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2

[the Makers] 3. 팝업의 중심, 성수동의 로컬 큐레이터 제레박

성수동으로 팝업이 몰리는 이유
헤이팝은 더 메이커스(the Makers) 시리즈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고 마음을 사로잡은 팝업 기획자들을 소개한다. ‘팝업 포화 시대’라 불릴 정도로 무수한 팝업이 열리고 저무는 현재, 수많은 팝업 사이에서도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긴 팝업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제레박은 2018년부터 '성수교과서' 계정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성수동의 좋은 장소를 소개해왔다 ⓒ헤이팝

성수동이 지금 서울 내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동네라는 건 자명한 사실.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팝업 열풍’ 속에서 다양한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이는 성수동 연무장길을 중심으로 서울숲까지 상권이 확장되며 더욱 많은 이들이 성수동을 찾고 있다. 팔로워 11만 명에 달하는 ‘성수교과서’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자이자 성수동 주민인 제레박은 시시각각 변하는 성수동의 가장 발 빠른 소식통으로 통한다.

 

그는 과거 마케터로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성수동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계정을 운영 중이다. 2018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성수교과서’ 계정을 통해 한 주 동안 성수동에서 열리는 팝업 스토어를 간결하게 정리한 ‘주간 성수팝업 리스트’를 공유하고, 직접 다녀온 팝업 및 맛집 등의 영상과 사진을 재빠르게 업로드하며 많은 이들에게 정보를 전해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 1월에 성수 지역의 F&B 브랜드가 모여 개최한 팝업 ‘따겨마켓’의 기획자로도 참여해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기여하는 중이다. 성수동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오랜 시간 동네를 알려온 제레박에게 성수동 팝업 스토어의 최근 경향과 지향점 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물었다.

ⓒ헤이팝

1.팝업에 최적화된 동네

제레박이 최근 가장 인상깊었던 팝업으로 꼽은 '카누 온 더 테이블'의 내부 전경 ⓒ동서식품

— 수많은 팝업 스토어를 대중에게 소개하며 성수동의 부흥에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다녀온 팝업 중 인상깊었던 곳은 어디였나요?

작년 12월, 레이어57에서 열렸던 ‘카누 온 더 테이블’이 인상깊었습니다.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라는 콘셉트로 미니어처를 활용한 점이 돋보였고, 시음을 통해 카누의 스틱 커피와 캡슐 커피 모두 접해볼 수 있어 경험적인 측면에서도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 2018년부터 성수동의 공간을 소개하는 SNS 계정을 운영해왔습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켜본 성수동 팝업 스토어의 변화 과정은 어떠했나요?

초반에는 프로젝트렌트가 성수동의 팝업을 주도했습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스몰 브랜드 팝업을 여럿 유치하며 몰랐던 브랜드를 많이 소개해 왔죠. 그러다가 점점 대형화가 되었어요. 쎈느, 오우드처럼 카페 공간을 글로벌 브랜드에서 빌려 팝업을 진행하더니 곧 에스팩토리 같은 복합문화공간에서 대형 팝업 스토어가 열렸어요. 작년에는 성수동의 여러 공간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팝업이 유행했어요. 대표적으로 작년 10월에 럭셔리 패션 브랜드 버버리가 성수동을 보라색으로 물들인 적이 있죠. 당시 대형 공간 한 곳, 소규모 공간 두 곳을 대관하여 총 세 곳에서 동시에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 점이 압도적이었어요.

성수동은 서울숲, 뚝섬역, 성수역 부근을 포괄하는 지역명이기도 하다. ⓒ네이버지도

— 팝업 스토어가 성행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요인이 있을까요?

일단,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 팝업에 방문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요. 2시간을 기다려서 1시간만 체험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3시간 동안 친구와 함께 알찬 시간을 보낸 거죠. 심지어 사은품도 주니까요. 카페의 경우에는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면 커피라도 한 잔 사야 하잖아요. 팝업은 소비 없이 구경하기만 해도 금방 시간이 흐르죠. 새로운 개념의 놀이터와 같아요.

 

— 성수동에서 유독 팝업 스토어가 많이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과거 마케터로서 분석한 성수동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평지라는 점에서 크게 유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과거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대규모 공간이 즐비하죠. 한남동, 여의도 더 현대, 강남, 홍대에는 50평, 100평 정도로 넓은 공간이 없어요. 지하철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좋기도 하고, 널리 알려진 브랜드가 하는 팝업의 옆에서 팝업을 열게 되면 낙수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보통 팝업 스토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한 곳만 가지 않고, 여러 군데를 다니니까요. 최근에는 외국인도 성수동을 많이 오기 때문에 외국인을 상대로 브랜드를 알리기에도 적합하죠.

