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9

시인과 디자이너의 시선이 담긴 식물 가게, Q.E.D

식물이 주는 기쁨을 알아가는 곳, 망원동의 Q.E.D
망원동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무심한 듯 여기 저기에 놓인 식물들과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파릇함에 시선을 빼앗기는 공간 Q.E.D가 있다. 무릇 식물이란 사계절을 살아내는 생명체지만 Q.E.D의 식물은 유독 선명한 여름과 잘 어울린다. 이곳 화분들의 옆태가 여름의 파도를 닮아서인가, 여름의 능선을 닮아서인가 생각해 보지만 실제로는 연체동물과 씨앗 등의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은 곡선이라 한다.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성다영 대표와 아마추어 생물학자이자 다매체 예술가 세미 디자이너가 함께 만들어 가는 식물가게 Q.E.D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두 사람만의 고유한 시선이 느껴진다. 이따금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하거나 화분을 식물과 흙을 감싸는 껍데기라고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
세미 디자이너와 성다영 대표 ⓒQ.E.D

Interview with Q.E.D

― 2021년 5월 망원동 골목 한 편에 식물가게 Q.E.D의 문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본업이 있을 때인데 불현듯 식물가게를 오픈한 계기가 있었나요?

성다영 처음에는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다가 식물가게를 열게 되었어요. 당시 여러 사람과 함께 쓰는 작업실에서 아마추어 생물학자인 세미를 만나게 되었고 제가 식물가게를 함께 꾸려볼 것을 제안했어요.

― 운영 멤버로는 대표, 디자이너, 숍 매니저 이렇게 세 명의 구성원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고요. 겉보기에는 작은 식물 가게 같지만 그 내부에는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각자 어떤 업무를 맡고 있나요?

성다영 저는 평소에 기발하고 몽상적인 생각을 자주 해요. 그래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로운 제품을 제안하고 행사를 기획하는 등 주로 일을 벌이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디자이너 세미는 디자인과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생물 전반에 지식이 많아서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숍 매니저 이미지는 다정하고 섬세한 감정으로 Q.E.D의 식물들을 가꾸고 쇼룸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Q.E.D

― Q.E.D에서 주로 소개하는 식물류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또 어떤 기준으로 식물을 들여오는지도 궁금해요.

성다영 Q.E.D의 식물은 일단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한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적응을 잘하고 생명력이 강한 식물을 선택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야생에서 무분별하게 채취한 환경을 파괴하는 식물은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두 가지 기준 아래에서 자유롭게 식물을 선택합니다. 다른 식물 가게와는 달리 식물의 수종을 한정적으로 들이지 않는 이유는 매일 비슷한 것만 소개하는 게 제법 지루해서예요.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풍경을 좋아하거든요.

 

 

― Q.E.D를 찾는 이들은 자신을 위한 선물로 식물을 들이거나, 소중한 이에게 식물을 선물하는 행위를 통해 식물이 주는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다영 님의 인생에서 언제 처음 ‘식물이 주는 기쁨’을 느꼈는지 기억나나요?

성다영 봄과 여름 사이에 새로 돋아난 가지가 화분 바깥으로 늘어진 풍경을 좋아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일 또한 아주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저는 원래 아주 오래전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 하는 편인데 이 기억만큼은 선명해요.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행복감은 아마 제가 식물로부터 받은 최초의 기쁨인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제가 키우는 식물이 꽃을 피웠을 때’ ‘죽은 줄 알았는데 잎이 돋았을 때’ ‘어느새 훌쩍 자라 있을 때’ 유독 기뻐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느끼는 건데, 식물을 키우니 기쁜 일이 자주 생기네요.(웃음)

ⓒQ.E.D

― 다영 님은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나 세계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를 써왔습니다. 시인이자 식물가게 대표 다영 님에게 ‘식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성다영 저에게 식물이란 자연의 한 부분이며 그것을 제외하고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식물적 상상력은 언제나 다른 시적 상상력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에 식물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식물가게를 열었을 때는 식물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산과 강, 도시의 거리. 어디에나 식물은 있으니까요. 그래도 이제는 식물을 너무 자주 봐서 이런 낯선 느낌이 자주 들지는 않는데요. 요즘은 새삼 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진 식물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라고 있어요.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을 다루는 일이 참 흥미롭고요.

 

―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지고 식물의 잎을 다듬은 다음, 각 식물에 어울리는 화분을 골라 집을 만들어 주죠. 그리고 머지않아 그 식물은 누군가의 집으로 떠나보내고요. 식물을 손수 내 손으로 만지고 보듬어 주는 ‘식물을 위한 일’은 글을 쓸 때 대하는 식물과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나요?

 

성다영 식물은 제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길목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이미지예요. 식물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된 것도 그것이 썩어서 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마음이 들어서죠. 이 둘은 마치 우연처럼 관계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해요. 그렇지만 식물을 누군가의 집으로 떠나보내는 일은 시를 쓰고 난 뒤 시가 저를 떠나는 일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식물이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닌 것처럼 시도 마찬가지예요.

Q.E.D 망원동 매장 외관 ⓒQ.E.D ​

― Q.E.D 공간 구성 및 식물 큐레이션을 하는 가치관 아래 은연중에 시인 성다영의 시선이 녹아든 요소가 있을까요?

성다영 의도한 것은 아닌데 거의 모든 요소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Q.E.D의 쇼룸을 오픈할 때 다른 식물 가게 공간을 모방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제가 보는 것처럼 식물을 천천히 바라보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디자인적 요소를 최소화하게 되었고, 절제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식물이 좋아하는 위치를 고려한 진열 방식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 디자이너 세미 님은 Q.E.D의 구성원으로 함께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세미 제 본업은 아마추어 생물학자이자 다매체 예술가입니다. 개인적으로 영상, 소리, 설치, 등 여러 작업을 만들고 있어요. 작업은 매번 다르지만, 항상 생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실 큐이디에서의 역할이 디자이너이긴 하지만, 식물에 대한 정보 전반을 공급하는 역할 또한 하고 있습니다.

