT의 브랜드들도 각기 그렇게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 그렇다면 첫 브랜드이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공간인 효뜨는 어떤 방향성을 취하려 하는지 궁금해진다.

사람의 연령에 비유하자면, 효뜨는 10대, 20대를 지나 30대, 40대를 향해가는 브랜드다. 이제 더 이상 힙한 브랜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많이 소비된 공간인 셈이다. 효뜨는 이제 오랜 친구 같은 브랜드로 나아갈 때다. 그래서 요즘은 효뜨 공간을 기획하고 채울 때 ‘모두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특징을 부각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베트남 식당 효뜨’로 알려졌다면 이제는 그 수식 대신 ‘아시안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그래서 어린이 메뉴를 만든다든가, 매장 기획 단계부터 인테리어에도 그 의도를 반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TTT 사무실 곳곳에 쌓인 책들 ⓒ헤이팝

— 하나의 공간을 준비하면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있다면.

‘누구에게 선보일 것인가?’를 깊이 고민한다. 이 상권이라면 누가 찾아올 것이고,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는 무엇일지, 그들을 만족시키는 한편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생각하는 편이다.

 

— 공간의 콘셉트가 중요해지면서 콘셉트를 부각한 공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러한 공간들을 방문해 보면 유독 빛나는 곳도 있지만 무언가 어설프다고 느껴지는 곳도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지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한가 아닌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 갖추는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왜 이것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공간의 콘셉트나 분위기에 매우 예민한 소수, 그리고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그저 편안하게 공간을 즐기기를 원하는 다수를 두루 만족할 수 있도록 균형을 잡는 일도 중요하다.

홍콩 음식을 선보이는 꺼거 외관. 출처: TTT 인스타그램
꺼거의 내부 디테일. 출처: TTT 인스타그램

— 키보를 준비하며 문화기획사 TTT를 설립했다. TTT를 ‘문화기획사’라고 정의한 이유는.

효뜨, 남박, 꺼거를 만들고 키보를 준비하면서 좀 더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생긴 후 함께 해외에 나가면 놀이터를 자주 찾게 됐다. 놀이터에 앉아 있다가 문득 ‘언젠가 내가 이런 놀이터 같은 공공시설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일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만일 내가 외식업에만 집중하고 싶었다면 효뜨가 전성기일 때 효뜨를 크게 확장하는 선택을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 TTT 설립 전과 후, 무엇이 크게 달라졌나.

설립 전에는 모든 일을 혼자서 했다. 인테리어부터 공사까지. 함께하면 2주 걸릴 일을 혼자 두 달 반을 들여서 했다. 나중에 전문가들과 협업하게 되면 정확하게 대화하고 싶어서였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내 부족한 점을 채워줄 동료가 필요해졌다. 경영과 운영 지원, 그래픽 디자이너, 슈퍼바이저 등 다양한 분야의 동료와 함께한다.

TTT 사무실 한편 ⓒ헤이팝
사무실에는 다양한 식기가 놓여 있다. ⓒ헤이팝

— 이제껏 선보이는 매장 대부분이 용산 근처에 있다. 이 지역을 지키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동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많고, 여러 점포를 관리하기도 용이하다.

 

— 용산 상권에서 5년여를 보낸 지금, 이 지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나.

처음 예상한 대로 접근성이 좋다. 대기업이 여럿 자리 잡으면서 소비 인구도 늘어났다. 하지만 식음 문화 외에는 소비할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이 지역을 방문한 이들이 먹고 마시는 일 외에 즐길 것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 점은 내가 무언가를 기획할 때 제약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일을 보여주기 위해, 그에 맞는 새로운 지역으로 향할 마음도 얼마든지 있다.

아침부터 문을 여는 남박의 풍경. 아침을 파는 식당이 많은 베트남의 문화에서 착안해 일찍 오픈한다. 뜨끈하고 든든한 쌀국수를 낸다. 출처: 남박 인스타그램(@nampark.seoul)

— TTT로 꿈꾸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단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문화’ 같은 키워드도 너무 거창하게 느껴진다. 재미있는 일이란 결국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의미가 없으면 실컷 해도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팀원들에게도 늘 “재미없는 일을 여덟 번 해야, 눈부신 일을 한두 번 겨우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성취만 부각되기 쉽지만,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것만큼 실패도 여러 번 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런 마음으로 일하다 보니 지난해 버버리와 협업하게 된 것처럼 큰 기회가 오기도 한다. 기회를 잡으려면 필연적으로 여러 번의 실패는 따라오는 듯하다.

 김유영 기자

사진 이신영 콘텐츠 매니저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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