 

— 팝업 스토어를 열기에 좋은 공간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브랜드마다 원하는 사항이 다 달라요. 어떤 브랜드는 10평 규모여도 괜찮다고 하지만, 다른 브랜드는 200평, 300평 이상의 대형 공간이 필요할지도 모르죠. 창고형 공간은 중간에 기둥이 없고, 천장이 높아 인테리어 활용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어요. 반면에, EQL과 같은 편집숍에서 팝업을 하면 이미 공간이 꾸며져 있기 때문에 비용이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죠. 어떤 목표를 두고 팝업을 진행하는지에 따라서 공간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2.성수 팝업의 현재는

제레박은 인스타그램 계정 '성수교과서'를 운영하며 성수동의 부흥에 일조했다 ⓒ헤이팝

— 성수동에서 열리는 수많은 팝업 스토어를 취재하고 경험했죠.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1020 세대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를 경험하고 이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이전에 언급했던 팝업 스토어의 성행 요인에도 이런 분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고요. 저렴하게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활용해 팝업 스토어에 다녀오는 것도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이 문화가 사라졌지만요.

 

— 성수동에서는 월평균 100여 곳에 달하는 팝업 스토어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에 따른 문제점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공실이 늘어난 점입니다. 때문에 지역상권이 무너지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죠. 팝업 스토어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고 버려지는 쓰레기는 늘 골칫덩어리이죠. 획일화되고 있는 팝업의 기획도 안타깝습니다. 상업적인 판매에 초점을 맞추거나 포토존, 인증 이벤트처럼 어디를 가나 비슷한 행사를 진행해서 브랜드의 특성을 파악하기에 어렵거든요.

 

— 앞으로 성수동에서 열릴 팝업 스토어는 어떤 형태이길 바라나요?

지역 상권과 연계해 운영하는 팝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작년에 제가 참여하기도 했던 타바스코의 피자 페스타가 대표적으로 좋은 예시인데요. 성수동에 있는 피자 가게 8곳을 엄선해 그곳의 피자와 함께 타바스코 소스를 즐기는 행사였습니다. 참여자들에게는 타바스코를 직접 체험하는 동시에 성수동의 새로운 피자 가게를 경험하는 긍정적인 기회였죠.

성수동의 피자 가게와 공생하며 진행된 타바스코의 피자 페스타를 바람직한 팝업 스토어로 꼽았다 | 출처: 성수교과서 인스타그램

— 4월 1일부터 14일까지 서울브루어리, 사운드프로바이더 등 성수동의 20개 바에서 진행하는 ‘미드나잇in성수’도 같은 의미로 기획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떤 배경에서 시작된 건지 궁금하군요.

팝업 스토어를 찾는 사람들 덕분에 성수동의 낮은 북적이지만, 저녁에는 한적합니다. 한남동이나 홍대에서는 하루 평균 고객 회전율이 3회인 반면, 성수동에서는 2회를 채우기에도 벅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월세는 높은데 매출은 다른 동네의 절반 정도 나온다는 점이 안타까웠죠. 행사를 통해 좋은 바들이 많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3.끊임없이 변모하는 성수동

제레박이 기획한 '미드나인in성수'와 '따겨마켓'의 포스터 | 출처: 성수교과서 인스타그램

— 성수동 주민으로서 많은 변화를 직접 겪었겠네요. 성수동의 재개발과 함께 동네 분위기와 주민 연령층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기존에는 50~60대 이상의 노인층이 많이 살던 동네입니다. 공장이 즐비하다 보니 공장 노동자가 많았죠. 가죽 공장, 철 공장, 아크릴 공장, 인쇄소 등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거주하기에 좋은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재개발과 함께 상권이 조성되면서 타지인들이 많이 유입됐죠. 개성 있는 F&B 매장이 늘어났고, 생활 인프라가 개선됐어요.

 

— 본디 가죽 산업과 수제화 거리로 알려진 성수동에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오랜 가게들이 자리를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우려도 많습니다. 성수동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트렌드가 변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성수동에 갈비 골목이 있어요. 과거 갈비 골목이 형성된 배경에는 야외에 테이블을 설치할 수 있었던 환경이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로는 불법이 되었죠. 돼지고기 가격이 상승한 것도 큰 영향을 끼쳤고요. 회식 문화가 사라진 것도 타격이 컸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보기에는 복합적인 문화적 맥락이 작용합니다. 수제화 시장도 마찬가지죠.

 

— 변화의 속도가 빠른 성수동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이 있나요?

철학이 담긴 음식점들이 그 자리에서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F&B 매장의 상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역할이 커요. 개성 강한 식음료 매장이 장사가 잘돼서 제가 오래오래 그곳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 성수교과서 계정 이외에도 매주 일요일마다 서울숲에서 쓰레기를 줍는 ‘SSJ 모닝클럽’,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지속 가능한 상권을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지난 1월에 진행했던 ‘따겨마켓’이라는 기부 마켓을 열었던 것도, ‘미드나잇in성수’를 기획한 것도 모두 이 일환이죠. 이후에는 단기 임대나 숙박 시설을 직접 운영하면서 성수를 찾는 사람들이나 성수에서 영업하는 사장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꿈입니다.

성채은 기자

성채은
희망과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 낙천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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