ⓒQ.E.D

― Q.E.D의 화분은 이곳의 상징과도 같죠. 처음부터 화분을 직접 제작했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식물가게 오픈 이후 화분을 직접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성다영 기존의 화분은 무거운데 물이 너무 빨리 마르고, 심미적으로 아쉽다는 점이 항상 불만족스러웠어요. 저는 물 주는 것을 잘 깜빡하는 편이라서 물이 너무 빨리 마르는 화분보다는 적당한 속도로 마르는 화분을 선호하고, 무거운 화분은 왠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져서 가벼운 화분을 늘 좋아했어요. 이런 점들을 충족하면서 아름다운 화분은 세상에 없었죠. 그래서 식물가게를 열고 한 달 후쯤부터 화분을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판매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고요. 지금도 지속적으로 더 튼튼하고 가볍고 아름다운 화분을 만들기 위해 개선점을 찾아 나가고 있어요. 살아있는 식물을 집에 들이게 되면 공간에 어떤 활력이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식물을 키우다 보면 오랜 시간 곁에 함께 해서 정든 식물이 있기 마련인데 그 식물을 좋은 화분에 심으면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것 같아서 화분을 만드는 일이 즐거워요.

― Q.E.D 화분을 디자인하면서 옛 도자기와 동·식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요.

세미 저는 물건이나 개념을 만들어 낼 때 생물과 생물학에서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을 즐겨요. 화분을 처음 만들 때는 화분이라는 것이 식물과 흙을 감싸는 일종의 껍데기라는 점에서 단단한 외관을 지닌 몇몇 동·식물, 복족류, 나무, 유공충, 씨앗 등을 연상케 했고 이 생물들의 실루엣이 가진 다양한 종류의 곡선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거기에서 몇 가지 곡선을 계산해 낸 뒤에는 이를 어떻게 실재하는 사물의 외관으로 만들어낼지 고민하면서 고대인들의 물건을 연구했고요. 자연에 온전히 기대어 살아가는 자가 만들어 낸 물건은 자연의 속성을 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Q.E.D

― 고둥이나 달팽이의 이름에서 화분 라인 네이밍을 했다는 것 또한 재미있게 다가왔어요.

세미 Q.E.D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이름은 삼명법을 따릅니다. 즉 라인-종류-번호 세 요소로 이루어져요. 라인은 전반적인 형상과 기능의 인상을 나타내고 종류는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번호는 큐이디의 모든 물건들 중 몇 번째로 디자인된 것인지를 뜻하고요. 라인의 이름인 필리로에, 레투사, 리토는 모두 해양 복족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 그렇게 전개하는 Q.E.D만의 화분은 ‘일반·펄·투명·그라디언트’ 4가지 컬러 시트를 베이스로 합니다. 대체적으로 선명하고 채도 높은 컬러를 사용해 보기만 해도 시원한 청량감을 주는데요. Q.E.D 화분들이 사람들의 공간에서 어떤 존재감을 갖기를 바라며 제작하시나요?

세미 사람들의 각기 다른 공간으로 가서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포인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화분이라는 물건은 인공 환경 속의 통제된 자연이라는 점에서 작지 않은 역할과 무게를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또, 화분이 사용자의 시간과 함께하며 의미 있는 사물로 재생성되면서 자연과 인간을 온전히 매개할 수 있는 막이 되었으면 하고요.

ⓒQ.E.D

―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데 재료마저 착한 친환경 소재 PLA를 사용한다고 들었어요. 3D 프린팅 기법을 사용해서요.

 

세미 사실 3D 프린팅은 제품 제작에 있어서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제가 3D 프린팅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방식 특유의 질감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기에 선택했어요. PLA 소재는 독성이 적고 특정 조건에서 생분해가 가능한 점이 이점으로 다가왔고요.

 

―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받아 소개해 보고픈 디자인이 있을까요?

 

세미 실험 중인 것은 많지만 당장 내보일 만한 것을 꼽기가 어려워요. 다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각기 세미 디자이너와 성다영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과 화분의 조합. ⓒQ.E.D

― 두 분이 각자 가장 좋아하는 Q.E.D ‘식물+시리즈+컬러’ 조합은 무엇인가요?

세미 코발트 블루 색상의 130번 화분과 흑맥문동의 조합입니다. 기르기 쉬우면서도 단아한 멋이 있는 식물이에요. 색의 짙음과 모양의 가벼움의 조화가 마음에 듭니다.

성다영 저는 진주 색상의 phylliroe 92번 화분을 선호하는 편인데, 요즘에는 거기에 등나무를 심는 것을 좋아해요. 길게 뻗은 줄기가 92번 화분의 기다란 모양과 조화롭고 등나무의 연두색 잎과 깨끗한 하얀색이 여름과 잘 어울려요.

― 뜨거운 8월의 한가운데, Q.E.D의 식물과 화분은 여름의 풍경과 잘 어우러져요. 두 분에게 여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세미 자연의 생동이 극에 치닫는 계절. 다소 지치고 어렵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을 관찰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성다영 뜨거운 햇빛과 공기가 인간에게는 참 힘든 환경이지만 저에게 여름의 날씨는 거기에 맞서게 해주는 힘 역시 주는 것 같아요.

하지영 기자

자료 제공 Q.E.D

장소
Q.E.D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7길 26
하지영
에디터가 정의한 아름다운 순간과 장면을 포착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세상에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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